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_이수지

동물원

글/그림 이수지 | 비룡소
(발행 : 2004/08/31)


‘동물원’을 소재로 한 그림책들은 아주 많이 있어요. 그림책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제일 먼저 앤서니 브라운의 “동물원”을 떠올리셨을 거예요. 이치카와 사토미가 맑고 투명하게 그려낸 “존 선생님의 동물원”을 떠올린 분들도 있을 거구요. 한태희 작가의 “손바닥 동물원”, 로드 캠벨의 “안녕, 내 친구!”은 아기들에게 인기 있는 동물원 소재 그림책이죠. 수의사와 인간의 시각에서 동물복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에릭 바튀의 “내일의 동물원”, 동물의 입장에서 행복할 권리를 이야기하는 허정윤, 고정순 작가의 “우리 여기 있어요, 동물원”도 있습니다. 한때 가족 나들이 장소의 대명사로 여겨졌던 동물원, 지금은 그 의미가 조금 달라졌음을 그림책으로도 확인할 수 있네요.

2004년 발행한 그림책 이수지 작가의 “동물원”, 이수지 작가는 그림책 속에 어떤 이야기를 담았을까요? 이 그림책은 엄마 아빠 따라 동물원에 놀러 간 아이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아래 몇 장 그림으로 우선 감상해 보세요.

동물원_이수지

우리는 고릴라 집에도 갔고요,

동물원_이수지

곰 동산에도 갔어요.

동물원_이수지

기린 마을에도 갔지요.

차분한 아이 목소리를 따라 동물원 나들이를 갑니다. 그런데 페이지를 넘기면 넘길수록 어딘가 이상해 보여요. 목소리로는 등장하지만 그곳에서 보이지 않는 아이, 아이가 사라진 걸 알아차리고 당황한 엄마 아빠. 눈여겨 살펴보면 동물원 우리에 있어야 할 동물들도 보이지 않습니다. 나들이 온 사람들만 등장할 뿐. 어디서부터 사라진 걸까요? 동물들은 처음부터 동물원에 없었어요. 제일 처음 만나는 그림책 표지 그림에도 동물은 보이지 않습니다. 아이가 갔다고 말하는 고릴라 집, 곰 동산, 기린 마을에도 동물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니 아이가 ‘갔다’고 말했지 ‘보았다’고 말하지는 않았네요. 그렇다면 아이는 언제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맨 위로 올라가 보면 회색빛 동물원 공간 안에서 유일하게 색채를 띠고 있는 공작새를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동물원 우리 밖에 있는 존재, 공작새. 두 번째 그림을 보면 아이는 그 공작새를 따라가고 있어요. 보이지도 않는 동물들을 구경 하느라 엄마 아빠는 아이가 사라지는 것도 모르고 있지요.동물원_이수지

공작새를 따라 간 아이, 저만치 앞서가는 공작새의 세상은 색채로 가득합니다. 회색빛 이쪽 세상, 공작새가 안내하는 알록달록 환상의 공간, 그 환상의 세계에 발 딛는 순간 아이에게도 색채가 생겨났어요. 이쪽 세계에서 저쪽 세계로 건너가는 아이 몸 절반에 물든 화사한 분홍색.

이수지 작가는 환상의 세계를 이렇게 독특한 시선으로 보여줍니다. 아이는 여전히 엄마 아빠가 있는 세상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그곳엔 어떤 동물도 존재하지 않아요. 그 동물들은 모두 아이와 함께 자유로운 환상의 세상에 가 있답니다. 그 환상의 세상은…

동물원_이수지

행복 가득한 세상입니다. 사람과 동물 사이 경계도 없고 울타리도 없는 자유로운 대자연의 세계 그 자체.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동물원 풍경, 그리고 아이를 찾아 이리저리 헤매고 있는 엄마 아빠의 표정과는 완전히 대조적입니다.

이 모든 건 지루한 동물원 나들이에 지친 아이가 꾼 꿈일까요, 상상으로 그려낸 환상의 세계일까요? 현실로 돌아온 후에도 아이에게는 분홍색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파도야 놀자”에서 파도와 신나게 놀다 온 아이 원피스에 푸른 바다색이 물들었던 것처럼요.

아빠 품에 안겨 환한 표정으로 동물원을 나서면서 아이가 말합니다.

동물원은 정말 신나는 곳이에요.

아이 표정과는 달리 반쯤 넋 나간 듯한 엄마 아빠 표정이 웃음을 자아냅니다. ‘동물원은 정말 피곤한 곳이에요’라고 표정이 말하고 있는 것 같아서 말이죠. 이렇게 말하는 아이 앞에 나타난 색색깔 동물들,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는지 엄마 아빠가 쓱 돌아보지만… 엄마 아빠 눈에는 그저 황량하고 쓸쓸해 보이는 동물원 입구만 보일 뿐입니다.

치밀하고 독특하게 구성된 이 그림책을 다시 한번 살펴보면 더 많은 이야기들을 발견할 수 있어요. 앞 면지에는 철창 문을 열고 나와 현실 세계에서 환상 세계로 들어가는 고릴라가 그려져 있고 뒤쪽 면지는 환상 세계에서 현실 세계로 돌아가는 고릴라의 모습이 담겨있어요. 떠밀리듯 고릴라 철창으로 되돌아가는 고릴라의 모습은 얼마나 안쓰러운지요. 그림책을 다 읽고 나면 뒤표지의 고릴라가 가지고 있는 것의 의미를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림책 곳곳에 반복 등장하는 인물들과 소품들도 눈여겨 살펴보세요. 시종일관 짓궂은 장난을 치는 형제, 토끼 풍선을 쥐고 있는 자매, 악어 모자를 쓴 유모차 탄 아이, 사진사 아저씨, 시선이 항상 환상의 세계를 향하고 있지만 환상의 세계에 갔을 때 유일하게 색채가 없는 주인공 아이의 새 풍선, 재미있게 놀다 잃어버린 아이의 분홍색 신발 한 짝의 행방까지 세세하게 살펴보세요. 환상의 세계 안내자인 공작새가 그림책 어디에서 처음 등장했는지도 꼭 찾아보세요.

앞표지에서 시작해 마지막 뒤표지까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그림책 “동물원”, 뭔가 큰 기대를 하고 찾아가지만 막상 동물원에 가보면 텅 비어 있거나 한쪽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동물들을 보고 마음이 무거워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수지 작가는 그런 쓸쓸한 동물원에 상상의 힘을 보태 마법의 공간으로 변신시켰어요. 순수한 생명들이 함께 어우러져 자유롭게 꿈꿀 수 있는 장소로.


내 오랜 그림책들

이 선주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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