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 걸린 날

감기 걸린 날

글/그림 김동수 | 보림
(발행 : 2002/11/30)


엄마가 잘 보관하고 있다 내어주신 어린 시절 그림일기를 만난 기분입니다. 아주 작은 것 하나에 마음 쓰고 걱정했던 그 시절, 그때의 나도 이런 모습 아니었을까요? 집에서 엄마가 잘라준 듯 주인공 아이의 일자 단발머리 모습까지도 말이죠.

오늘은 눈이 많이 왔다.

어린 시절 그림일기의 첫 문장은 늘 ‘오늘’이었지요. 혹은 ‘나는 오늘’이던가. ^^

감기 걸린 날

눈이 많이 내린 날, 엄마가 따뜻한 옷을 사다 주셨어요. 새 옷을 입고 거울 앞에 섰는데 자세히 보니 옷 밖으로 깃털 하나가 삐져나온 것이 보였어요.

한쪽 구석에 그려 넣은 연필 낙서가 눈에 들어옵니다. 푸슝~ 소리를 내며 빠져나가는 깃털, 놀라 눈이 동그래진 아이. 그림책 곳곳에서 이런 연필 낙서를 발견할 수 있어요. 아이가 그린 듯 서툰 느낌으로 그린 낙서들 덕분에 작가의 작품이 아닌 누군가의 그림일기를 보고 있다는 생각에 빠져들게 됩니다.

아이는 깃털이 왜 삐져나왔을까 생각하다 잠이 들었어요. 창밖으로 흰 눈이 펑펑 내리는 추운 겨울밤입니다.

감기 걸린 날

눈을 떠보니 오리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어요. 맨살이 드러난 오리들의 모습이 안쓰러워 보입니다. 오리들은 아이에게 털이 없어 너무 춥다며 옷 속에 든 깃털을 나눠달라고 했어요.

아이는 옷 속에서 깃털을 하나씩 꺼내 오리들에게 돌려 주었어요. 빙그레 웃는 아이 표정이 처음 새 옷을 입고 웃고 있던 그 표정입니다. 그렇게 차례차례 한 마리 한 마리, 마지막 한 마리까지 깃털을 다 심어 주고 나니 풍성했던 아이 점퍼가 홀쭉해졌어요. 깃털을 되찾은 오리들은 보송보송 해졌구요. 아이와 오리들은 함께 썰매도 타고 숨바꼭질도 하며 즐겁게 뛰어놀았어요.

술래에게 들킬세라 아이가 언덕 밑에 가만히 숨었는데… 갑자기 재채기가 나오려고 합니다.

“에,에,에

감기 걸린 날

에취!”

재채기 소리와 함께 꿈에서 깨어난 아이, 감기에 걸리고 말았어요. 엄마는 아이가 이불을 잘 안 덮고 자서 감기에 걸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알지요. 아이도 알고요. 감기에 걸린 건 외투에 든 깃털을 몽땅 오리들에게 나누어주었기 때문이란걸.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었어요. 학교 가는 길, 바람이 불자 옷에서 깃털 하나가 또 빠져나왔거든요. 분명히 오리들에게 다 돌려주었는데… 멀리 날아가는 깃털을 바라보는 아이의 표정이 몹시 묘하게 느껴집니다.

꿈과 현실이 뒤섞여 있는 아이들만의 세계를 솔직 담백하게 그려낸 그림책 “감기 걸린 날”, 추운 겨울, 자신의 새 옷 때문에 깃털이 없어져 추위에 떨고 있을 오리를 생각하는 아이의 마음을 담백하게 그려낸 그림책을 보면서 생각합니다. 이 겨울, 깃털을 내어주고 오들오들 떨고 있을 오리들을… 까만 점퍼 속에 새겨진 오리 그림이 마음에 아른거립니다.


내 오랜 그림책들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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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anni
Gianni
2021/11/08 11:16

아 그림 너무 긔여워요 +_+ 사고싶은 충동이 덜컥! 근데 아직 아이가 어리므로 (3세미만) 몇년 더 기다렸다가 아이랑 꼭 같이 보렵니다. 책 소개 항상 감사합니다!!!

Last edited 2 years ago by Gian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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