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빠요, 바빠!

글/그림 이정빈 | 이야기꽃
(발행 : 2020/11/06)


“바빠요, 바빠!”는 보면 볼수록 더 많은 것이 보이는 그림책입니다. 처음 보면 꼬맹이들이 좋아하는 온갖 자동차들이 나오는 그림책이고, 두 번째 볼 때는 그 안에 타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 세 번째로 볼 때는 작가가 담아낸 메시지가 보이는 그림책입니다.

바빠요, 바빠!

탈탈탈탈 거리며 나타난 트랙터 한 대. 봄이 와서 밭을 가느라 바쁘다는 농부 아저씨가 타고 있어요. 하지만 아저씨 얼굴은 하나도 바쁘지 않고 여유로운 웃음만 가득합니다. 트랙터도 아저씨만큼이나 여유롭게 느릿느릿. 농부 아저씨와 트랙터의 바쁨은 조급함이 아니라 부지런함입니다.

그런데, 트랙터의 사이드 미러에 비친 빨강 파랑 하트는 뭘까요?

바빠요, 바빠!

빰빠라밤빰~ 달콤한 아이스크림 트럭이었네요. 놀이동산에서 아이들이 기다린대요. 그리고, 아까 트랙터처럼 아이스크림 트럭의 사이드 미러에도 어떤 무늬가 비쳤어요. 또 어떤 차가 바쁘다며 달려 나올까요?

마을을 깨끗이 치우느라 바쁜 청소차, 사람들을 일터까지 태워 줘야 해서 바쁜 마을버스, 유치원 아이들 간식 배달로 바쁜 오토바이, 신혼부부가 비행기를 놓칠까봐 바쁜 택시, 세계 신기록을 세우고 싶은 경주용 자동차, 그리고 중요한 회의가 있어서 바쁜 검정 대형 세단까지 정말 바쁘지 않은 사람이 없네요.

바빠요, 바빠!

그런데, 중요한 회의때문에 바쁜 각국 정상들을 태운 차보다 더 바쁜 자동차가 깜짝 등장했습니다. 앞뒤 안가리고 쏜살같이 달려가는 노란 자동차에 탄 사람들은 누굴까요? “게 섰거라~!” 힘차게 외치며 경찰차가 나타나서는 은행 강도들을 막 체포하는 순간 저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다급한 소리…

삐뽀삐뽀! 애애애애앵!

이 소리가 들리면 도로를 꽉 틀어막고 섰던 자동차들이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좌우로 조금씩 조금씩 자리를 내어줍니다. 도로에서 홍해의 기적이 일어났다며 종종 뉴스에 보도되곤 하는 바로 그 장면이 펼쳐지는 순간, 이럴 땐 마치 자동차들이 저마다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가세요, 가세요. 먼저 가세요.

라고 말이죠. 모두가 길을 양보해 준 세상에서 제일 바쁜 자동차가 과연 어떤 건지 우리 어린 친구들도 잘 알고 있겠죠?

바빠요, 바빠!

우아! 우아!
모두 잘 됐어요!
다 같이 박수!

모두가 양보해준 방금 전의 자동차들이 무사히 자신들의 일을 마쳤나봅니다. 지금까지 바쁘다며 앞으로 달려 나왔던 자동차들과 그 안에 타고 있던 사람들 모두 한 목소리로 환호성을 외치며 크게 박수 갈채를 보냅니다.

바쁜 데 순서가 있을까요? 중요한 건 누가 더 바쁘냐가 아니라 우리 모두 함께 살아가는 것 아닐까요? 촌각을 다투는 응급환자에게 달려가는 응급차와 위급한 화재현장으로 출동하는 소방차에게 내 길을 양보하듯이 서로의 바쁨을 존중할 줄 안다면 우리가 아무리 바빠도 낯 찌푸리는 일 없이 웃는 얼굴로 조금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바빠요, 바빠!”하는 소리가 들리면 ‘흥, 내가 더 바쁘거든!’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버티고 서 있지 말고 주변을 한 번 돌아보세요. 방금 전 바쁘다고 서두르던 사람이 누구인지, 그가 무슨 일로 바쁜 건지, 나의 도움이 필요한 건 아닌지, ‘가세요, 가세요. 먼저 가세요.’라고 말해줄 수 있겠는지…

자, 다들 바쁘시겠지만 “바빠요, 바빠!” 제가 권한대로 세 번 보셨나요? 자동차, 그 안에 탄 사람들, 그리고 작가가 담고 싶어했던 메시지 모두 보였나요? 네 번째 보면 뭐가 보이냐구요? 글쎄요… 저는 자동차 안에 탄 사람들의 웃음을 보았는데 여러분은 과연 무얼 보게 될까요? 🚒

이 인호

에디터, 가온빛 레터, 가온빛 레터 플러스 담당 | ino@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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