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구 삼촌

용구 삼촌

권정생 | 그림 허구 | 산하
(발행 : 2009/06/15)


오늘 함께 볼 “용구 삼촌”은 작품집 “통일은 참 쉽다”(민족문학작가회의, 이오덕 / 산하 / 1991)에 실린 동화를 원작으로 만든 그림책입니다. 초판은 2009년에 나왔고 2018년에 책표지를 새로하고 판형을 키운 개정판이 나왔습니다. 이 글은 2009년에 나온 초판을 보고 작성했습니다.

책표지에 멍하니 서 있는 용구 삼촌을 보자니 “그해 가을”의 창섭이가 떠오릅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세상을 바라보며 이 세상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믿음을 글 속 깊이 심어내는 권정생 선생님. “용구 삼촌”을 통해 세상을 밝게 비추는 빛이 어디서 시작되는지를 담담하게 이야기합니다.

용구 삼촌

저녁상이 다 차려지도록 소 먹이러 나간 용구 삼촌이 돌아오질 않습니다. 별 일 없겠지 싶으면서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담장 너머로 연실 내다보는 할머니. 때마침 들려오는 암소 누렁이의 워낭 소리. 아이들이 ‘삼촌 온다!’ 외치며 사립문 밖으로 후다닥 달려 나갔지만 어둑한 골목길 저 끝에서 걸어오는 건 누렁이뿐입니다.

서른 살이 넘었는데도 용구 삼촌은 이렇게 모든 게 서툴렀습니다. 건넛집 다섯 살배기 영미보다도 용구 삼촌은 더 어린애 같은 바보였습니다. 겨우 밥을 먹고 뒷간에 가서 똥 누고 고양이처럼 입언저리밖에 씻을 줄 모르는 용구 삼촌은, 언제나 야단만 맞으며 자라서인지 벙어리에 가깝게 말이 없었습니다.

용구 삼촌

아버지가 손전등을 들고 용구 삼촌을 찾아 나서자 아이들도 그 뒤를 따릅니다. “용구야아!”, “삼초온…!”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습니다. 날이 어두워질수록, 개울 둑길 지나 물결 치대는 못물에 가까워질수록 아버지와 아이들 마음은 점점 더 불안해집니다.

용구 삼촌

사실 용구 삼촌은 바로 눈 앞에서 불러도 대답할 줄 모릅니다. 워낙에 말이 없는데다 가는 귀까지 먹은 탓입니다. 아무리 목 놓아 불러도 소용 없는 노릇인데 날까지 저물어 더 이상은 세 사람만으로 삼촌을 찾는 건 무리입니다. 결국 이웃집 아저씨들도 나섭니다. 아저씨들은 세 무더기로 나뉘어 산과 골짜기를 헤집으며 찾아 다녔지만 한 시간이 지나도록 어느 곳에서도 삼촌의 소식을 알려 오지 않습니다.

용구 삼촌

혹시나 잘못 된 건 아닐까 아이 마음 속에 온갖 걱정들이 요동 쳐대는 그 때 멀리서 “여기다! 용구 여기 있다!”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아이는 소리 나는 쪽으로 정신 없이 달려갑니다. 저 멀리 참나무 숲 우거진 산비탈에 전등 불빛이 모여 있는 걸 보니 삼촌이 거기 있는 모양입니다.

용구 삼촌

아이가 가쁜 숨을 허덕대며 달려간 곳엔 용구 삼촌이 쪼그린 채 잠들어 있었습니다. 다복솔 나무 밑에 웅크리고 잠이 든 삼촌 가슴엔 회갈색 산토끼 한 마리도 삼촌처럼 쪼그리고 함께 잠들어 있었습니다. 여지껏 찾아다닌 사람들 얼굴에 가득한 긴장, 행여 삼촌이 잘못되기라도 했을까봐 애가 타던 조카 아이의 절박함과는 아무 상관 없다는 듯 세상 편안한 얼굴로 잠들어 있는 용구 삼촌.

