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사람

달 사람

(원제 : Der Mondmann)
글/그림 토미 웅거러 | 옮김 김정하 | 비룡소
(발행 : 1996/02/05)

※ 1966년 초판 출간


예전에 아이에게 이 그림책을 읽어줄 때마다 영화 ‘ET’가 떠오르곤 했어요. 아마도 지구인에게 쫓기는 ET의 처지와 달 사람의 처지가 비슷해 보였기 때문이었나 봅니다. 오랜만에 다시 찬찬히 들여다보니 달님이 둥실 떠오른 짙푸른 밤하늘은 에릭 칼의 그림책 “Papa Please Get The Moon for Me”의 밤하늘을 떠오르게 합니다.
※ 에릭 칼의 “Papa Please Get The Moon for Me”의 출간 연도는 1986년으로 오늘 소개하는 토미 웅거러의 “달 사람” 출간 20년 후에 출간된 작품입니다. 비슷한 시기 출간이라 생각했는데 두 작품 사이에도 20년이라는 시간 차가 있었네요.

별이 반짝이는 맑은 밤, 하늘에 떠 있는 달을 보세요.
달 사람이 달 속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는 모습이
어른어른 비친답니다.

어른어른 비치는 달 사람의 장난기 가득한 표정이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웅크리고 앉아있다기 보다 갇혀있는 느낌인데… 저리 해맑은 표정이라니. 숨바꼭질할 때 발 다 내놓고 책상 아래 웅크리고 앉은 아이가 ‘나 안 보일걸’ 하고 있는 느낌이에요. ^^

달 사람

밤마다 지구 사람들이 춤추는 것을 지켜보던 달 사람은 지구 사람들이 부러워 지구행을 결심했어요. 번쩍 빛을 내며 휙 지나가는 별똥별 꼬리를 붙잡고 지구로 여행을 왔습니다.

독특한 발상이죠? 지구인이 지구 밖으로 나가는 내용이 아니라 지구 사람을 부러워한 달이 지구로 놀러 온다는, 그것도 별똥별 꼬리를 붙잡고서 말이에요. 닐 암스트롱이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해가 1969년 7월이었으니 이 그림책이 출간되고 3년 후의 일입니다. 인류가 달에 가는 걸 꿈꾸며 한창 들떠 있었을 때 토미 웅거러는 달 사람이 지구가 부러워 지구에 놀러 온다는 이야기를 상상하고 있었습니다.

별똥별 떨어지는 커다란 소리에 사람들이 떼 지어 몰려왔어요. 지구를 지키기 위해 군인들이 출동하고 불을 끄러 소방대도 급히 나섰어요. 그 와중에 아이스크림 장수가 제일 먼저 달려 나가고 있어 웃음을 선사합니다. 몰려드는 구경꾼들을 슬쩍 돌아보며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어요.

구덩이 속에 버둥대는 달 사람에게 다가가는 사람들의 표정이 기괴하게 느껴집니다. 적의 가득한 표정으로 커다란 쇠스랑을 들이미는 사람, 눈동자를 희번덕거리는 개, 이죽거리는 표정으로 사진기를 들이대는 모습은 자극적인 일 앞에 물불 안 가리고 나서는 기자들을 연상시킵니다. 그저 지구가 재미있어 보여 찾아온 달 사람에게 지구는 너무나 위험한 곳이었어요.

달 사람

두려움에 가득 찬 사람들은 달 사람을 감옥에 가두었어요. 혼자가 심심해 지구에 온 달 사람, 결국 지구에서도 혼자가 되어 작은방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번쩍거리는 불빛 아래 춤추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은 산산이 부서진 채.

감옥 창살 사이로 두둥실 떠오른 하얀 달이 살포시 달 사람을 바라보고 있어요. ‘얘가 잘 있나?’ 하고 먼발치에서 자식을 지켜보는 엄마 같아요. 현실이 무료하고 싫증 나 훌쩍 집 떠나고 보니 세상이 정말 만만찮습니다.

시간이 흘러 달 사람은 문득 자신의 몸이 반쪽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반달에 있어야 할 시기라 달 사람의 몸도 반쪽이 된 거예요. 이제 달 사람은 알았어요. 감옥을 어떻게 빠져나가야 할지.

달 사람

밖으로 나간 달 사람은 그렇게도 꿈꾸던 일을 이루었어요. 여기저기 자유롭게 놀고 춤도 추고 그리고 어느 과학자의 도움을 얻어 무사히 달로 돌아가게 되지요.

호기심을 채우고 나서, 달 사람은 다시는 지구로 되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 뒤로는 하늘에 떠 있는 자기 자리에 언제까지나 몸을 웅크리고 있답니다.

그림책을 통해 꾸준히 전쟁, 소외와 차별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왔던 토미 웅거러는 이 작품에서도 의심 많고 두려움 많은 지구인들이 외지인을 의심하고 차별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어요. 그가 그린 그림책 세상의 모습은 난민, 외국인 노동자, 다문화에 대한 지금의 우리 시선과도 맞닿아 보입니다.

달 사람의 기묘한 지구 여행기 “달 사람”, 아이들은 언제나 다른 세상을 꿈꿉니다. 동글동글 천진난만해 보이는 달 사람은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꼭 닮았어요. 동경하던 세상에서 실컷 놀다 왔으니 이제 한동안 딴 생각 하지 않고 그 자리를 잘 지키고 있을까요? 달 한 번 쳐다보는 일도 ‘행사’가 되어 버린 시대를 살다 보니 문득 달 사람이 거기 달에 아직 잘 있는지, 혹시나 또 호기심에 눈멀어 어디 다른 행성에 놀러 나간 건 아닌지 달 보러 나가 봐야 할 것 같아요.


내 오랜 그림책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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