여름,

여름,

글/그림 이소영 | 글로연
(발행 : 2020/06/21)


매일 같이 쏟아지는 코로나 뉴스에 미처 느낄 새도 없이 정신없이 가버린 지난봄, 뒤이어 지루한 장맛비와 함께 찾아온 여름. 매일 같이 습하고 끈끈한 나날을 보내다 보니 바깥에서 작은 소리라도 들린다 싶으면 ‘또 비?’하고 인상 먼저 쓰게 되는 올여름입니다. 햇빛 냄새, 짙푸른 녹음, 그리고 푸른 하늘 아래 어느 때보다 활기찬 여름 바다가 그리운 이 시간, 다들 어떻게 보내고 있나요?

타오르는 듯 빨갛게 쓴 여름이란 글자 옆에 스리슬쩍 자리 잡고 앉은 작고 빨간 쉼표(‘,‘)가 눈에 쏘옥 들어옵니다. 이 그림책의 제목은 반점 혹은 콤마라고도 불리는 쉼표까지 합쳐서 “여름,”이에요.

여름,

푸른 하늘 햇살 아래로 꽃잎처럼 떨어지는 빨갛고 작은 생명체들, 뭔가 들뜨고 신나고 즐거워 보입니다. 파도 위에서 서핑을 즐기는 것 같기도 하고 푸른 바람에 몸을 맡기고 즐겁게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것 같기도 해요.

어디서 왔는지 언제 왔는지도 모르게 세상 속으로 쏟아져 내린 여름들, 처음 우리를 찾아왔을 땐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아주 조그마했지만 어느 사이 조금씩 조금씩 몸집을 불려 나간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여름은 온몸을 축축 늘어지게 만들고 천근만근 무겁게 만들어요. 축 늘어지는 뱃살처럼, 질질 끌리는 모래주머니처럼, 녹아 눌어붙는 젤리처럼요.

아무튼 여름은 더워.

여름,

더위에 압사 당할 것 같은 이 분위기, 그 표현이 가슴에 확 와닿습니다. 비좁은 유리 병 속에 갇힌 이들 사이로 내 얼굴이 보여요. 매일 같이 계속되는 더위에 높은 습도에 지치고 힘겨워 하는 우리 들의 모습이 보여요. 이 작고 빨간 여름은 어느새 이렇게나 자라서 요렇게나 사악하게 웃고 있네요. 그게 여름이 할 일이니까. 여름은 원래 그런 계절이니까.

땀범벅, 지친 마음, 무거운 발걸음으로 오늘도 힘든 하루를 지내면서 언제쯤이면 이 더위가 물러갈까, 시간아 어서 지나가라고 기다리지만 사실 진짜 여름의 마음은 바로 이것이에요.

여름

잠시 멈추라고 여름은 더웠고,
눈을 살포시 감아 보라고 여름 해는 뜨거웠으며,
들어와 쉬라고 여름 나무는 무성했다는

바쁘게 달려온 시간 잠시 멈추고 쉬어 가라고, 한 템포 멈추고 온몸으로 이 계절을 느끼고 기억하라고 여름은 그리도 뜨거웠어요.

잠시 쉬어가라는 의미를 담은 작고 빨간 쉼표 여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또한 지나고 보면 아득하고 그리운 추억이 되겠죠. 지나간 모든 시간들이, 계절들이 그러했듯이.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차분히 여름과 만나보세요. 내가 보내온 여름의 표정과 풍경들이 그림책 속에 가득 담겨있어요. “여름,”을 읽고 나면 끈적끈적 숨 막히는 바깥 더위와 마주해도 조금은 덜 짜증 나게 될 거예요. ‘안녕, 여름!’하고 인사 나눌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길 테니까요. 오늘 하루 이렇게 더웠던 건 여름이 우리에게 조금 쉬어가라는 의미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될 테니까요.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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