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보여드리는 두권의 그림책은 묘한 인연이 있는 듯 보여 함께 소개합니다. 두 책이 약속이라도 한 듯 2014년 7월 7일 같은 날 출간했습니다. 그리고 ‘장애인’이라는 같은 주제를 담고 있으면서 한 권은 장애인의 시각에서, 다른 한 권은 비장애인의 시각에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습니다.

프랑스에서 건너 온 “아나톨의 작은 냄비”와 얼마 전 “내 동생“을 통해 만났던 조은수 작가의 “병하의 고민”이 바로 그 두 권의 책입니다.


아나톨의 작은 냄비
아나톨의 작은 냄비

(원제 : La Petite Casserole d’Anatole)
글/그림 이자벨 카리에 | 옮김 권지현 | 씨드북
(발행 : 2014/07/07)

“꼬마 니콜라”의 펜으로 슥슥 그린 듯한 그림이 생각나는 꼬마 아나톨은 무슨 이야기를 가지고 프랑스에서 찾아 왔을까요? “아나톨의 작은 냄비”를 보고 나서 장 자끄 상뻬의 “얼굴 빨개지는 아이“가 생각이 났습니다. 다른 소재긴 하지만 결국은 일맥상통한 의미가 담겨있는게 아닐까 하고 생각이 들었거든요.

아나톨은 아주 상냥하고, 그림도 아주 잘 그리고, 음악을 사랑하는 아이입니다. 잘하는게 아주 많은 아이죠. 하지만 사람들은 아나톨을 이상한 눈으로만 쳐다봅니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상냥하게 다가가서 인사라도 할라치면 사람들은 불편해 하기만 하죠. 왜 그냥 반갑게 함께 인사해 주지 않는걸까요?

아나톨의 작은 냄비

그건 바로 아나톨을 언제 어디건 졸졸 따라 다니는 작은 냄비 때문입니다. 아나톨이 상냥하게 인사를 해도, 아나톨이 그림을 아주 잘 그려도 사람들은 아나톨이 아닌 냄비만 쳐다본거였어요. 아나톨은 이 냄비가 어디서 왔는지, 왜 자기를 자꾸만 따라 다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유도 모른 채 자신을 귀찮게 만드는 작은 냄비가 아나톨은 불편하고 거추장스럽습니다. 똑바로 걷기도 힘들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싶을 때도 냄비 때문에 쉽지가 않아요. 그저 평범하게 다른 또래 아이들처럼 지내는 것 조차 아나톨에게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작은 냄비를 없애보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냄비는 아나톨에게서 떨어지지를 않습니다. 결국 아나톨은 숨어버리고 맙니다. 좋아하는 그림도, 즐겨 듣는 음악도 다 마다하고, 사람들에게 상냥하게 인사하는 것도 그만 두고 자기 자신 속으로 꼭꼭 숨어 버립니다. 어찌 보면 그게 더 편한 것도 같습니다. 자기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 보는 사람도 없고, 뭔가 해 보려다 뜻대로 되지 않아서 화를 낼 일도 없고 말이죠. 그런데 그렇게 숨기만 하다가 사람들에게서 아예 잊혀져버리면 어떻게 하죠?

아나톨의 작은 냄비

안녕, 꼬마야?

어느 날 누군가가 아나톨에게 와서 인사를 합니다. 엄마 아빠 말고는 누군가가 자기에게 먼저 와서 인사를 건네는 건 처음 있는 일입니다. 선뜻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는 아나톨… 하지만, 아나톨은 원래 상냥한 아이잖아요. 이내 마음의 문을 열고 반갑게 인사를 건넨 사람에게 활짝 웃으며 인사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서 냄비를 가지고 살아가는 방법들을 하나씩 배웁니다.

아나톨은 이제 자신이 무엇을 잘 하는지도 알게 되었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을 표현하는 법도 배웠어요. 아나톨의 숨은 재능이 하나씩 하나씩 꺼내어지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에 익숙해지자 서서히 사람들은 냄비가 아닌 아나톨에 집중할 수 있게 됩니다. 이젠 아나톨이 그린 멋진 그림을 보면서 칭찬도 해 주고 격려도 해 준답니다.

