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멋진 장례식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장례식

(원제 : Alla Döda Sma Djur)
울프 닐손 | 그림 에바 에릭손 | 옮김 임정희 | 시공주니어
(발행 : 2008/05/15)

※ 영문판 제목은 “All The Dear Little Animals”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장례식”은 심심풀이 놀이로 시작한 장례 놀이를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한 의미를 어렴풋하게 깨달으며 또 한 번의 성장을 하는 세 꼬마들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입니다. 그들의 첫 장례식에서 에스테르가 코를 훌쩍이며 “하지만 인생은 계속 되겠지.”라고 하는 말 속에 담긴 깊은 의미를 우리 꼬마 아가씨는 과연 잘 알고 있었던걸까요? 잔잔한 수채화풍의 아주 예쁜 그림이 삶의 소중함을 조금씩 깨우쳐 가는 예쁜 세 꼬마들과 참 잘 어울리는 그림책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장례식”입니다.

그림책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영국의 유명한 장의사 배리 앨빈 다이어가 한 말을 인용해 봅니다.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장의사라는 직업이 죽은 사람과 일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직업이라는 점이다. 내가 죽은 사람을 돌보고 그 시신을 보살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내가 그들에게 목숨을 되돌려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남아 있는 유족과 그 친구들을 위해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나는 그들이 슬픔을 극복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용기를 줄 수있다.

‘마지막 휴식처가 필요할 때, 장의사 배리 앨빈.’ 나는 이 글귀를 사랑한다.

“행복한 장의사”(배리 앨빈 다이어, 그렉 와츠, 이가서, 2008) 중에서

아홉살 때부터 가업인 장의사의 일을 시작해서 평생을 한 분야에 바친 장인의 깨달음과 신념 속에는 죽음은 곧 삶의 연장선이라는 뜻이 담겨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우리 세꼬마들은 과연 그들의 작은 장례식을 통해 무엇을 깨닫게 될까요?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장례식

뭐 재미있는 일 없을까 궁리하며 심심해 하던 ‘나’와 에스테르는 죽은 벌 한 마리를 발견합니다. 마침 심심하던 차에 씩씩한 꼬마 아가씨 에스테르가 제안을 합니다. 아기 벌을 묻어 주자고 말이죠. ‘죽음’에 대해 무서워 했던 ‘나’는 시를 쓰기로 합니다. 그렇게 해서 두 꼬마의 장례식 놀이는 시작됩니다.

손 안의 어린 생명이
갑자기 사라졌네.
땅속 깊은 곳으로.

‘나’의 ‘죽음’에 대한 첫 느낌은 ‘소멸’입니다. 추모시를 낭송하는 동안 옆에서 훌쩍이던 에스테르가 중얼거립니다.

불쌍한 아기 벌!
하지만 인생은 계속되겠지.

장난으로 시작했던 아기 벌의 장례식을 치르면서 에스테르는 뭔가  깨닫기라도 한 듯 ‘나’에게 선언합니다. “세상은 온통 죽은 동물로 가득해. 이들을 누군가 보살펴 줘야 해. 누군가 친절하게 묻어 줘야 해.”라고 말이죠. 그리고는 ‘나’를 끌고서 덤불 속, 나무와 꽃 아래, 들판 위를 뒤지며 죽은 동물들을 찾아 다니기 시작합니다. 에스테르의 동생 푸테도 동참하면서 세 꼬마의 장례식 놀이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장례식

‘나’는 느낍니다. 죽은 동물들을 보살피기로 한 건 참 친절하고 착한 일이라고요. 자신들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람들이라는 가슴 뿌듯함을 느끼면서 셋은 결심합니다. 그들만의 ‘장례 회사’를 만들기로요. 불쌍하게 죽은 동물들을 위한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장례식을 해 주기 위해서 말이죠. 에스테르는 무덤 만드는 일을, ‘나’는 추모시를, ‘푸테’는 죽은 동물을 위해 울어주는 일을 하기로 했어요.

들판에 버려진 죽은 쥐, 친구의 죽은 햄스터 누페, 에스테르네 아빠가 안락사 시킨 수탉 등의 장례식을 차례대로 치르면서 이들의 의식은 점차 경건해지고, 죽음을 떠나 보내는 이들의 마음속에서도 무언가가 조금씩 움트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냉장고에 있던 청어의 장례식을 마친 후 그들은 죽은 동물들에게 이름을 붙여 주기로 결심합니다. 훗날 따로 불러 줄 이름 하나 없이 잊혀진다는 것이 얼마나 슬픈 일인지 깨달은거겠죠.

