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이와 도깨비

답답이와 도깨비

글/그림 하수정 | 이야기꽃
(발행 : 2021/09/06)


“답답이와 도깨비”는 앞서 선보인 “호랑이와 효자”, “녹두영감과 토끼”, “이랴! 이랴?” 등의 뒤를 잇는 이야기꽃 얘기줌치 시리즈의 네 번째 그림책입니다. 2008년에 출간되었던 책을 재출간해서 시리즈의 세 번째로 끼워넣길래 이야기가 동이 났나 싶었는데 잠시 숨고르기였나 봅니다. 사실 그 많고 많은 옛날이야기중 하나를 골라 구성지게 풀어낼 재미난 이야기꾼을 찾는 게 어렵지 우리 옛이야기가 동이 날 리는 없죠.

우리가 잘 아는 ‘도깨비의 선물’ 이야기에 하수정 작가만의 이야기를 살짝 더하고 귀에 찰싹 달라붙는 사투리로 풀어낸 “답답이와 도깨비”, 어떤 이야기를 더하고 또 어떤 메시지를 감춰놓았는지 함께 살펴 보시죠.

전형적인 등장인물 + 새로운 도깨비

답답이와 도깨비

아둔하고 답답한 그래서 우직한 주인공, 늘그막에 본 귀한 늦동이 걱정에 하루도 맘 편할 날 없는 부모님, 탐욕으로 가득한 빌런, 그리고 주인공을 돕는 도깨비. 등장인물의 구성은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들과 조금도 다를 바 없습니다.

한 가지 다른 점은 도깨비의 생김새. 게다가 보통은 도깨비가 등장할 때면 어두컴컴하고 무시무시해지는데 이 그림책에서는 도깨비가 등장할 때만 밝은 파랑입니다. 도깨비도 배경도 주인공도 모두 파랑. 게다가 얘 정말 도깨비 맞나 의심스러운 도깨비의 외모. 덕분에 지금껏 들어왔던 이야기들과는 다른 새로운 무언가가 튀어나올 것만 같은 기대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이야기에서 악역을 맡은 주막 아주머니 데프콘 닮지 않았나요? 😎

서운하지 않게 삼세판

우리는 삼세판 참 좋아하죠. 간혹 이겨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두 판 내리 지고 나서 ‘오판삼승!’ 외쳐대기도 하지만 우리 전통은 삼세판입니다. “답답이와 도깨비”에서도 전형적인 도깨비 이야기와 다를 것 없이 세상 공부 나선 주인공 답답이에게 도깨비가 선물을 세 번 줍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에는 도깨비가 준 선물을 가로채는 악당이 꼭 나오죠. 그리고 그 악당들은 대개 주막집 주인 내외구요. 주인공은 늘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구요. 오늘의 주인공 답답이도 마찬가지입니다. 도깨비가 제시한 조건을 마무리하고 선물을 받아 집으로 돌아갈 때마다 똑같은 주막에서 선물을 바꿔치기 당하거든요.

답답이와 도깨비

답답이와 도깨비

답답이와 도깨비

도깨비가 삼세판의 기회를 주는 건 주인공 답답이에게만은 아닙니다. 답답이에게 세 번의 선물을 주었다는 건 악역을 맡은 주막집 부부에게도 세 번의 기회를 주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착하게 사는 삶을 선택할 기회 말입니다. 세 번째는 주막집 부부를 혼쭐 내는 선물이었으니 그들에게 기회는 두 번뿐인 것 아니냐구요? 세 번째에서 욕심 내지 않았다면 앞서 가로챈 두 개의 보물로 잘 먹고 잘 살 수 있었을 테니 기회 세 번 맞습니다! 🙂

부모님은 보지 못한 답답이의 참모습

답답하기만 한 답답이가 걱정되어서 세상 공부 시키려는 부모님. 품 안에 감싸고 돌기만 하지 않으니 좋은 부모 같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답답이가 좋아하는 것 잘 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자신들의 가치와 기준에 따라서 답답이를 바라본 건 아닐까요?

넌 좋아하는 게 뭐니?

길에서 처음 만난 도깨비가 답답이를 이해하는 방법은 물어보는 거였습니다. 도깨비와 세 번 마주칠 때마다 똑같은 질문을 받은 답답이는 세 번 모두 다른 답을 합니다. 그 때마다 도깨비는 답답이가 좋아하는 걸 실컷 하게 해주고요. 어쩌면 도깨비의 선물은 보물들이 아니라 답답이가 좋아하는 일을 마음껏 하며 살게 해준 것 아닐까요?

