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엄마를 잃은 슬픔을 가슴에 담은 두 아이의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죽음’이란 주제는 아직 어린 우리 아이들뿐만 아니라 읽어 주는 엄마 아빠에게도 부담스러운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늘 함께이기에 자칫 소홀해지기 쉬운 가족의 소중함에 대해 차분하고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로서 받아들인다면 우리 아이들 마음 속에 따스한 감성을 심어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닐까요?

오늘 소개하는 “무릎딱지”와 “보고싶은 엄마”, 이 두 권의 그림책 속에서 여러분은 아이들이 감당하기엔 그 무게가 너무도 버거운 슬픔 속에서 우리 어른들보다 훨씬 더 어른스럽게 감정을 추스리는 두 아이를 만나게 될겁니다.


무릎 딱지

무릎 딱지

(원제 : The Scar)
샤를로트 문드리크 | 그림 올리비에 탈레크 | 옮김 이경혜 | 한울림어린이
(발행 : 2010/10/20)

무릎 딱지

엄마가 오늘 아침에 죽었다.
사실은 어젯밤이다.
아빠가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난 밤새 자고 있었으니까
그동안 달라진 건 없다.
나한테 엄마는 오늘 아침에 죽은 거다.

“무릎딱지”는 첫 장부터 주저 없이 엄마의 죽음을 내뱉습니다. 뚫어쳐라 천정만 바라 보고 누워 있는 아이의 모습은 마치 모든 순간이 정지된 듯 보입니다. 심지어는 호흡조차 멎어 버린 것 같은 느낌입니다. 그리고, 엄마가 어젯밤에 죽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아이. 아무 것도 모른 채 포근히 잠들었던 어젯밤까지만이라도 엄마와 함께였다고 믿고 싶은 아이.

마치 진공 상태인 것처럼 느껴지는 한 장의 그림과 짤막하게 내뱉는 몇마디 말들로 지금 이 순간 아이의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첫 장을 넘기기도 전에 눈 앞이 흐릿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무릎 딱지

나는 엄마 냄새를 잊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엄마 냄새는 자꾸 사라진다.
나는 엄마 냄새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집 안의 창문들을 꼭꼭 닫았다.

이제 아이에게 남은 것은 엄마 냄새뿐입니다. 코가 아닌 마음으로 느끼는 엄마의 향기, 조금이라도 새어 나갈까봐 아이는 온 집안의 창문이라는 창문은 모두 다 꼭꼭 닫아 버립니다. 한 여름 무더위에 숨이 막힐 지경이지만 아이는 엄마의 냄새를 지킬 수만 있다면 아무 상관 없습니다.

무릎 딱지

어제 나는 마당을 뛰어다니다가 넘어지고 말았다.
무릎에 상처가 나서 아팠다.
아픈 건 싫었지만 엄마 목소리가 또 들려왔다.
그래서 아파도 좋았다.
나는 딱지가 앉기를 기다렸다가 손톱 끝으로 긁어서 뜯어냈다.
다시 상처가 생겨서 피가 또 나오게.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나오려 했지만 꾹 참았다.
피가 흐르면 엄마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으니까.

어느 날 아이는 넘어져서 무릎에 상처가 납니다. 무릎이 까져서 피가 나는 것을 보니 더 쓰라리고 더 아픈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때 엄마 목소리가 들립니다. “괜찮아, 우리 아들, 누가 우리 착한 아들을 아프게 해? 넌 씩씩하니까 뭐든지 이겨 낼 수 있단다.” 라고 말이죠. 아이는 귀가 아닌 마음으로 들려오는 엄마 목소리를 듣기 위해 다친 곳이 아물려고 하면 딱지를 손톱으로 뜯어내서 또 다시 피가 나게 합니다. 자신만이 들을 수 있는 엄마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

무릎 딱지

할머니가 오셨습니다. 할머니는 숨 막힐 듯 꽉꽉 닫아 놓은 집안의 창문들을 활짝 열어 버립니다. 아이는 너무나 놀라 비명을 지르며 울음을 터뜨립니다.