아나톨의 작은 냄비

과연 무엇이 아나톨을 변화시킨걸까요?

세상에는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되요.
그럼 작은 냄비를 벗어 버리고 싶어지거든요.

아나톨을 변화시킨 그 사람이 보기에 아나톨을 따라 다니는 냄비는 별 것 아니었어요. 왜냐하면 우리는 누구나 다 크고 작고의 차이가 있을 뿐 작은 냄비를 하나씩 갖고 있으니까요. 아나톨의 냄비는 다른 사람들 것 보다 조금 더 컸을 뿐이죠. 아나톨은 전과 달라진게 없어요. 아나톨을 늘 따라 다니는 냄비도 여전히 있구요. 바뀐 게 있다면 아나톨이 그 냄비를 부끄러워 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당당하게 드러낼 수 있게 된 것 뿐입니다.

차이를 극복하는 이해와 배려

사실 바뀐 것은 아나톨이 아니라 아나톨의 주변 사람들이었던겁니다. 당당하게 자신의 재능을 드러내고 자기 표현을 하는 아나톨을 보면서 냄비가 아닌 아나톨에게 집중할 수 있게 된거죠. 그리고, 아나톨에게 집중하다 보니 아나톨이 상냥하고 재능이 많은 아이라는 걸 알게 된거구요. 이렇게 아나톨은 자신을 이해하고 배려해 주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찾게 된겁니다.

아나톨의 작은 냄비

아나톨은 예전과 똑같은 아나톨이랍니다

이 책을 만든 이자벨 카리에는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딸아이를 키우는 엄마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딸 아이를 있는 그대로 봐 주지 못하는 이웃들에게 작은 냄비를 통해 그 아이 역시 우리와 꼭같은 존재임을 이해시키고 있습니다. 이해와 배려, 관심과 사랑으로 우리가 한 발 다가서기만 하면 우리 주변의 수많은 아나톨들이 그들의 상냥함과 그들의 재능으로 우리에게 환한 미소를 선물할거라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해주는 그림책 “아나톨의 작은 냄비”였습니다.

※ 내용 추가(2014/08/05)

“아나톨의 작은 냄비”가 6분짜리 단편 애니메이션(감독 : 에릭 몽쇼)으로 제작되어 지난 7월 열린 제18회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 2014)에 출품했었습니다.(경쟁-KID부문). 

트레일 영상 보기 : 1분 2초 짜리 | 35초 짜리


병하의 고민
병하의 고민

글/그림 조은수 | 양철북
(발행 : 2014/07/07)

어느 날 길에서 자기 또래의 장애인을 만난 병하는 어딘가 조금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할머니에게 묻습니다. “할머니, 저 아이는 왜 이 세상에 온 거예요?” 하고 말이죠. 병하의 결코 쉽지 않은 질문에 할머니의 이야기가 시작 됩니다. 그림책 “병하의 고민”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병하의 고민

할머니는 이 아이가 우리와 조금 다른 모습 때문에 사람들에게 외면 당하고 놀림 꺼리가 되기도 하지만 용기를 내서 한 발 더 다가서서 그 아이를 바라 보면 지금 껏 보지 못했던 아이의 참 모습을 볼 수 있고, 그 아이의 숨겨진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해 줍니다. 그리고, 우리 이웃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장애인 친구들의 이야기들을 하나씩 들려 주죠.

경희는 온몸으로 격렬한 춤을 추듯이 걸어요.
겨우 몇 십 미터를 걷는데 몇 년은 걸리는 것처럼 느리지요.
‘아, 저런 애는 무슨 낙으로 살까?’ 얼핏 그런 생각이 스쳤어요.
그런데 수영복으로 갈아입혀 물 속에 넣어주자
경희가 매우 기뻐하며 팔다리를 움직였어요.
얼굴에 물이 튀자 맛있는 것이라도 먹은 것처럼
푸하아 하고 만족스러운 숨을 토해냈어요.
그 때 난 처음으로 깨달았어요.
지난 이십여년 간 수영 교사를 하면서
한 번도 경희처럼 물 속에서 희열을 느껴 본 적이 없다는 걸.
난 그저 겉돌기만 했을 뿐.

삶에서 온몸으로 느끼는 기쁨이란 게 어떤 건지
그날 처음 경희를 통해 배웠지요.