덕분에 그 날 이후 할머니의 쥐덫에 잡혀 죽은 아홉 마리는 하나 하나 이름을 얻게 되고 세례까지 받습니다. 파울라 안토니아, 시몬 제임스, 그 중 통통한 한 놈은 ‘돼지 딕’이란 이름을 얻었어요.

안녕, 사랑하는 돼지 딕.
죽음에 큰 행운이 깃들길.

쥐덫에 잡혀 덧없이 죽어간 쥐 ‘돼지 딕’을 위한 추모시에서 ‘나’는 뭔가 달라졌습니다. 처음 아기 벌을 떠나 보낼 때만 하더라도 ‘나’에게 죽음은 ‘소멸’이었습니다. 돼지 딕을 보내는 ‘나’에게 죽음은 ‘소멸’이 아닙니다. 사후 세계 또는 환생에 대한 막연한 기대가 생겨난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사후 세계에서건 새로운 생을 얻건 간에 돼지 딕에게 행운이 깃들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추모시를 낭송했던 건 아닐까요?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장례식

계속해서 죽은 동물들을 보살펴 주고 싶은 에스테르의 집착으로 로드킬 당한 동물들을 찾아 나서게 됩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큰 산토끼가 틀림 없었던 토끼의 사체를 발견합니다. 페르디난드 악셀손이라 이름을 얻은 토끼의 관은 꼬마들이 장례 도구를 담았던 장례 가방으로 만들어줍니다. 원래는 여행 가방이었던 장례 가방은 멋진 관이 되었고 꼬마 장의사들은 먼길 떠나는 페르디난드 악셀손을 위해 베개와 담요 등을 챙겨 줍니다.

부디 평안히 잠들길.
우리도 언젠가 다시 만나리라.

이제 ‘나’의 죽음에 대한 생각이 처음과는 완전히 달라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행 가방을 관으로 만들어서 여행길에 필요한 것들을 이것 저것 넣어 준 그들은 은연 중 죽음 역시 인생이라는 긴 여정의 일부라는 깨달음을 얻게 된거겠죠. 그리고 그 긴 여행 중 잊혀져 간 이들, 헤어졌던 사람들도 결국엔 다시 만나게 된다는 기대와 희망까지도 말이죠.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장례식

세상에서 가장 큰 산토끼였던 페르디난드 악셀손을 떠나 보낸 후 집으로 돌아가던 세 아이는 나무 사이를 날아 다니던 지빠귀 두마리 중 한마리가 베란다 유리창에 ‘꽝!’하고 부딪혀 떨어지는 걸 보게 됩니다. 지금까지는 이미 죽어 있는 동물들만을 보아왔던 세 아이에게 죽어가는 지빠귀의 모습은 충격이었습니다. 날개를 퍼덕거리고, 부리를 벌리고, 다리를 움찔하면서 죽음을 맞이하는 지빠귀의 모습, 그리고 결국엔 숨을 멈춰버린 지빠귀의 모습 속에서 세 아이들은 각자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요?

지금까지 늘 더 큰 동물을 원한다며 씩씩하게 죽은 동물을 찾아 다니던 에스테르는 아무 말도 없습니다. 죽음 앞에서 늘 울며 칭얼대던 푸테는 지빠귀의 죽음 앞에서 의젓하게 굴었어요. 죽은 지빠귀에게 아기새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푸테의 말에 ‘나’는 지빠귀에게 ‘꼬마 아빠’라는 이름을 붙여 줍니다. 죽은 건 작은 벌 조차도 만지기 싫어하던 ‘나’는 죽은 지빠귀를 가슴에 안고 무덤으로 향합니다.

너의 노래는 끝났다네.
삶이 가면 죽음이 오네.
너의 몸은 차가워지고 사방은 어두워지네.
어둠 속에서 넌 밝게 빛나리.
고마워. 널 잊지 않으리.

