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속에서

물속에서

글/그림 박희진 | 길벗어린이
(발행 : 2021/07/30)


그림책 어디부터 보시나요? 하고 묻는다면 ‘당연 표지부터지’라고 말씀하시겠죠. 그럼 그다음은 어디를 보시나요? 저는 앞표지 한참 보고 뒤표지를 봐요. 그리고 양쪽 표지를 쫘악 펼쳐서 다시 한번 보고 본문으로 들어갑니다. 얼굴 보고 뒤통수도 보고… 안녕, 그림책에 인사하기! ^^ “물속에서” 뒤표지에 쓰인 문장이 재미있어요.

몸이 천근만근이여.
걷기도 힘든데
수영은 무슨 수영이냐.

그나저나 물빛 참 좋네.

몸이 천근만근이여~ 우리 할머니가 자주 쓰셨던 말인데. 천근만근이라면서도 할거 다 해주셨던… 아니 미리 알아서 다 해주셨던 우리 할머니 생각이 납니다.

물속에서

손녀가 ‘할머니’하고 불렀을 뿐인데 할머니는 미리 철벽을 치고 있어요. ‘오늘도 몸이 으슬으슬하네’라고. 하지만 수영장 가자며 조르는 손녀 표정에서 이미 우리는 이 상황을 예측할 수 있어요. 할머니가 곧 어디로 향하게 될지.

싫다 싫다 말하면서 수영장으로 향하는 할머니는 온몸 어디 한구석 아프지 않은 곳이 없음을 호소합니다. 새털처럼 가벼운 발걸음의 손녀와 물에 젖은 솜뭉치같이 무거운 몸짓의 할머니가 완벽히 대비되고 있어요. 수영장 샤워 신에서는 빵 터지고 말았어요. 한시가 급해 조바심치는 손녀와 달리 몸도 마음도 흐물흐물 만사 귀찮기만 한 할머니의 마음 담은 한 마디.

괜히 나왔네.
괜히 나왔어.

물속에서

두 사람의 대화로 흘러가던 이야기는 손녀가 먼저 수영장으로 뛰어든 후 할머니의 독백으로 이어집니다. 출렁이는 파란 물빛 그대로 펄떡이는 생명이고 젊음입니다. 신나게 뛰어드는 손녀딸을 바라보며 신세한탄을 하던 할머니가 넋두리하듯 무심코 말했어요.

그나저나 물빛 참 좋네.

그 좋은 물빛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잠시 가까이 다가가 보는 할머니. 많이 차가운가, 한발 들여다 놓기, 물에 몸 담가보기… 어? 엉? 으응?

물속에서

물속에 세상이 하나 더 있네!

무거운 중력을 거슬러 할머니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갑니다. 신나서 요리조리 몸을 흔들어 보는 할머니는 그대로 어린아이 같아요. 물속에서 몸이 가벼워지는 걸 느낀 할머니는 어느새 물과 완벽한 하나가 되었어요. 할머니 뒤를 따라 방울방울 물보라가 일어납니다. 물고기로 변신해 뒤를 따르는 분홍색 파란색 물보라는 지금 이 순간 행복한 할머니 마음이에요.

할머니를 다시 현실 세계로 소환한 건 어린 손녀, 물 밖에서 ‘할머니’하고 부르는 손녀를 물속에서 올려다보는 할머니 표정은 처음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어요. 말갛게 개인 두 사람의 표정이 재미있습니다. ‘이제 집에 가요’라는 말에 할머니가 뭐라고 대답했을까요? 마지막 장면을 확인해 보세요.

싫다 싫다 할머니의 행복한 하루를 시원하게 그려낸 그림책 “물속에서”, 여백 속에 단순한 선으로 표현한 그림, 번지듯 표현한 수영장 풍경, 실감 나는 표정의 그림으로 더 많은 감정과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어요. 절제의 미가 돋보이는 그림책 “물속에서”, 첫 그림책이라고 하니 박희진 작가의 앞으로의 활동이 더욱 기대됩니다.

지금 혹시 이불 둘둘 말고 집안에서 축 늘어져 있다면 잠시 창을 열고 밖을 바라보세요. 그다음은? 몸도 마음도 무거워 내키지 않더라도 우선 씻고 밖으로 나가 보는 거예요. 코끝을 스치는 여름 속 가을바람도 느껴보고 몽실몽실 뜬 하얀 구름도 감상하며 그 시간 그 순간에 집중해보는 거지요. 처음엔 ‘괜히 나왔네. 괜히 나왔어.’ 할지 몰라도 차츰 느끼게 될 거예요. 어? 엉? 으응? 그나저나 하늘빛 참 좋네, 새소리 참 좋네, 바삭한 공기 참 좋네….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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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미
정선미
2021/08/28 03:11

저는 요즘 수영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평소에 허리가 좋지 않아서 결정한 것입니다. 저도 집밖으로 나갈때 마다 고민을 합니다. 마치 동화 속의 할머니처럼… 무거운 몸을 이끌고 수영장에 들어가면 나의 무거운 몸도 좀 가벼워지지요^^= “물속에서” 는 꼭 나를 닮은 동화책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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