복지관 수영 선생님

병하의 고민

수영 교사로서 늘 물과 함께 생활해 왔지만 단 한번도 장애인인 경희처럼 물 속에서 희열을 느껴 본 적이 없다는 선생님. 절실함과 열정이 없이 사는 삶이 얼마나 무미 건조한지를, 그리고 열정적인 삶이 어떤 것인지를 ‘아, 저런 애는 무슨 낙으로 살까?’라고 생각했던 아이에게서 배우게 된 수영 선생님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 꺼리들을 던져 주는 듯 합니다.

배려와 이해로 함께 살아가는 세상

이어서 할머니는 장애인 딸을 두었던 소설가 펄 벅, 몸이 약해서 늘 지병에 시달렸던 ‘강아지똥’의 권정생 선생님, 헬렌 켈러 등의 이야기를 더 들려 주십니다. 그들의 삶을 통해 장애인도 우리와 똑같이 열심히 삶을 살아가는 우리 이웃일 뿐이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거겠죠. 그래서 할머니는 병하에게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해 주십니다. 모두가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하며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 대해서 말이죠.

병하야, 이젠 알겠지?
저 아이는 너와 함께 살기 위해 온 거란다.
이 땅에서 너와 함께 살기 위해.

병하의 고민

“병하의 고민”은 비장애인의 입장에서 아이들이 장애인에 대한 올바른 시각을 갖게 해 주고자 만든 그림책이라고 보면 될 듯합니다. 하지만, 비장애인의 입장이라는 것이 어쩔 수 없는 한계로 작용을 한 탓인지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를 설명하는 할머니의 이야기들 중에는 읽는 사람들에 따라서는 공감하기 쉽지 않은 부분들이 있을 수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아나톨의 작은 냄비”는 ‘우리는 모두 본질적으로는 같다’라는 관점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반해, 이 책에서는 ‘같지 않다, 가여운 존재다’라는 관점에서 시작되는 듯한 느낌입니다. 아마도 장애인에 대해서 비뚤어진 시각과 편견을 갖고 있던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려는 목적으로 쓰여진 글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장애인들 가까이서 그들을 돌보고 가르치며 생활하는 선생님들의 사연들을 통해서 작가는 아이들에게 들려 주고 싶었던 메시지를 잘 살려 내고 있습니다. 장애인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들과 교감하기 위해 애쓰는 선생님들의 모습, 장애인 아이들의 의지와 열정으로 오히려 선생님이 배움을 얻는 모습… 선생님들이 장애인 아이들과 교감을 이루는 바로 그 순간이 장애인 아이들에겐 그들도 이 사회의 일원임을, 그들이 좋아하고 따르는 선생님과 꼭같은 존재임을 느끼게 되는 짜릿한 희열의 순간 아닐까요?

그리고 이 것이 바로 작가가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 엄마 아빠들에게 들려 주고 싶은 이야기겠죠. 장애인 비장애인의 구분 이전에 우리는 서로 이웃이고, 서로 도우며 함께 살아가야 하는 존재라는 사실 말입니다.


이제는 우리 사회도 예전에 비해서는 훨씬 훈훈해졌죠? 기부와 자원봉사에 대한 관심이 아주 많아졌잖아요. 그리고 장애인에 대한 시각도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됩니다. 이제는 굳이 설명을 따로 하지 않아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요? 다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용기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장애인이건 비장애인이건 상관 없이 우리 이웃에게 한 발 더 다가설 수 있는 용기 말이죠!

우리 이웃에게 한발 다가서서 손 내미는 용기, 자신을 따라 다니는 작은 냄비를 벗어 버리는 용기. 우리 모두 조금씩 용기를 낼 때 아나톨과 병하가 함께 웃으며 살아갈 수 있을겁니다.


※ 함께 읽어 보세요

장애인이 만든 그림책 : 달콤한 목욕

Mr. 고릴라

앤서니 브라운의 "고릴라" 덕분에 그림책과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제일 좋아하는 작가가 앤서니 브라운은 아닙니다. ^^ 이제 곧 여섯 살이 될 딸아이와 막 한 돌 지난 아들놈을 둔 만으로 30대 아빠입니다 ^^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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