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 가는 길
동물원 가는 길

(원제 : The Way To The Zoo)
글/그림 존 버닝햄 | 옮김 이상희 | 시공주니어
(발행 : 2014/06/20)


존 버닝햄의 따끈따끈한 최신작 “동물원 가는 길”입니다. 첫 그림책인 “깃털 없는 기러기 보르카”를 발표한게 1963년이니 올해로 데뷔한지 51년차네요. 내일모레면 팔순인 할아버지지만 감각은 여전합니다. 택배 아저씨에게 건네 받기가 무섭게 그림책을 펼쳐 보면서 드는 생각은… “살아 있네!” ^^

존 버닝햄 할아버지의 그림책들이 늘 그렇듯이 “동물원 가는 길” 역시 맑디 맑은 아이와 다정다감한 동물들이 등장하고,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자유롭게 오가며 편안하고 따뜻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동물원 가는 길

막 잠들려던 실비의 눈에 전엔 보지 못했던 문이 하나 보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자기가 본게 맞는지 확인해 보기로 하고 실비는 잠이 듭니다. 다음 날 아침 학교에 가느라 허둥대는 통에 어제 밤에 분 문은 까맣게 잊고 말아요. 그리고 다시 밤이 되어 잠자리에 들려는데 종일 잊고 있었던 문이 보입니다.

동물원 가는 길

문을 열어 보니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여요. 실비는 손전등을 들고 계단을 따라 내려갑니다. 저 멀리 또 다른 문이 보여요. 과연 저 문 뒤엔 뭐가 있을까요?

동물원 가는 길

힘겹게 문을 열자 실비의 눈 앞엔 동물원이 나타납니다. 수많은 동물들이 실비를 쳐다보고 있어요. 늘 느끼는거지만 존 버닝햄이 그려내는 동물들은 친근하고 다정한 느낌입니다. 마치 자기를 데리고 놀아 달라는 듯한 표정들, 다른 녀석들이야 그럴 수 있다 쳐도 악어 좀 보세요. 얼마나 악어답지 않은지… ^^ 원숭이는 자기 좀 봐달라며 손을 높이 치켜 들었네요.

동물원 가는 길

하지만 실비가 첫번째로 고른 동물은 아기 곰입니다. 실비 손을 꼭 붙잡고 따라 가는 아기 곰, 힘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게 아주 순둥인가봅니다.

동물원 가는 길

그 날 이후 실비는 밤마다 동물들을 데리고 와서 함께 놀다 잠이 들어요. 펭귄들을 데려다 목욕도 시켜 주고, 엄마 호랑이와 아기 호랑이를 함께 데려 오기도 하고, 새들을 잔뜩 데려 오기도 하죠. 간혹 실비의 물건을 감추거나 냄새가 지독한 동물들은 그냥 돌려 보내기도 하구요.

동물원 가는 길

그런데 아기 코끼리는 왜 저렇게 서글프게 울고 있는걸까요? 덩치가 너무 커서 통로를 빠져 나올 수가 없었대요. 덩치는 커다래도 아기는 아기니 얼마나 서러웠겠어요. 다른 동물들은 다 한번씩 실비의 방에 가서 재미있게 놀다 왔는데 자기만 못가게 됐으니 말입니다.

동물원 가는 길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실비가 늦잠을 자서 허둥지둥 서둘러 학교에 가는 바람에 동물원으로 통하는 문을 닫는 걸 깜박하고 말아요. 학교에서 돌아 온 실비는 아주 걱정스런 표정으로 거실 문을 여는데… 역시나 동물들이 아주 편안한 자세로 제집인양 거실을 떡하니 차지하고들 있어요.(동물원에 사는 동물들이 죄다 왔는데 안타깝게도 아기 코끼리는 이번에도 못왔군요. 아마도 엄마 코끼리 옆에서 엉엉 울고 있지 않을까요? ^^) 소파에 천연덕스럽게 앉아 지긋이 눈을 감고 있는 사자가 다음 장면에서 어떻게 되는지 한번 볼까요?

동물원 가는 길

잔뜩 어질러진 거실을 보고 화가 난 실비가 펄쩍 뛰며 고함을 치자 동물들은 모두 혼비백산해서 동물원으로 돌아갑니다. 놀란 사자 좀 보세요. 백수의 왕이신데 체면이 말이 아니네요. 자세히 들여다 보면 동물들이 하나같이 화가 나서 펄펄 뛰는 실비를 보고 있습니다. 미안해서 눈치를 보는걸까요? ^^ 좀 더 자세히 보면 모두가 그런건 아니죠. 어떤 녀석들이 뒤도 안돌아 보고 도망쳤을까요? 그 와중에 원숭이 녀석은 양손에 과일을 하나씩 챙기고 있네요

동물원 가는 길

엄마가 돌아오기 전에 실비는 혼자서 난장판이 된 집을 깔끔하게 정리합니다. 뒤죽박죽이 된 가구들도 다시 제자리에 옮겨 놓구요. 실비가 집 정리를 모두 마쳤을 때 엄마가 도착해서 이렇게 말해요.

이런, 실비야

온갖 동물들이 몰려 놀다 간 것처럼 어질러 놓았네.

흠… 엄마는 실비의 동물원에 대해서 알고 있는걸까요? 모르고 있는걸까요? ^^동물원 가는 길

요즘도 실비는 이따금 밤에,
아기 곰 같은 털북숭이 동물들을 방으로 데려와요.
하지만 학교에 가기 전에 잊지 않고
동물원으로 가는 문을 꼭꼭 닫아 놓는답니다.