“안 돼! 열지 마. 엄마가 빠져나간단 말이야.”

간신히 간신히 자신의 마음 속에서 북받치는 슬픔과 눈물을 꾹꾹 누르며 엄마 냄새를 지키려 했던 아이는 할머니가 창문을 활짝 열어 젖히는 순간 모든 걸 다 토해냅니다. 엄마를 잃은 슬픔, 엄마에 대한 그리움, 마음으로밖에 느낄 수 없었던 엄마 냄새지만 이젠 그마저도 다 잃어 버리고 말았구나 하는 절망감… 아이 눈에서 끝도 없이 눈물이 쏟아져 내립니다. 그동안 이 눈물을 참아내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무릎 딱지

할머니는 내 곁으로 오더니
가만히 내 손을 잡아 내 가슴 위에 올려 주며 말했다.

“여기, 쏙 들어간 데 있지? 엄마는 바로 여기에 있어.
엄마는 절대로 여길 떠나지 않아.”

금방이라도 부서져 버릴 것만 같은 아이를 아주 조심스럽게, 하지만 꼬옥 안아 주며 할머니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는 법을 가르쳐 줍니다. 엄마는 항상 네 마음 속에 있다고 말이죠…

지금까지 자신의 감정을 누르고 있던 아이는 모든 걸 다 끄집어 내서 울음을 터뜨립니다. 여지껏 새빨간 배경 속에 담담히 모노톤으로 그려졌던 아이는 새빨갛게 금방이라도 터져 버릴 것만 같습니다. 이 그림책에서 빨강은 슬픔입니다. 슬픔이 넘치고 넘쳐 금방이라도 폭주해 버릴 것만 같은 싯벌건 아픔입니다. 할머니 역시 새빨간색입니다. 할머니 역시 슬픔 앞에서 어쩔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을 통해 배운 지혜와 연륜으로 자신의 슬픔을 누르고 아이에게 위로의 말을 건넵니다. 할머니의 머리카락만이 유일하게 하얀색입니다. 싯벌건 슬픔을 갈무리하는 연륜의 차분함이 느껴지는 하얀색말입니다.

나는 정말 무섭다.
내가 아무리 애써도 엄마를 완전히 잊게 될까 봐.
그래서 나는 달린다.
온 힘을 다해 달린다.
온몸이 흐늘흐늘해질 때까지,
내 심장이 쿵쿵 뛰어서 숨 쉬는 게 아플 때까지,
심장이 터지기 직전까지.
그러면 꼭 엄마가 내 가슴 속에서 아주 세게 북을 치고 있는 것만 같다.

아이는 할머니의 품에 안겨 그동안 꾹꾹 참아왔던 슬픔을 모두 토해냈습니다. 그리고 후련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겠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엄마의 빈자리가 채워질 수는 없습니다. 엄마의 부재는 그 무엇으로도 대체 될 수가 없을테니까 말이죠. 대신 아이는 가슴 속의 슬픔을 마주 보고 끌어 안는 법을 스스로 터득해갑니다.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마음 속에서 엄마를 느낄 수 있는 법을 말이죠.

아이는 엄마를 잃은 슬픔을 끌어 안고 언제까지나 엄마와 함께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보고싶은 엄마

보고싶은 엄마

(원제 : Missing Mommy)
글/그림 레베카 콥 | 옮김 이상희 | 상상스쿨
(발행 : 2011/06/10)

레베카 콥의 홈페이지

보고싶은 엄마

최근 그림책 분야에서 ‘떠오르는 별’로 통하는 레베카 콥의 그림책 “보고싶은 엄마”의 첫 장면입니다. 엄마의 장례식입니다. 비가 오고 있고 검정색 우산을 쓴 사람들의 뒷 모습이 슬퍼 보입니다. 아빠 허리를 끌어 안고 서 있는 누나의 뒷모습은 밀려 오는 슬픔에 눈물을 참지 못한 채 어깨가 들썩이는 듯 해 보입니다.

