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물 고개

단물 고개

소중애 | 그림 오정택 | 비룡소
(발행 : 2010/03/05)


목마를 때 시~원한 물 한 모금이면 세상 부러울 게 없지요. 시원하게 마신 물맛을 달다고 표현한 우리 조상들의 표현력, 정말 대단하죠. 옛날 옛날 어느 고개 작은 옹달샘에서 단물이 퐁퐁 솟아났대요. 그래서 그림책 제목이 “단물 고개”, 이 그림책은 천안시 성거읍 오목리에서 전해오는 전설을 재구성해 만들었다고 해요. 원래는 술고개(술 좋아하는 어른에게는 단물이겠죠 ^^)였는데 아이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술’을 ‘단물’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단물 고개

옛날 옛날 깊고 깊은 산골 작은 초가집에 효심 깊은 총각이 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었어요. 총각이 나무하러 산에 가면 늙은 어머니는 아들 걱정에 당부에 당부를 거듭합니다. 호랑이 조심해라, 점심 꼭꼭 씹어 먹어라. 아들 걱정을 하는 어머니에게 총각은 언제나 밝은 얼굴로 대답했어요. 나무하러 가는 총각 지게에 대롱대롱 매달린 보리 주먹밥, 간결한 선으로 그린 그림이 이들의 소박한 삶을 잘 보여주고 있어요.

하루하루 열심히 일했지만 가난을 면하기는 쉽지 않았어요. 쌀독에는 언제나 쌀이 달랑달랑. 하지만 가난도 이들의 행복을 빼앗지는 못합니다. 총각은 언제나 지극정성 어머니를 섬겼어요.

단물 고개

어느 무더운 날, 나무를 팔러 장에 가던 총각은 몹시 목이 말랐어요. 물 한 모금이 간절한 때 어디선가 뽀골뽀골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어요. 주변을 살펴보니 바가지만 한 크기의 옹달샘에서 물이 솟아나고 있었어요. 시원한 물 한 모금 마신 총각, 마치 유명한 이온 음료 광고를 찍는 것 같아요. (나나나~ 나나 나나나~ 날 좋아한다고… ^^) 얼음처럼 차갑고 머루처럼 달콤하고 박하처럼 향기로운 물, 단물의 맛!

우연히 옹달샘을 발견하면서 이야기는 대전환을 맞습니다. 총각은 고갯마루에 움막을 짓고 단물 장사를 시작했어요.

ㅍ

물맛을 본 사람들이 오고 또 오고, 돈이 쌓이고 또 쌓이고. 총각은 정신없이 바빠집니다. 어머니를 생각할 겨를이 없어요. 어머니의 말씀에 총각의 대답은 이제 ‘바빠요 바빠~’가 되었어요.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단물 파느라 바쁘고 돈 세느라 진짜 진짜 바쁘고 단물 판 돈으로 뭘 할까 궁리하느라 정말 정말 바빴거든요.

사람들이 단물을 마시러 끝도 없이 밀려오는데 바가지만한 구멍에서 솟아 나오는 단물은 늘 뽀골뽀골… 한 바가지 퍼내고 한참 있어야 차올랐어요. 돈에 눈먼 총각은 조바심이 났어요.

단물 고개

“물구멍이 커지면 단물이 콸콸콸 솟아날 거야!”

곡괭이로 샘을 파대는 총각의 눈에선 더 이상 이전의 소박한 삶을 찾아볼 수 없어요. 작은 것에 감사하고 예쁜 것에 즐거워하던 마음은 잊은지 오래지요. 탐욕은 스스로 커진다고 했던가요. 이 이야기의 끝은… 아마 여러분도 상상할 수 있을 거예요.

지나친 과욕은 불행을 불러온다는 옛이야기는 참 많이 있어요. 이솝 우화 ‘황금 알을 낳는 거위’도 비슷한 맥락을 갖고 있지요. 욕심에 눈이 멀어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갈랐지만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모든 걸 잃고 만다는.

저는 그림으로만 마무리한 이 그림책의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었어요. 총각이 돌아가고 난 그 자리에서 다시 뽀골뽀골 솟아오르는 단물, 보는 이에 따라 다양한 상상을 할 수 있도록 열린 결말로 마무리했습니다.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이야기 나눠 보세요. 황금 알을 낳는 암탉은 죽는 것으로 끝났지만 샘물은 다시 솟아 나오니 그걸로 재미있는 이야기가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올 거라 생각합니다.

리듬감을 잘 살려 읽는 재미를 더한 글도 좋지만 이 그림책의 가장 큰 매력은 전통과 현대의 느낌을 오묘하게 조합한 오정택 작가의 세련되고 감각적인 그림입니다. 수묵화의 기본 그림 위에 주홍색 분홍색, 파랑색으로 이야기에 변화를 만들어 냈어요. 옹달샘을 표현한 파랑색은 순수함을 상징하고 있고 주홍색은 더위, 욕심을 상징합니다. 욕심에 점점 변해가는 총각의 표정이나 몸짓을 주의 깊게 살펴보세요. 처음엔 파란색 테두리였던 총각이 돈 욕심에 마음이 바뀌면서 주홍색 테두리로 바뀌어 가니 그 시점이 언제인지 찾아보세요.

인생은 수많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단물을 마시는 것도, 그 단물을 팔겠다 생각한 것도, 단물을 더 많이 나오게 만들려 한 것도 모두 총각의 선택이었죠. 인생의 갈림길에서 무엇을 선택하는지에 따라 우리의 인생이 달라집니다. 지금의 나는 그런 선택의 결과입니다.

오랜 시간 전해져 온 옛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교훈을 얻습니다. 옛이야기의 강력한 힘은 여기에 있어요. 선악이 명확한 이야기를 통한 간접 경험으로 우리 아이들은 무엇이 더 현명한 판단이고 선택인지 자연스럽게 알게 됩니다.

너무나 뻔하지만 잊고 사는 그 무엇들, 옛이야기는 절대로 잊지 말라고 이야기합니다. 위기의 순간 옛이야기가 주는 교훈을 통해 삶을 더 지혜롭고 현명하게 살아가기를… “단물 고개”가 저 멀리에서 조용히 우리를 지켜보고 있어요.


내 오랜 그림책


※ 정유정 작가의 장편 소설 “내 심장을 쏴라” 북커버 디자인도 오정택 작가의 작품입니다. 홈페이지에서 낯익은 북커버 디자인들이 오정택 작가 작품이었다는 사실을 오늘 처음 알고 너무나 반가웠어요. (아, 이것도! 이러면서요. ^^)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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