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잠수

(원제 : Dyksommar)
사라 스트리츠베리 | 그림 사라 룬드베리 | 옮김 이유진 | 위고
(발행 : 2020/07/30)


파란 비취색 목걸이처럼 깊고 푸른 두 사람의 눈동자에 그만 빨려 들어갈 것만 같습니다. 푸르름 가득한 초록 잔디 위에 드러누운 두 사람의 선명한 빨간색 수영복이라니. 아, 모든 생명들이 그 자체만으로도 반짝반짝 빛나는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그 시리도록 쨍한 빛깔들이 너무나 아름다운데 왠지 모르게 마음 한켠이 슬퍼지는 건 “여름의 잠수”라는 묵직한 제목이 가져오는 느낌 때문일까요?

어느 날, 우리 아빠였던 사람이 사라졌다.
마치 누군가가 아빠를 세상에서 오려 낸 것 같았다.
아침 식탁에서 아빠가 앉았던 자리에 구멍이 나 있었다.

여름의 잠수

오래전 그 시간을 다시 소환합니다. 가족 앨범 속 아빠는 그토록 환하게 웃고 있는데, 일상은 그대로 흘러가고 있는데, 모든 것은 다 제자리에 있는데, 아빠만 사라졌어요. 마치 세상에서 아빠만 쏙 오려 낸 것처럼.

덤덤한 얼굴로 신문을 보고 있는 엄마와 달리 소이는 아빠의 빈자리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어요. 소이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빨간색 빈 의자만이 아빠의 부재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여름의 잠수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소이는 엄마를 따라 아빠를 만나러 갑니다. 벽도 있고 창문도 있고 문도 있는 어찌 보면 별다를 것 없어 보였던 그곳. 하지만 그곳은 모든 문이 잠겨있었어요.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아빠처럼… 어린 소이 눈에 비친 커다랗고 견고해 보이는 병원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 막혀오는 것 같습니다. 삭막한 계절 겨울, 그렇게 소이는 병원에서 아빠를 만났어요.

여름의 잠수

왜 어떤 사람은 살고 싶지 않을까?
개가 있고 나비가 있고 하늘이 있는데.
어떻게 아빠는 살고 싶은 마음이 안 들까? 내가 세상에 있는데.
왜 그런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냥 그랬을 뿐.

아빠가 하늘로 날아가 버리지 않도록 지켜주는 의사와 간호사들, 그리고 아빠처럼 치료 중인 좀 이상해 보이는 사람들, 그 사람들 중에 사비나가 있었어요. 수영복에 가운을 걸치고 있던 사비나는 소이에게 ‘수영할까?’하고 물었어요. 아무리 둘러보아도 바다라곤 보이지 않는 토사물 색 같은 분홍 벽지와 슬픈 사람들뿐인 이 병원에서…

여름의 잠수

아빠가 면회를 원치 않아도 소이는 혼자서 병원을 찾아갑니다. 그렇게 아빠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자면 어김없이 사비나가 나타났어요. 소이는 사비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동안 그녀를 통해 아빠의 슬픔을 이해해 보려고 합니다. 함께 나무 아래에서 수영 연습을 하고 초록 풀밭에 누워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시간들이 꿈결처럼 아득히 흘러갑니다. 현실이지만 현실이 아닌 것처럼. 마치 내 이야기지만 다른 이의 이야기인 것처럼.

그곳에도 어김없이 시간이 흐르고 또 새로운 계절이 찾아왔어요. ‘어떻게 나를 잊을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도 하염없이 아빠를 기다리던 소이. 그 긴 기다림의 시간 역시 끝났어요. 여름이 끝날 무렵 아빠가 다시 돌아왔어요.

“우리 딸, 이제 집에 가자.” 아빠가 말했다.
아빠는 나무 같았다.
겨울에는 죽은 척했지만
여름이 오면 다시 살아났다.

아빠 품에 꼬옥 안겨있는 소이 주변으로 어여쁜 꽃들이 활짝 피어있어요. 꽃 한 송이 피기까지 얼마나 오랜 침묵의 시간들이 흘러갔을까요? 끝을 알 수 없었던 소이의 그 긴 기다림의 시간처럼요.

여름의 잠수

오래전 기억을 회상하며 이야기는 마무리됩니다. 아련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그 해 여름,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누구보다 순수한 마음으로 그들 가까이에서 그들과 함께했던 소중한 시간들, 그리고 잊지 못할 사비나와의 우정.

아빠가 살고 싶어 하지 않았던 그해 여름,
사비나가 내 친구였다는 걸 나는 잊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래서 그러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됩니다. 누군가에게는 고통의 시간으로, 누군가에게는 기다림의 시간으로, 또 누군가에게는 이해의 시간으로, 그렇게 각자 저마다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글을 쓴 사라 스트리츠베리는 정신병원에 입원했던 친척의 면회를 갔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바탕으로 2014년 “Beckomberga : Ode till min familj”란 제목의 소설을 출간했다고 합니다. 5년 후 그 소설을 바탕으로 이 그림책 “여름의 잠수”를 완성했다고 해요. 그림 작가 사라 룬드베리는 “바보 야쿠프”에서 강렬한 색감으로 개성 넘치는 그림을 선보인 바 있어요. 오랜 기억 저편에 남아있는 시리도록 강렬한 아픔과 외로움 속에서 꽃피우는 소이와 사비나의 아름다운 우정, 연민과 공감과 이해의 감정을 사라 룬드베리는 찬란하게 눈부신 빛깔로 이 그림책에 그려냈어요.

여름의 끝자락에서 신산하기만 한 우리 마음을 위로하는 그림책 “여름의 잠수”, 결코 정말로 행복해지지는 못했지만 그런대로 삶이 견딜만해진 아빠와 소이, 빛나는 빛깔로 다가왔던 사비나. 그해 여름 그들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 함께 읽어 보세요 :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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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선
이강선
2020/09/20 13:12

보내주시는 메일, 잘 읽고 있습니다. 오늘도 여전히 잔잔하고 좋은 내용이로군요. 이 그림들은 <>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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