하염 없이 내리는 빗속에서 모두들 흙 속에 묻혀가는 엄마의 관을 내려다 보고 있지만 아이는 아빠 팔에 안겨 영문도 모른 채 슬픈 분위기에 잔뜩 주눅 들어 있습니다. 말똥말똥 아이의 눈은 엄마를 찾아 두리번거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무릎딱지”에서 엄마의 죽음을 사실 그대로 인지하고 망연자실 천정만 바라보던 아이의 모습과는 달리 엄마의 죽음을 이해하지 못한 채 엄마를 찾는 아이의 모습은 안쓰럽기만 합니다.

보고싶은 엄마

아이는 장례식 이후에도 계속해서 엄마의 흔적을 찾아 헤맵니다.

난 하루종일 엄마를 찾아다녔어요.
하지만 내가 찾아낸 건 엄마가 쓰던 물건들뿐이었어요.
엄마는 자기 물건 챙기는 걸 깜박 잊은 게 틀림없어요.

보고싶은 엄마

아무리 엄마의 흔적을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고,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 오지 않는 엄마. 아이는 결국 아빠에게 물어봅니다. 엄마가 언제 돌아오는지 말이죠. 안쓰러운 마음에 아빠는 아이를 꼬옥 끌어안습니다. 어른인 아빠도 떨쳐버리기가 쉽지 않은 영원한 이별의 슬픔, 아이와 아빠는 서로에게 위안을 주고 받습니다. 아빠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까지 담아 아이에게 더 사랑을 쏟아야겠다는 다짐을 하는 순간입니다. 아이는 이제 다시는 엄마를 볼 수 없음을 스스로 받아들이는 힘겨운 순간입니다.

보고싶은 엄마

아이와 아빠는 그렇게 엄마를 떠나 보냅니다. 엄마는 이미 장례식장에서 떠나갔지만 두 사람에겐 오늘이 엄마와의 이별을 처음으로 받아들이는 순간입니다.

보고싶은 엄마

엄마도 이곳에 우리와 함께 있으면 좋겠지만,
엄마 없이도 우린 가족이에요.

우린 지난 일을 떠올리며 얘기할 수도 있고요,
함께 가족 사진을 보며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지요.

엄마를 떠나 보낸 아이와 가족은 이제 담담히 슬픔을 딛고 서로를 의지하며 함께 살아갑니다. 엄마의 빈자리는 채워질 수 없는 것이기에 단란한 순간에 피어나는 그들의 웃음 한 켠엔 늘 그늘이 자리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이와 가족이 불행한 건 결코 아닙니다. 비록 함께 하지는 못하지만 언제나 가슴 속으로 추억할 수 있기에 엄마는 영원히 아이와 누나와 아빠와 함께 할테니까요.

보고싶은 엄마

난 언제까지나 엄마를 잊지 않을 거예요.
난 엄마한테 아주 특별한 아이였고,
엄마도 언제까지나 나한테 특별한 사람이니까요.


‘표현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죠. 하지만 오늘 만난 두 아이에게서 우리는 그보다 더 큰 사랑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드러나지 않아도 서로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고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사랑, 세월이 흐르고 또 흘러도 언제나 한결같이 변하지 않는 따스한 마음을 가진 아이들에게서 말이죠.

몸과 마음이 우리 어른보다 어리다고 해서 느끼고 겪는 감정의 크기까지 우리보다 작지는 않을겁니다. 무심코 내던진 한마디 말에 상심하는 것은 어른이나 애나 매한가지이듯 말이죠. 오늘 소개한 두 그림책에서처럼 죽음이라는 큰 슬픔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이와 함께 살면서 사소한 마음의 상처를 주는 일들이 없도록 늘 조심해야겠다는 생각, 아이와 늘 교감하기 위해 애써야겠다는 생각이 새삼 드는 주말입니다.

Mr. 고릴라

앤서니 브라운의 "고릴라" 덕분에 그림책과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제일 좋아하는 작가가 앤서니 브라운은 아닙니다. ^^ 이제 곧 여섯 살이 될 딸아이와 막 한 돌 지난 아들놈을 둔 만으로 30대 아빠입니다 ^^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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