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내

가시내

김장성 | 그림 이수진 | 사계절
(발행 : 2006/01/16)


매주 목요일은 예전 그림책들을 소개하는 ‘내 오랜 그림책’ 코너를 업데이트 하는 날이죠. 우리 그림책과 해외 그림책을 번갈아가며 소개하고 있는데 이번 주는 우리 그림책 차례라 원래는 “만년샤쓰”(방정환, 김세현 / 길벗어린이 / 1999)를 리뷰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산책 중에 들린 알라딘 중고매장에서 이 책을 발견했습니다. ‘가시내’란 말의 어원에 얽힌 이야기를 담은 “가시내”. 옆에 있던 딸내미가 자기 어릴 적에 재미나게 읽었던 거라며 하도 반가워하길래 사들고 돌아와서 이렇게 리뷰까지 쓰고 있습니다.

잠깐 찾아보니 ‘가시내’란 말의 유래에는 두 가지 설이 있더군요. 하나는 ‘갓 쓴 애’가 조금씩 변형이 되어서 ‘가시내’가 되었다는 설. 또 하나는 ‘가짜 사내 > 가사내 > 가시내’가 되었다는 설. 그림책은 과연 어떤 설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는지 한 번 확인해볼까요?

※ 물론 위 두 가지 설 모두 어디까지나 재미를 위해 만들어진 썰일 뿐입니다. 여자 또는 아내란 뜻의 ‘갓’과 누구네 남정네 처럼 단순히 사람을 뜻하는 ‘내(네)가 합쳐진 말이란 학설처럼 말의 뿌리에서 유래를 찾는 몇 가지 정설은 따로 있으니 오해 없으시길.

가시내

옛날에,
여자 아이가 하나 있었는데
어찌나 개구지고 씩씩하던지

옛날 어느 마을에 그림만 봐도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만큼 씩씩하고 개구진 여자 아이 하나가 살고 있었대요. 그 동네 사내놈들 모두 여자 아이 뒷꽁무니 따라다니며 졸병 노릇 하느라 정신 없었다죠 아마. 그런데 어느날 못된 이웃 나라가 갑자기 쳐들어오는 바람에 온동네 남정네들은 죄다 나라를 지키겠다고 전쟁터로 떠나게 되었대요.

우리 주인공 여자 아이가 나라가 위기에 처한 이 상황에서 가만히 있을 리 없죠. 자기도 나라를 지키러 가겠다고 나서는데 어머니도 아버지도 마을 사람들도 모두 여자 애가 무슨 전쟁이냐며 아서라 관둬라 쓸데 없는 소리 말고 집이나 지켜라… 말리기만 합니다.

가시내

하는 수 없이 모두 잠든 밤에 채비를 하고 전쟁터를 찾아간 여자 아이. 하지만 전쟁터에서도 역시 반겨주는 이 하나 없습니다.

“뭣이? 계집아이가 싸움터에 나가겠다고?
썩 돌아가거라.
남자와 여자는 할 일이 따로 있느니라.
나라는 사내들이 지키는 거야.”

지엄한 장군 앞에 나서서는 능글맞은 표정으로 자기도 싸우게 해달라고 간청했지만 역시나 돌아온 대답은 계집애가 무슨 싸움터냐, 남자와 여자는 할 일이 서로 다르다, 썩 돌아가라, 나라는 사내들이 지키는 거다…

“저도 잘 싸울 수 있다고요!”

말 타기, 활 쏘기, 창 던지기 등등 아이는 있는 실력 없는 실력 모두 끌어내서 시범을 보였지만 장군은 거들떠 보지도 않은 채 전쟁터에 계집은 필요 없다며 쫓아내고 말았대요.

가시내

그 이튿날 큰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몇 천 몇 만이나 들이닥쳐 물밀듯 밀어붙이는 적군에 맞서 우리 군사들이 용감히 싸웠지만 점점 더 밀려나고 말았죠. 병력의 차이가 하도 나니 장군도 뾰족한 수 없이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는데…

가시내

그 때 갓 쓴 아이 하나가 나타나서는 적진으로 뛰어들더니 “이놈들! 돌팔매 맛 좀 봐라!”하고 냅다 소리 지르며 사방으로 돌팔매를 날리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적군이 픽픽 쓰러져.
팔을 한 번 휘두르면 적군 열 명이,
또 한 번 휘두르면 스무 명이,
서른 명, 마흔 명이 자꾸 쓰러져.

깜짝 놀란 적군이 갈팡질팡 우왕좌왕 하는 틈을 타서 우리 군사들이 다시 밀고 들어가자 전세는 단박에 뒤집어졌고 삽시간에 적군을 모두 물리쳤어요.

가시내

“갓 쓴 애!”
“갓 쓴 애!”

승리의 기쁨 가득한 군사들은 소리 높여 ‘갓 쓴 애’를 외쳤대요. 장군도 싱글벙글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넌 어디에서 온 누구냐 물었대요.  여러분들은 누군지 다들 아시죠?

그 뒤로 사람들은 그 아이를 ‘갓쓴애’라 불렀어.
그런데 ‘갓쓴애’, ‘갓쓴애’ 하다 보니 혀가 고되잖아.
그래서 ‘가스내’, ‘가스내’ 하다가 ‘가시내’라 하게 되었대.

그 뒤로 사람들은 그 아이를 ‘갓쓴애’로 불렀대요. 재미난 건 ‘갓쓴애’에서 ‘가시내’로 조금씩 변하게 된 이유. 갓쓴애는 발음이 세서 혀가 힘들어서 그랬다는… 🤣

가시내

그리고 집집마다 여자 아이가 새로 태어나면
가시내처럼 씩씩하게 자라라고
‘가시내’, ‘가시내’ 하며 무척 좋아했다지.

그 뒤로는 집안에 여자 아이가 새로 태어면 사내놈 아니라고 서운해 하지 않고 기뻐했대요. 계집애니까 얌전하게 자라라 빌지 않고 가시내처럼 씩씩하게 자라라고 빌었대요. 가시내, 가시내 하며 무척 좋아하면서 말이죠. 이 마지막 장면에 이 글을 쓴 작가님 역시 딸바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딸아이에게 들려주려고 쓴 글 아닐까 하고 말이죠. ^^

오랜만에(거의 20년?) 부녀가 나란히 앉아서 함께 읽으며 추억에 잠겨 웃게 만들어준 그림책 “가시내”. ‘가시내’란 말의 유래도 재미나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옛날이야기 들려주는 듯한 구수한 말투도 정겹고, 익살스러우면서도 개성 넘치는 그림이 아주 인상적인 그림책입니다. 외동딸 둔 이 세상 모든 딸바보 아빠들에게 강추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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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오랜 그림책들

이 인호

에디터, 가온빛 레터, 가온빛 레터 플러스 담당 | ino@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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