사람들은 그동안의 걱정과 피로도 다 잊고 용구 삼촌의 잠든 모습을 하염없이 내려다보고 있는 것입니다. 가엾은 삼촌, 그러나 누구보다 착하고 고운 삼촌은 이렇게 우리들이 애쓰는 줄도 모르고 천연덕스럽게 잠을 자다니 원망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역시 삼촌은 이렇게 사랑스럽게 우리들 눈앞에서 평화를 즐기고 있는 것입니다.

누구 하나 투덜대는 이 없이 잠든 용구 삼촌을 내려다 보고 있는 마을 이웃들. 삼촌이 무사한 것만으로 그동안의 걱정과 피로를 다 잊을만큼 선한 이웃들의 마음에 내가 다 고마워집니다. 천연덕스럽게 잠든 삼촌이 원망스러우면서도 그 얼굴에 깃든 평화에 감사할 줄 아는 아이의 마음이 대견합니다.

삼촌 품에 함께 잠들어 있었던 작은 산토끼 한 마리만 단서로 제시할뿐 작가는 용구 삼촌이 왜 숲속에서 자고 있었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작가가 지금껏 해왔던 이야기들을 토대로 위험에 처한 산토끼를 구해준뒤 함께 잠들었거나, 소가 풀 뜯는 동안 산토끼와 함께 놀다 잠들었을 거라 짐작만 해봅니다. 들에 핀 이름 모를 풀 한포기조차 귀하게 여겼던 작가에게 산토끼를 향한 용구 삼촌의 마음은 이 세상 그 무엇보다 더 소중한 것이었을 테니까요.

용구 삼촌

이 책이 짤막한 동화에 머물지 않고 뛰어난 그림책 한 권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건 바로 이 장면 덕분입니다. 그림 작가의 붓 끝에서 글 작가의 마음 속에 들어 있던 것보다도 더 귀하고 빛나는 존재로 용구 삼촌이 다시 태어나는 순간입니다.

어미 잃은 아기 토끼 한 마리 보며 어쩔 줄 몰라 하다 그저 품에 안아주는 것밖에 해줄 수 없었던 용구 삼촌. 하지만 그 품에서 아기 토끼는 불안에 떨던 몸짓을 멈추고 편안하게 잠들 수 있었습니다. 그 평화로움에 취해 용구 삼촌도 잠이 듭니다. 숲은 점점 더 어두워졌지만 용구 삼촌과 토끼가 잠든 그 자리는 환하게 빛이 납니다. 용구 삼촌을 찾아 헤매던 마을 사람들도 그 빛을 따라 그 자리에 모여듭니다. 곤히 잠든 용구 삼촌 내려다보며 다들 한 마디씩 궁시렁 대지만 누구 하나 성질 내거나 인상 쓰는 이는 없습니다. 그제야 한 시름 놓은 듯 주저 앉는 이들, 서로 마주보고 웃음 나누는 이들, 그들 사이로 환한 빛이 퍼져나와 어두웠던 숲을 밝힙니다.

바보 삼촌은 그래도 우리 집에 없어서는 안 되는 너무도 따뜻한 식구인 것입니다. 바보여서 그런지, 삼촌은 새처럼 깨끗하고 착한 마음씨를 가졌습니다.

새처럼 깨끗하고 착한 마음씨를 가졌다며 삼촌을 아끼는 어린 조카들, 늦은 저녁 삼촌 찾는 일에 싫은 기색 하나 없이 내 일처럼 나서준 이웃들, 제 갈 길도 잊은 채 작은 생명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어준 용구 삼촌, 이 세상은 그렇게 삶을 나누며 살아가는 우리들에 의해 환하게 빛나고 있음을 새삼 일깨워주는 그림책 “용구 삼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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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호

에디터, 가온빛 레터, 가온빛 레터 플러스 담당 | ino@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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