아까 함께 날던 다른 지빠귀 한마리가 무덤가에서 아름다운 노래를 불렀어요. 씩씩했던 에스테르는 지빠귀를 떠나 보내며 결국 눈물을 흘립니다. 세 아이 모두 평소와 달리 진지합니다. ‘나’의 목에 덩어리가 걸린 것 같기만 합니다. 그래도 ‘나’는 끝까지 추모시를 낭송합니다.

인생은 길고, 죽음은 짧다네.
죽는 건 한순간이라네.
이제 무덤 위에는
풀과 이끼가 자라고 꽃이 피리니,
모든 것이 평화롭다네.

지빠귀 ‘꼬마 아빠’를 위한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장례식’을 마지막으로 세 아이의 장례 회사는 문을 닫습니다. 이제 딴 일을 하며 놀았어요. 완전히 다른 일을…


에스테르, 푸테, ‘나’, 세 아이는 각자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죽음과 마주하고 이해합니다.

씩씩한 에스테르는 죽음 앞에 의연합니다. 늘 장난기로 가득한 것 같지만 장례식을 치르는 그 순간만큼은 단 한번도 진지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그녀는 죽은 자가 아닌 살아 남은 자의 관점에서 죽음을 이해합니다. 아기 벌의 장례식에서 에스테르는 ‘하지만 인생은 계속 되겠지.’라고 말합니다. 그녀에게 장례식은 죽은 자들에 대한 추모이자 남은 자들이 계속 살아가야 할 삶에 대한 위로입니다. ‘꼬부랑 할아버지가 되면, 그때 죽을 거야.’ 라고 푸테에게 설명해 주는 에스테르, 그녀에게 죽음은 인생을 열심히 살아 간 후 맨 마지막에 찾아 오는 것이었습니다. 갑작스런 사고로 죽어가는 지빠귀의 죽음을 맞닥뜨린 후 에스테르는 죽음의 슬픈 단면을 깨닫게 됩니다. 죽음이란 언제 어디서 찾아 올지 알 수 없는 것이란 사실 말이죠. 하지만 그 깨달음이 부정적으로 작용하진 않을겁니다. 동물들의 장례식에서 보여줬던 그녀의 열정은 삶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으로 더욱 뜨겁게 타오를테니까 말입니다.

울보 푸테에게 죽음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죽음과 마주칠 때마다 늘 슬퍼하고 두려워하며 눈물을 보이던 푸테의 모습이 어쩌면 죽음에 대한 우리의 가장 보편적인 태도 아닐까요? 작가가 푸테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긴 슬픔과 뜨거운 눈물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위로의 의미 아니었을까요? 세 꼬마 모두에게 큰 전환점을 마련해 준 지빠귀의 죽음을 통해 푸테는 지나간 장례식마다 자신만 울고 있었던 것이 아니란 걸 알게 되었을겁니다. 누나와 형도 그 순간에 각자의 방식대로 슬픔을 느끼고 있었음을 말이죠.

‘나’는 에스테르에게 끌려 다니면서도 늘 죽음으로부터 한발짝 물러 서 있지만 동물들 하나 하나를 위한 추모시를 짓고, 이름을 붙여 주면서 자신도 모르게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의 과정을 거치게 되었을겁니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도 살아 있었던 지빠귀의 죽어가는 과정을 지켜 보면서 죽음을 피하지 않고 받아 들일 수 있게 됩니다. 죽음 역시 삶의 일부분임을 말이죠.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장례식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장례식”은 화자인 ‘나’가 동물들의 장례식에서 낭송하는 추도시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그리고 죽음에 대한 이해와 삶에 대한 진지한 생각들을 성장시켜 가는 세 꼬마의 모습 역시 이 추도시를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처음 아기 벌과 들판에서 발견한 쥐의 장례를 치를 때와 ‘꼬마 아빠’를 위한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장례식 안에서의 세 아이들의 표정은 사뭇 다릅니다. 장례식 하나 하나에서 낭송되는 ‘나’의 추도시를 통해 변해가는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의 과정과 아이들의 표정의 변화를 살펴 보는 것도 이 그림책을 읽는 재미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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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서니 브라운의 "고릴라" 덕분에 그림책과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제일 좋아하는 작가가 앤서니 브라운은 아닙니다. ^^ 이제 곧 여섯 살이 될 딸아이와 막 한 돌 지난 아들놈을 둔 만으로 30대 아빠입니다 ^^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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