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노키오는 왜 엄펑소니를 꿀꺽했을까?

피노키오는 왜 엄펑소니를 꿀꺽했을까?

글/그림 박연철 | 사계절
(발행 : 2010/01/05)


르네 마그리드의 ‘겨울비’(Golconde, 1953)를 연상 시키는 그림책 첫 페이지를 보고 가온빛지기들에게 물어봤어요. 이 할아버지 누굴까요? 정답은 알프레도 히치콕! 서스펜스, 스릴러 영화의 대가 히치콕이 자신을 내기쟁이 할아버지로 소개하며 우리에게 내기를 하자고 제안합니다.

이제부터 여덟 가지 이야기를 들려줄 건데
이야기마다 거짓말이 들어 있어.
거짓말에 속으면 너희가 지는 거고
속지 않으면 너희가 이기는 거지.

너희가 이기면 커다란 엄펑소니를 줄게.
대신 지면 내 부탁을 하나 들어줘야 해.

피노키오는 왜 엄펑소니를 꿀꺽했을까?

첫 번째 이야기에는 맛있는 걸 좋아하는 엄마 잉어와 아이 잉어가 나와요. 엄펑소니가 지겨워진 엄마 잉어와 아이 잉어는 죽순이 맛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죽순이 너무 먹고 싶어 그만 병이 나고 말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아이 잉어가 요술 부채를 손에 넣게 됩니다. 아이 잉어는 요술로 죽순을 얻었어요. 소원이 이루어진 거예요. 아이 잉어는  혼자 허겁지겁 죽순을 다 먹어 치웠어요.

이렇게 부모가 먹고 싶어 병이 나든 말든
자기 배만 채우는 착한 마음을 효(孝)라고 해.

놀라운 반전에 다들 눈이 똥그래졌을 것 같은데요. 그걸… 혼자서… 허겁지겁? 그리고 그걸 ‘효’라고 한다고… 뭔가 좀 이상하죠? 그럼 다음 이야기는 어떨지,  한 번 들어 보세요.

피노키오는 왜 엄펑소니를 꿀꺽했을까?

사이가 나쁜 할미새 형제, 하루는 학교 가던 동생 할미새가 물수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어요. 그걸 본 형 할미새는 나 몰라라 하고는 가 버렸대요. 위험에 처한 동생을 보고도 나 몰라라 도망가는 형을 비상구 표시 모양의 상징적 그림으로 표현했습니다. 형제가 두들겨 맞든 말든 모르는 척하는 착한 마음을 우리는 제(悌)라고 하지요.

피노키오는 왜 엄펑소니를 꿀꺽했을까?

어딘가 뭔가 비틀린 것 같은 이 이야기, 이 그림책은 문자도를 활용해 만든 그림책이에요. 글자의 의미와 관계있는 고사의 내용을 한자 획 속에 그려 넣어 서체를 구성한 민화를 ‘문자도’라고 합니다. 그림 글씨 또는 서화도, 꽃 글씨라고 불리기도 해요. 문자도는 ‘효제충신 예의염치(孝悌忠信 禮義廉恥)’순으로 여덟 글자를 그린 윤리 문자도가 가장 많이 알려져 있어요. 대개 문자도를 여덟 폭짜리 병풍으로 만들어 집안을 장식하는 용도로 사용했지요. 문자도의 형식을 빌려온 이 그림책도 병풍 그림책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효제충신(孝悌忠信)은 어버이에 대한 효도, 형제끼리 우애, 임금에 대한 충성, 친구 사이의 믿음을 이르는 말이고 뒤의 네 글자 예의염치(禮義廉恥)는 예절과 의리, 청렴과 부끄러움을 아는 태도를 말해요. 각각의 문자도는 관련 고사에 등장하는 소재를 이용해 표현하는데 이 그림책 역시 그 이야기에서 토대를 가져와 이야기를 재구성했어요.

병풍 너머 이어지는 여덟 가지 이야기를 듣다 보면 오랜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이치는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생각이나 가치는 영원한 것이니까요.

인간의 기본 도리를 반어적으로 표현한 풍자 문자도 “피노키오는 왜 엄펑소니를 꿀꺽했을까?”, 숨은 그림 찾기처럼 그림 속에 몰래몰래 숨어든 피노키오를 찾아보세요. 코가 긴 피노키오, 이 이야기는 모두 거짓이라는 걸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내기 할아버지가 말한 ‘엄펑소니’는 무엇일까요? 박연철 작가는 마지막까지 우리에게 큰 웃음을 안겨줍니다.

피노키오는 왜 엄펑소니를 꿀꺽했을까?
‘엄펑소니’의 뜻이 숨어있는 장면

글자를 기다랗게 쓰되 가로획만 두껍게 써서 표현하는 바코드 같은 글자, 여기에 엄펑소니의 뜻이 숨어있는데, 혹시 이런 글자를 만들어 친구들과 주고받기했던 추억을 가진 분 있나요? 저는 예전에 많이 하고 놀아서인지 이 장면이 더더욱 반가웠어요. 한쪽 눈을 감고 책을 아래로 기울여 보면 엄펑소니의 뜻이 보일 거예요. ‘엄펑소니’ 뜻을 몸통에 품고 있는 피노키오의 코는 어느새 제자리로 돌아왔네요. 빨간 모자 쓴 피노키오의 얼굴은 이 그림책의 저자인 박연철 작가로 보이는데… (검색의 힘으로 작가님의 얼굴을 한 번 찾아보시길~)

다양한 표현 기법, 재미난 이야기, 곳곳에 숨어있는 명화 패러디들, 궁금증을 쫓아가고 발견하고 찾아가면서 보면 더 많은 것들이 보이는 재미있는 그림책 “피노키오는 왜 엄펑소니를 꿀꺽했을까?”입니다.


내 오랜 그림책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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