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가 댕댕댕

물고기가 댕댕댕

글/그림 유미정 | 웅진주니어
(발행 : 2021/01/08)


그림책들 살피고 골라서 소개하다보면 마음에 쏙 드는 그림책을 만났을 때 조금이라도 더 정성들여 쓴답시고 뜸만 들이다 새 책들은 계속 나오고 리뷰할 책들 잔뜩 쌓여서 결국 못쓰고 지나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각 연도별로 ‘가온빛 추천 그림책 Best 101’ 목록을 보면 아직 리뷰 링크를 걸지 못한 그림책 제목들이 더러 있는 이유입니다.

사천구백아흔아홉 번째로 태어난 멸치의 일생을 통해 우리네 인생 사는 이야기를 담아낸 “멸치의 꿈”이 바로 그런 그림책 중 하나였는데, 유미정 작가가 그새 두 번째 그림책 “물고기가 댕댕댕”을 내놓은지도 여러 달이 지나고 말았습니다. 별 수 없이 두 번째 책 먼저 소개하는 현명한(?) 선택을 뻔뻔스레 해봅니다.

“물고기가 댕댕댕”은 바람 불던 어느 날 절에 산책을 갔던 작가의 눈에 들어온 처마 끝 풍경 소리를 그린 그림책입니다(눈에 들어온 소리? 이 그림책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소리가 눈에 보인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게 될 겁니다). 풍경에 매달린 작은 물고기가 바람에 댕댕이는 소리는 작가를 휘감고 지나쳐 온산을 휘돌아 다닌 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찰나의 순간 깨달음을 얻은 듯 작가의 마음을 일렁이게 한 풍경 소리 함께 들어보시죠.

물고기가 댕댕댕

 

물고기가 댕댕댕

물고기가 댕댕댕

바람이 불면
잠든 물고기 깨어나
바람을 타고 여행을 떠나네.

안녕.

절을 찾은 건 머리를 식히고 마음을 비우기 위함이었을 겁니다. 그 길에서 만난 작은 물고기를 잠에서 깨운 것 역시 복잡한 나를 태우고 훌쩍 떠나 주었으면 하는 마음 탓이겠죠. 가만히 눈을 감고 풍경 소리에 몸을 맡기면 어느새 높은 산 깊은 물 파르란 하늘 휘돌아 다니는 자신을 느낍니다.

물고기가 댕댕댕

물고기가 댕댕댕

높은 하늘 구름을 뚫고
고요한 마음 깨우는 소리.
댕 댕 댕 댕 댕

내가 물이 되면 물이 내가 되고, 산이 내가 되면 내가 산이 되는 지경에 다다를 즈음 맑은 풍경 소리가 다시 나를 깨웁니다. 이제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합니다. 기쁨과 슬픔 그 시작과 끝은 결국 나로부터 비롯됨을. 너무 바랐던 건 아닌지, 너무 욕심을 냈던 건 아닌지, 너무 조급했던 건 아닌지… 나를 다그치느라 잊고 지나온 것들, 잃어버릴 뻔한 것들은 없었는지 돌아봅니다. 다 이룬들, 다 가진들, 누구보다 앞서 나간들 나를 잃고나면 다 부질 없는 것을…

댕댕댕… 나를 채우기 위해 나를 비우는 소리입니다.

물고기가 댕댕댕

 

물고기가 댕댕댕

물고기가 댕댕댕

비가 그치자
바람은 잠잠해지고
물고기는 잠들었네.

안녕.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물고기는 잦아든 바람과 함께 잠이 들었고, 고요한 산사의 밤은 달빛 흐르는 소리만 들립니다. 물고기를 따라 나섰던 나 역시 오늘 밤엔 편안히 잠이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음이 어수선할 때 고요한 산사를 찾아 풍경 소리에 몸을 맡겨 보세요. 묵직한 목탁이나 예민한 죽비의 소리가 깨달음을 향한 절박함의 소리라면, 풍경 소리는 본디 내 안에 깨달음의 씨앗을 지니고 있었음을 일깨워주는 소리입니다. 내 마음 속 잡념들을 깨끗이 비워내주는 소리입니다.

시간이 없거나 종교적 이유로 거부감이 든다면 베란다에 작은 풍경 하나 매달아 두는 것도 방법이겠네요. 그것도 여의치 않은 분들에게는 나를 비우는 풍경 소리의 푸르름을 담아낸 그림책 “물고기가 댕댕댕”을 권합니다.

이 인호

에디터, 가온빛 레터, 가온빛 레터 플러스 담당 | ino@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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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신
안영신
2021/05/03 12:43

그림만 봐도 차분해집니다. 덕분에 마음을 가다듬고 한 주를 시작합니다.

이 선주
Editor
2021/05/03 19:43
답글 to  안영신

풍경 소리 그대로 들려오는 느낌이지요?
영신님의 봄날을 응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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