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를 봐요!
위를 봐요!

글/그림 정진호 | 은나팔(현암사)
(발행 : 2014/02/25)

가온빛 추천 그림책
2014 가온빛 Best 70
※ 2015년 볼로냐 라가치상 수상작(Opera Prima – Special Mention)


책을 펼치기 전 표지를 한참 들여다 봅니다. 하얀 바탕에 위에서 내려다 보는 시선으로 그려진 표지에는 오직 한 사람만이 위를 올려다 보고 있어요. 그리고 그가 외치고 있네요. “위를 봐요!”라고… 그리고 그 외침이 그림책의 제목이기도 합니다.

그림책을 펼치면 독특한 시각에서 바라 본 그림을 마주하게 됩니다. 묵묵히 아래를 내려다 보는 아이의 머리가르마와 코 끝, 창틀을 꼭 쥐고 있는 두 손, 그리고 아래로 지나 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 그림을 보는 사람들은 아이 보다 살짝 위쪽에서 내려다 보는 시선으로 그림을 접하게 되는 셈이죠. 그렇게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가족 여행 중 사고가 나는 바람에 수지는 다리를 잃었어요. 그 때부터 수지는 늘 창문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며 지냅니다.

위를 봐요!

위에서 내려다 본 풍경, 모든 것이 개미 같이 작아 보입니다. 검정 머리만 보이는 사람들이 빠르게 길을 지나갑니다.

위를 봐요!

때론 아이들과 강아지가 놀기도 하고 비가 오는 날이면 우산들의 행렬이 생기기도 해요. 수지는 창틀에 매달린 채 그 모습을 묵묵히 내려다 보기만 할 뿐입니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풍경도 길도 모두 검은 색일 뿐입니다. 사람들의 표정도, 이야기도 없는 건조하고 단조로운 세상을 내려다 보고 있는 수지 마음 속 먹먹함이 전해지는 듯 합니다.

이야기를 읽는 사람 역시 먹먹한 마음으로 내려다 보게 됩니다. 별의 별 일들이 다 있는 세상이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수지의 입장에서 내려다 보니 스토리도 없고 색상도 없고 소리도 없는 무의미한 점들의 이동만 존재하는 세상으로 보이네요.

매일 똑같은 풍경의 연속, 그 지루함과 반복을 그림 속에서 사람의 머리인지 우산인지 검은 물결의 흐름처럼 보이기 시작하는 것으로 수지의 마음이 표현되었습니다.

내가 여기에 있어요.
아무라도 좋으니……

위를 봐요!

위를 봐요!

그런데 그 바람이 전해지기라도 한 걸까요? 기적처럼 한 아이가 수지를 올려다 봅니다. 그리고 뭐하고 있는지 물어보죠. 내려다 보고 있다고 하니 아래로 내려와서 보라고 이야기 합니다. 다리가 아파서 못 내려 간다 말하니 아이는 수지에게 이렇게 이야기 해요.

“거기서 보면 제대로 안 보일 텐데.”

“응, 머리 꼭대기만 보여.”

“그럼 이건 어때?”

아이가 제안한 “그럼 이건 어때?”라는 말이 셀레임으로 다가옵니다. 아이가  수지에게 보여주려고 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수지 마음처럼 내 마음도 두근두근… 다음장을 넘겨봅니다.

위를 봐요!

아이가 길에 벌렁 누웠어요. 아이가 눕자 머리 꼭대기만 보던 수지에게 아이의 모습이 다 보입니다. 저는 이 장면이 참 뭉클하게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예요.

위를 봐요!

지나가던 사람이 물어요. 왜 길거리에 누워있냐고, 아이는 위에 있는 수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그러자 그 사람 역시 아이 옆에 누워서 수지를 바라봅니다.

위를 봐요!

이제 지나가던 사람들은 길에 누워있는 사람들이 궁금해지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누워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사람들은 하나둘씩 길에 눕기 시작하죠.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사람도, 강아지를 데리고 가던 사람도, 넥타이를 맨 아저씨도 모두 누워 수지가 있는 위를 바라 봅니다.

사람들도 누웠고, 강아지도 누웠고 자전거도 누웠고 장바구니도 누웠네요. 팔로 하트를 만들어 보여주는 사람도 있구요. 길 가던 사람들이 그렇게 모두 누웠습니다. ^^모두가 그렇게 수지를 보고 있습니다!

위를 봐요!

그리고 처음부터 줄곧 아래만 내려다 보느라 가르마와 코끝만 보이던 수지 역시 위를 바라 봅니다. 수지 입이 웃고 있어요. 사람들도 위를 보고 수지도 위를 보고 있습니다.

수지와 함께 줄곧 무채색의 거리를 내려다 보던, 그림책을 읽는 나도 웃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장면이예요. 마음이 따뜻해지고 콧날이 시큰해지는 장면이예요.

위를 봐요!

이제 수지가 내려다 보던 길 거리는 무채색이 아닙니다. 색상이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수지가 앉아 있던 베란다에는 작은 화분이 놓여있고 초록빛 새싹이 움트기 시작했어요. 물론 여전히 앞만 보고 가는 사람들이 더 많지만 수지가 바라 보는 세상은 이제 더이상 무채색이 아닙니다. 누군가는 나를 향해 올려다 봐줄지도 모르는 설레임과 희망을 담은 세상이기 때문이겠죠?

무심코 앞만 보며 달려가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위를 보라는 외침! 고개를 들고 바라본 세상은 수지 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다른 풍경을 만날 수 있게 해줄 것 입니다.

독특한 구도에서 이야기가 시작되는 “위를 봐요!’의 정진호 작가는 건축학을 전공한 건축학도라고 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건축 평면도를 보면 그 안에 그려진 사람을 개미 같다고들 표현하는 것을 듣고, 세상을 건축 평면도의 모습으로만 볼 수 밖에 없는 아이가 있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고 그 독특한 생각이 이 그림책을 만드는데까지 이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주변으로 따뜻한 파장이 퍼질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작가의 바람이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전달력을 가진 “위를 봐요!”라는 따뜻하면서도 타인을 한번 더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주는 그림책을 만들게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그림책 한 권이 건네주는 전율과 감동, 그림만으로도 이야기가 충분히 전달되는 그림책 “위를 봐요!” 입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그림책 : 아나톨의 작은 냄비 / 병하의 고민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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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oroom
2016/04/04 00:38

이 내용이 동화책 속이 아닌 현실 이야기면 정말정말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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