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는 꼬리

노래하는 꼬리

(원제 : La Coda Canterina)
기아 리사리 | 그림 비올레타 로피즈 | 옮김 정원정, 박서영 | 오후의소묘
(발행 : 2020/08/05) 


사춘기 시절 읽었던 카프카의 “변신”은 당시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혹시 나도 그레고르 잠자처럼 어느 날 갑자기 벌레로 변하는 건 아닐까 하는 엉뚱한 걱정 속에 잠자리에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에게 보내는 가족들의 싸늘한 반응을 보며 가족과 친구들에게 나는 어떤 존재인지, 어설프게나마 나의 존재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된 책이었습니다.

아주 작은 마을에 사는 이반에게도 그런 비슷한 일이 일어났어요. 어느 날 아침 일어나 보니 이반 엉덩이에 꼬리가 생겨났거든요. 누군가 이반 몰래 붙이거나 꿰맨 것이 아닌 이반의 몸에서 자라난 꼬리였지요.

노래하는 꼬리

놀란 이반이 꼬리를 감춰 보려 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꼬리는 더 세차게 반항했어요. 낯선 꼬리를 이리저리 살피고 당기며 혼란에 빠진 이반의 모습은 마치 처음 알게 된 내 모습에 놀라서 당황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이와 달리 이반의 몸을 이리저리 휘감는 꼬리는 ‘나는 너의 일부야’, ‘나는 원래부터 존재했었어, 네가 몰라봤을 뿐’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아요.

목청껏 노래까지 부르며 제멋대로 구는 꼬리, 결국 이반은 꼬리를 부모님에게 들켰어요. 부모님은 마을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어요.

노래하는 꼬리

소방관이 오고 제빵사가 오고 푸줏간 주인이 오고 그렇게 작은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이반의 꼬리를 잡아당기기 시작합니다. 그러는 중에도 꼬리는 느긋하게 노래를 불렀어요. 잡아당기기 시작하자 끝도 없이 길어지는 꼬리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점점 더 멀리멀리 나아가다 이윽고 마을 바깥으로 사라져 버렸어요. 사람들은 산과 들판 너머 사막과 바다를 건너 온 세계를 여행하게 되었습니다. 길게 길게 늘어나는 노래하는 꼬리를 잡고서. 이제 마을에는 이반만 남았습니다.

노래하는 꼬리

그렇게 마을 사람들은 지구를 한 바퀴 돌아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어요. 이반의 꼬리는 지구 둘레만큼 길어졌구요. 이반은 작은 마을을 벗어나 전 세계를 여행하고 돌아온 마을 사람들을 꼭 안아주었어요. 더는 혼자가 아닌 것이 기뻤거든요. 사람들 역시 피곤했지만 아주 행복해 보였어요.

“정말 많은 걸 봤어.”
사람들이 꼬리를 쓰다듬으며 말했지.
그날부터 꼬리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마을에서 살게 되었어.

이반에게 불쑥 꼬리가 나타난 그림책 초반부 장면과 이반의 꼬리 때문에 전 세계를 여행한 후에 달라진 마을 모습을 비교해 보세요. 백지처럼 텅 빈 공허한 작은 마을이 어떻게 변했고 어떻게 이들의 시야가 확장되었는지 확연히 느낄 수 있답니다. 저는 마을에 홀로 남은 이반이 조금씩 조금씩 성장해 마침내 작은 집 바깥으로 고개를 쏘옥 내미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어요. 낯선 것, 두려운 것에 주눅 들어 집안에서 웅크리고 지내던 이반이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 우리도 이런 과정을 거치며 세상 밖으로 나온 것 아닐까요? 경험으로 성장하는 어제의 나, 오늘의 나, 그리고 내일의 내 모습입니다.

이반의 꼬리는 세상과의 단절이나 소외가 아닌 외연 확장의 계기가 됩니다. 이반뿐 아니라 작은 세상에 살던 친절한 사람들 모두에게 커다란 선물이 된 셈이죠. 이제 작은 마을은 더 이상 예전의 작은 마을이 아닐 거예요. 노래하는 꼬리가 함께 살고 있는 그곳은 세상 밖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한 사람들로 가득한, 언제든 세상을 향해 활짝 열려있는 곳, 낯선 존재를 기꺼이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 되었을 테니까요.

“노래하는 꼬리”는 기아 리사리의 글에 “할머니의 팡도르”에서 인상 깊은 일러스트를 보여주었던 비올레타 로피즈의 일러스트로 완성한 그림책입니다. 빨간색과 검은색 그리고 하얀색만을 사용해 강렬한 느낌으로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어요.

어느 날 갑자기 나에게 낯선 꼬리가 생겼다면? 혼자 고민하고 마냥 울고만 있지 마세요. 어쩌면 그 꼬리가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가져다줄지도 몰라요. 어떻게 바라보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모든 것은 다 달라지기 마련이지요. 누구든 크고 작은 문제를 해결하면서 조금 더 단단하게 조금 더 옹골차게 자라납니다. 그렇게 나의 왕국을 채워가고 넓혀가는 것입니다.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0 0 votes
Article Rating
알림
알림 설정
guest
0 Comments
Inline Feedbacks
모든 댓글 보기
0
이 글 어땠나요? 댓글로 의견 남겨주세요!x
()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