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지의 산책

로지의 산책

(원제 : Rosie’s Walk)
글/그림 팻 허친스 | 옮김 김세실 | 봄볕
(발행 : 2020/05/20)

※ 1968년 초판 출간
“로지의 산책”의 한글판은 2007년 전집에 묶여 출간되었었는데, 2020년 봄볕 출판사에서 새로 출간하였습니다.


“로지의 산책”은 팻 허친스가 그림책 작가로서의 첫 출발을 알린 작품입니다. ‘단순한 그림책이 아이들에게 더 효과적’이라는 평소 신념처럼 팻 허친스는 단순한 이야기 속에 반복되는 사건으로 그림책의 재미를 잘 전달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어요. 하얀 여백을 살린 배경 위에 굵은 선으로 그린 등장인물, 주변 사물을 세밀하게 표현해 동적인 느낌을 살리고 규칙적인 패턴을 활용해 반복되는 이야기의 구조의 묘미를 살려 표현한 것이 팻 허친스 그림책의 특징입니다. 평소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꼼꼼하게 기록하는 것을 좋아하는 그녀는 자신의 기록들을 바탕으로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잘 드러내는 작품들을 많이 선보였습니다.

눈앞의 먹잇감을 노리는 성질 급한 여우와 농장 한 바퀴 산책길에 나선 여유만만 암탉 로지, 그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생생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로지의 산책

암탉 로지가 산책을 나갔어요.

고즈넉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농장 마당 한켠 닭장에서 여유로운 표정으로 휴식을 취하던 암탉 로지. 잠시 후 그녀는 찬찬히 산책을 나섭니다. 살짝 치켜든 턱, 반쯤 감은 눈, 뒷짐을 진 듯 옆구리에 꼭 붙인 양 날개와 여유로워 보이는 걸음걸이가 이 산책길이 로지에게 얼마나 익숙한지를 알려주는 것 같아요.

그런데 처음부터 독자들을 사로잡는 또 다른 등장인물이 있으니… 그건 바로 숨소리를 죽이고 살금살금 조심스럽게 로지의 뒤를 쫓는 여우입니다. 꿈꾸는 듯 나른한 로지의 눈과 달리 이글이글 욕망으로 불타오르는 여우의 커다란 눈과 귀 그리고 뾰족한 입. 뒷짐을 진 양 타박타박 찬찬히 걷고 있는 로지 뒤에서 여우는 결정적 한 방을 기다리며 기회를 노리고 있어요.

로지의 산책

그렇게 조심조심 로지를 뒤따르던 여우는 이때다 싶은 순간 폴짝 뛰어 로지에게 와락 달려들었어요. 발소리도 들리지 않을 것 같이 가볍게 사뿐하게 폴짝~ 하지만…

로지의 산책

쇠스랑을 밟고 기다란 막대기에 그만…!!!  ‘팅~~ ‘퍽!’ 같은 의성어조차 과감히 생략하고 상황만 그대로 담아냈지만 머릿속에서는 저절로 의성어가 생생하게 재생됩니다.

아, 여우는 눈앞 먹잇감에만 눈이 멀어 주변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어요. 그저 이때다 싶은 순간 무조건 로지를 향해 직진. 로지는 이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유자적 태연합니다. 꿈꾸는 듯한 두 눈이며 몸짓이 나의 산책을 방해할 자 아무도 없으리니.. 마치 그러는 것 같아요.

이렇게 로지와 여우의 대결(사실 대결이랄 것까지도 없는 상황이죠? ^^)은 로지가 농장 구석구석을 산책하는 내내 계속됩니다. 이번에는 기필코~ 하는 눈빛으로 이글이글 타오르는 여우의 눈, 그리고 행여나 로지가 눈치챌까 무척이나 조심스러운 몸짓. 그에 반해 한껏 여유로운 표정으로 산책하는 로지의 모습을 보노라면 이 상황을 이미 눈치 채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기도 해 더욱 웃음을 자아냅니다.

로지의 산책

울타리를 빠져나온 로지를 향해 여우가 마지막 기회다 하고 폴짝 뛰어 달려들었어요. 하지만 로지는 이번에도 자연스럽게 쏙 빠져나갔고 뛰어올랐던 여우는 언덕 위에 세워져 있던 빈 수레에 내려앉았죠. 아뿔싸~ 당황한 표정의 여우, 자 이제 다음 장면은 어떻게 이어질까요? 이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 상황을 예측할 수 있을 거예요. 결론만 말하자면 이번 역시 로지는 무사해요. 여우만 낭패를 당할 뿐…

로지는
저녁밥 먹을 시간에
꼭 맞춰
돌아왔답니다.

언덕 너머로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치는 어수룩한 여우에게 왠지 동정심이 일어나네요.

“로지의 산책”은 글과 그림이 역할을 분담하고 있어요. 글로는 농장 곳곳 로지의 산책길을 설명하고 있고 그림으로는 상황을 전달하고 있죠. 평화로운 산책길을 설명하는 글만 듣고는 지금 어떤 상황인지 여우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반복되는 사건 속에 숨겨진 긴박함은 그림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어요.

쫓고 쫓기는 자의 초조함과 긴박함 속에서도 편안함과 여유로움 그 속에 담긴 유머까지 아낌없이 느낄 수 있는 그림책 “로지의 산책”, 시종일관 우아하고 도도한 로지의 걸음걸이, 인생 몇 단쯤 되어야 저리 달관의 경지에 오른 표정을 지울 수 지을 수 있을까요?

그림책을 다 읽고 나면 속표지로 돌아가 로지가 살고 있는 농장을 다시 한 번 찬찬히 살펴보세요. 한눈에 전경이 들어오는 속표지 그림의 농장을 살펴보고 나서 그림책을 다시 감상해 보면 또 다른 느낌으로 이야기가 다가올 거예요.

로지와 병아리
“로지의 병아리”에 등장하는 로지, 병아리, 그리고 여우

팻 허친스가 52년만인 2015년에 내놓은 속편 “로지의 병아리”(한글판은 2016년에 출간)에는 로지가 낳은 병아리가 등장해요. 갓 부화한 병아리를 뒤에 두고서 농장 구석구석 찾으러 헤매는 조금은 어설픈 로지는 느긋했던 전편과 달리 새끼를 찾느라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양 날개를 수선스럽게 펼치며 돌아다닙니다. 알껍질 반쪽을 뒤집어쓴 병아리는 각종 위험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면서 엄마를 뒤쫓아 갑니다. 속편에도 여우가 등장하는데 이번 편에서도 역시 커다란 반전으로 웃음을 선사하고 있으니 두 편을 비교하며 함께 감상해 보세요.

“로지의 병아리” 리뷰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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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주

이 선주

열여덟 살 딸내미와 폭풍수다에 체력 고갈 중 | 2000년부터 육아, 그림책, 엄마와 함께 하는 놀이, 중학교 3년간의 홈에듀케이션 이야기를 담은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 '찾아가는 어린이 책놀이터' 수업 진행 | '그림책과 놀아요'(열린어린이) 출간(2007) | 2016년 4월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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