아마도 실비는 막 학교에 입학한 모양입니다. 이전과는 달리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학교에 가는 등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 되니 엄마 아빠는 당연히 실비를 평소보다 일찍 재우려고 했겠죠. 하지만 엄마 아빠가 일찍 자라고 침대에 눕히고 굿나잇 뽀뽀까지 한다고 해서 바로 잠이 들리 없죠. 엄마 아빠가 불을 끄고 나가는 순간부터 실비의 상상의 세계가 시작됩니다. 실비만의 비밀 동물 친구들과 함께 말입니다.

존 버닝햄은 실비와 비밀 동물원 친구들의 만남 속에 두가지 바램을 담은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하나는 상상의 세계를 통한 실비의 성장입니다.

저마다 다른 성격과 특성을 가진 동물 친구들과 어울리는 과정 속에서 실비는 조금씩 성장하게 됩니다. 맨 처음 실비의 방에 온 아기 곰이 실비의 손을 꼭 붙잡고 따라 오던 것 생각나시죠? 왠지 나약해 보이던 아기 곰은 아마도 엄마 아빠에게 무조건 의존하려던 실비의 또 다른 모습이었을거예요. 욕실에서 한바탕 소동을 일으켰던 펭귄들, 물건을 감추거나 냄새가 지독했던 동물들, 실비의 방에 놀러 올 수 없어서 서럽게 울던 아기 코끼리 모두 실비 자신의 모습이었던거죠. 실비는 이런 동물들을 돌봐주면서 그들의 모습 속에서 자신의 결점들을 하나씩 고쳐 나갈 수 있었던거죠. 아이들의 상상력이 아이들을 성장시킨다고 믿는 존 버닝햄의 믿음이 실비와 동물 친구들의 만남 속에 담겨 있는겁니다.

또 하나는 환경과 동물을 보호하자는 존 버닝햄의 오랜 바램입니다.

동물들은 왜 실비의 방에 가고 싶어하는걸까요? 도대체 실비의 방에 뭐가 있길래 아기 코끼리는 그리도 서글프게 울었을까요? 아마도 동물들을 다정하고 정성스레 돌봐주는 실비의 마음때문이 아닐까요? 만약 동물원이 멋진 환상의 공간이었다면 실비와 동물들이 어울리는 배경은 동물원이었을겁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실비의 방에서 이뤄지죠. 결국 이 책에서 동물원은 동물들이 원래 살던 곳에서 포획되어 강제로 갇혀 있는 공간, 또는 인간의 손길로 인해 파괴된 동물들의 생활 터전을 뜻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처음 실비가 동물원으로 통하는 문을 열었을 때 모든 동물들이 서로 자기를 데려가 달라는 표정으로 실비를 보고 있었던거죠. 존 버닝햄이 오랜 시간 동안 그의 많은 그림책들에 담아왔던 것 처럼 “동물원 가는 길”에서도 실비와 동물 친구들의 따스한 만남을 통해 환경보호와 동물사랑에 대한 마음을 담아낸겁니다.


엉뚱한 상상

그림책 맨 앞에 작가 소개와 출판 정보 등이 적혀 있는 페이지에 아주 슬쩍 한 줄 자리잡고 있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항상 실비를 생각하며

존 버닝햄이 항상 생각하겠다고 했다면 실비는 단순히 그림책 속 캐릭터가 아닌 모양입니다. 그렇다면 실비는 존 버닝햄의 귀여운 손녀 아닐까요? 아마도 외손녀일겁니다. 실비는 아마도 존 버닝햄의 막내딸 에밀리의 딸이라고 보여요.

에밀리를 기억하십니까? “영원한 우리 할아버지 존 버닝햄“이란 글에서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 할아버지”에 나오는 할아버지와 손녀의 실제 모델은 존 버닝햄의 아버지와 막내딸 에밀리였습니다. “지각 대장 존”이란 그림책의 영문판 면지에 보면 ‘I must tell lies….’라고 손글씨로 쓴 누군가의 반성문이 있는데, 반성문을 쓰다 지겨워졌는지 뒷부분엔 ‘lies’를 ‘lise’라고 철자를 엉망으로 써버립니다. 이 반성문을 쓴 주인공 역시 존 버닝햄의 막내딸 에밀리입니다.

“우리 할아버지”가 1984년, “지각 대장 존”이 1987년에 각각 발표되었으니 30년 후인 지금 막내딸 에밀리는 당연히 실비 또래의 딸을 둔 엄마가 되어 있겠죠.

동물원 가는 길

위 그림의 한껏 교양스러운 실비의 엄마가 바로 30년 전의 그 에밀리가 아닐까요? 할아버지 등에 매달려 놀던, 반성문을 쓰다 쓰다 지겨워져서 철자를 무시한채 마구 써대던 그 에밀리 말입니다.

동물원 가는 길, 우리 할아버지

어떤가요? 할아버지 등에 꼬옥 매달려 있는 에밀리와 펭귄과 물장난 치는 실비… 닮지 않았나요? ^^


※ 환경보호 및 동물사랑을 주제로 한 존 버닝햄의 그림책들

Mr. 고릴라

앤서니 브라운의 "고릴라" 덕분에 그림책과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제일 좋아하는 작가가 앤서니 브라운은 아닙니다. ^^ 이제 곧 여섯 살이 될 딸아이와 막 한 돌 지난 아들놈을 둔 만으로 30대 아빠입니다 ^^ | 2014년 11월
0 0 votes
Article Rating
알림
알림 설정
guest

0 Comments
Inline Feedbacks
모든 댓글 보기
0
이 글 어땠나요? 댓글로 의견 남겨주세요!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