부모님도 도깨비처럼 답답이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답답이에게 직접 물어봤다면 굳이 세상 공부를 위한 여행을 떠나지 않았을런지도 모릅니다. 지금 이 그림책을 보고 있는 엄마 아빠들은 스스로를 한 번 돌아보기 바랍니다. 내 기준에 아이를 맞추려고 하고 있지는 않은지, 내가 해내지 못한 걸 아이에게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지, 아이는 충분히 행복한데 내가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말입니다.

답답이와 도깨비

답답이가 실패(?)하고 돌아올 때마다 세상 공부 좀 더 하고 오라며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아들 등 떠미는 부모님 모습. 그럴 때마다 어머니의 옷고름과 아버지의 수염이 점점 더 길어집니다. 얼만큼이나 길어지는지 잘 살펴 보세요. 끝도 없이 길어지기만 하는 옷고름과 수염, 작가는 과연 거기에 어떤 메시지를 담고 싶었던 걸까도 한 번 생각해보시구요(정답은 우리 각자에게 있을 겁니다).

귀에 찰싹 달라붙는 사투리

하수정 작가의 고향은 부산이라고 해요.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부산의 억센듯 하면서도 정다운 억양이 살아납니다. 덕분에 이 그림책 다 읽고 나면 나도 모르게 사투리를 따라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제가 그랬거든요.

봐라~ 일로 온나, 여 앉아 봐라.
내 옛날얘기 하나 해 주께.

저어~ 동래골 어데 한참 늦게 아를 낳은 집이 있그덩.
그 아가 클수록 그래 답답한 기라.
무슨 말인가 하므는,

출판사에서 만든 북트레일러 꼭 한 번 보세요. 맛깔스러운 사투리로 정겹게 책을 읽어주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하수정 작가의 어머니라고 합니다.

“도깨비와 답답이” 북트레일러 보기

도깨비는 과연 누구일까?

숏컷에 빨간 스니커즈를 신은 여자 아이 모습의 도깨비.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었던 도깨비와는 많이 다르죠? 어쩌면 도깨비가 아니라 도깨비 같은, 사람들이 도깨비 같은 계집애라며 내친 여자 아이 아닐까요? 사회가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틀을 거부하고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겠다고 당당히 일어선 여성 말입니다.

답답이와 도깨비

자기답게 살기에 성공한 도깨비였기에 답답이의 참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 아닐까요? 세상이 일방적으로 정의내린 답답이가 아닌 그 아이 스스로 소개하는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싶어서 그 어떤 선입견도 없이 다가가서 ‘넌 좋아하는 게 뭐니?’ 하고 물어볼 수 있었던 것 아닐가요?

도깨비의 이 질문 덕분에 이제 답답이도 자기가 좋아하는 게 무엇이었는지, 자기가 되고 싶었던 게 무엇이었는지, 어떻게 살아가고 싶었는지 생각해볼 기회가 생겼고 그 답들을 하나씩 구하며 자신의 삶을 완성해갈 겁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준 도깨비와 함께…

익숙한 이야기여서 줄거리는 생략하고 그 속에 담긴 것들에 대한 제 생각들을 이것저것 끄집어내봤습니다. 얘기하는 사람마다 조금씩 뺄 건 빼고 자기 나름대로 살을 덧붙이며 더욱 풍성하고 맛깔스러워지는 게 옛날 이야기의 매력이죠. 듣는 사람마다 자기 형편에 맞게 해석하고 각자의 삶의 깊이만큼 받아들이는 것 또한 옛날 이야기의 힘일 겁니다. 여러분도 “답답이와 도깨비”에 숨겨진 여러분만의 이야기를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이 인호

에디터, 가온빛 레터, 가온빛 레터 플러스 담당 | ino@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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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25 21:42

도깨비폰을 개통하시겠습니까의 도깨비는 전형적인 떼쟁인데 이 책 도깨비는 어떤 면이 새로운지 보고싶네요~~읽어보고 추후에 또 들를게요

가온빛지기
Admin
2021/11/02 08:17

처음처럼시작하기 님, 반갑습니다!
“도깨비폰을 개통하시겠습니까?”란 책 그림책은 아니지만 손지희 작가가 그림 작업을 했다고 하니 저도 궁금하네요.
앞으로 자주 뵈요~ ^^

Last edited 2 years ago by 가온빛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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