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머리 흰머리

검은 머리 흰머리

신복남 | 그림 민승지 | 키즈엠
(발행 : 2021/08/06)


손거울을 든 순해 씨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있어요. 시들시들 고개 숙인 탁자 위 초록 식물, 억울한 표정으로 나뒹구는 쿠션은 지금 이 순간의 순해 씨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 걸까요? 거울 속 순해 씨 표정, 제 표정을 보는 것 같아요. 무심코 손거울을 들었다가, 잘못 눌려진 폰 카메라 버튼 때문에 화면에 커다랗게 내 얼굴이 나왔을 때, 그때 제 표정이 딱 저랬습니다.

검은 머리 흰머리

아침마다 시원하게 머리를 감는 순해 씨 덕분에 순해 씨 머리카락들은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했어요. 한 올 한 올 머리카락마다 표정을 넣어 재미있게 표현했습니다. 생기 넘치는 머리카락 숲(?)의 모습에 기분이 상쾌해집니다. 아, 내가 머리를 감으면 내 머리카락들도 저러겠구나 싶어 웃음이 났어요.

순해 씨와 순해 씨 머리카락들, 이렇게 그림책은 순해 씨 시점과 순해 씨 머리카락 시점을 넘나들며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검은 머리 흰머리

그런데… 그런데 오늘 아침 시원하게 머리를 감고 거울 앞에 선 순해 씨는 흰머리 한 가닥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어요. 흰머리를 본 순해 씨도 놀랐지만 그보다 더 놀란 건 흰머리였어요. 갑자기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에 놀라 흰머리 역시 비명을 지르는데… 곁에 있다 덩달아 놀란 검은 머리들이 흰머리를 위로해 주었어요. 다행인 건 검은색에서 흰색으로 색깔만 변했을 뿐 아프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는 사실. 하지만!!!

그런 흰머리가 눈에 거슬린 순해 씨가 그 한 가닥을 뽑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 시작합니다. 기필코 뽑으려는 자와 절대로 뽑히지 않으려는 자, 한바탕 대결이 펼쳐집니다.

검은 머리 흰머리

재빠른 손가락, 날카로운 족집게까지 동원되었지만 검은 머리들의 활약으로 흰머리는 무사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순해 씨가 아니었죠. 순해 씨는 마지막 찬스로 아들 지돌이를 불렀어요. 흰머리를 찾는 동안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가 참 따스합니다.

지돌이가 엄마에게 흰머리를 왜 뽑으려고 하는지 묻자 순해 씨는 보기 싫어서라고 대답했어요.

“난 괜찮은데…. 흰머리 많아도 나한테는 계속 엄마잖아.”
“정말?”
“그럼 뽑지 말고 그냥 둘까?”
“응. 아까워.”

아, 엄마의 흰머리까지 소중하게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 ❤️❤️❤️

한바탕 소동을 끝낸 순해 씨는 그날 아침 서둘러 출근을 했어요. 그 후 흰머리가 군데군데 더 생겨났지만 바쁜 순해 씨는 그대로 지냈지요.

이 이야기는 어떻게 마무리될까요? 순해 씨 머릿속에서 조금씩 더 늘어가는 흰머리, 그대로 무사할 수 있을까요?

그 옛날 휴일이면 ‘흰머리 좀 뽑아라’하고 부르시던 아빠, 우리의 사랑과 관심이 필요했던 중년의 아빠에게 ‘흰머리 많아도 나한테는 계속 아빠잖아.’ 이런 사랑스러운 말 해드렸으면 좋았을걸… 이제는 뽑아드릴 머리카락조차 사라진 노년의 아빠를 생각하니 뭉클해집니다.

흰머리, 잔주름… 사라지는 것만큼 늘어나는 내 인생의 흔적들, 그 흔적에 대한 따사로운 고찰 “검은 머리 흰머리”, ‘먼지에도 빛이 비쳐 은하수처럼 반짝이는 때가 있는데 그런 순간들을 이야기로 풀어 그리는 작업을 즐겨 합니다’ 라고 쓴 작가의 소개말 그대로 작은 것들이 사는 세상을 슥슥 시원하게 잘 그려내는 민승지 작가의 그림이 유쾌한 이야기를 한층 돋보이게 합니다.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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