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행 : 2014/10/08
■ 마지막 업데이트 : 2017/08/10

(발행 : 1995/08/01)
나는 곰이라구요!

(원제 : The Bear That Wasn’t)
글/그림 프랭크 태실린 | 옮김 이충호 | 가람기획
(발행 : 1995/08/01)

난 곰인 채로 있고 싶은데...
난 곰인 채로 있고 싶은데…

(원제 : The Bear Who Wanted To Be A Bear)
요르크 슈타이너 | 그림 요르크 뮐러 | 옮김 고영아 | 비룡소
(발행 : 1997/03/15)

누가 더 먼저일까?

“난 곰인 채로 있고 싶은데…”는 비룡소에서 지난 1997년 3월에 출간한 그림책입니다. “책 속의 책 속의 책”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요르크 뮐러가 그림을 그렸고, 그와 많은 작품을 함께 한 요르크 슈타이너가 글을 썼습니다.

“나는 곰이라구요!”는 2003년 12월에 출간된 어른들을 위한 동화책입니다. 제가 한 분류는 아니고, 알라딘, 예스24, 교보 등이 모두 테마소설 카테고리 아래에 ‘어른들을 위한 동화’로 분류를 했더군요. 여하튼 이 책은 미국에서는 꽤 유명한 프랭크 태실린의 작품인데요, 그는 어린이를 위한 글과 그림뿐만 아니라 만화영화 제작도 하고 시나리오 작가와 영화감독으로도 활동을 했었다고 합니다. 월트 디즈니와 함께 작업을 하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는데, 그래서인지 “나는 곰이라구요!”의 그림들에서 오래된 디즈니 만화영화의 느낌이 묻어나는 것 같습니다. “나는 곰이라구요!”는 10분짜리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이 되었는데 유튜브에서 영문 제목으로 영상 찾아 보시면 ‘어~ 이거 디즈니 만화 맞네!’라는 생각 드실겁니다 ^^

그런데, 국내 출간은 “나는 곰이라구요!”“난 곰인 채로 있고 싶은데…”보다 늦지만 사실은 “난 곰인 채로 있고 싶은데…”(1976년 독일)는 “나는 곰이라구요!”(1946년 미국)의 아류작입니다. 1977년에 영어판으로 출간 된 “난 곰인 채로 있고 싶은데…”의 표지엔 ‘From an idea by Frank Tashlin’이라고 쓰여져 있었다고 합니다.(참조 : Wikipedia)

꼭 닮은 두 책의 내용은?

곰 한 마리가 있습니다. 겨울이 다가 오자 곰은 겨울잠을 자러 동굴 속으로 들어갑니다. 곰이 겨울잠을 자고 있는 사이 사람들이 동굴 위에 거대한 공장을 짓습니다. 아무 영문도 모른 채 곤히 잠들었던 곰은 따스한 봄기운에 눈을 뜹니다. 그리고 동굴 밖으로 나갔는데 숲은 온데간데 없고 콘크리트 건물과 사람들로 북적이는 낯선 풍경에 어리둥절합니다.

그때 공장의 작업반장이 곰에게 핀잔을 줍니다. 빨리 가서 일하지 않고 왜 멍청하게 서 있냐고 말이죠. 곰은 자기는 사람이 아니라고 곰이라고 말하지만 작업반장은 들은 척도 안합니다. 점점 더 높은 사람에게 끌려가게 되고 그 때마다 자신은 사람이 아니라 곰이라고 말하지만 아무도 믿어 주지 않습니다.

공장에서 제일 높은 사장은 자신을 곰이라고 주장하는 이 곰을 데리고 동물원에 데리고 갑니다. 우리 안에 갇혀 있는 곰들은 그 곰을 보고 이렇게 말합니다. “이 친구는 진짜 곰이 아닙니다. 진짜 곰이 차를 타고 돌아다니다니 말이 됩니까? 진짜 곰은 우리처럼 철창 안에서 살고 있는 법이지요. 그렇지 않으면 사육장 안에서 살든지요.”

그래도 곰이 자신은 곰이라고 주장하자 사장은 다시 서커스단으로 곰을 데려갑니다. 서커스단의 곰들은 이렇게 말하죠. “보기에는 곰처럼 생겼네요. 하지만 곰이 아닙니다. 정말 곰이라면 관중석에 앉아 있을리가 있나요?” 라고 말이죠. 그러면서 서커스단의 곰들은 그 곰에게 춤을 출 수 있냐고 묻습니다. 그리고 춤을 출 줄 모른다는 곰을 모두들 비웃습니다. “다들 들었지? 춤도 출 줄 모른다잖아. 진짜 곰이 아니라 곰 가죽을 뒤집어쓴 털북숭이 게으름뱅이라고.” 이렇게 놀리면서 말이죠.

난 곰인 채로 있고 싶은데

결국 곰은 공장으로 다시 끌려오게 됩니다. 그리고 작업복을 입고 면도까지 하고는 다른 사람들처럼 일을 합니다. 곰은 정말로 곰이 아니었던걸까요?  ^^

그러다 곰은 공장에서 쫓겨납니다. “나는 곰이라구요!”에서는 공장이 폐업을 해서 일자리를 잃게 되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고, “난 곰인 채로 있고 싶은데…”에서는 해고당하는 걸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왜 해고됐냐구요? 곰도 열심히 일해 보려고 하긴 했는데 겨울이 다가오기 시작하자 자꾸만 졸음이 밀려왔지 뭐예요. 졸지 않으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자꾸만 졸게 되는 바람에 결국은 쫓겨나는 신세가 된거였어요.

공장에서 나온 곰은 다시 숲으로 돌아가 아늑한 동굴 속에서 겨울잠을 청하며 이야기는 끝이납니다.

그림도 꼭 닮았어요!

두 책의 그림을 비교해 보면 글을 쓴 요르크 슈타이너뿐만 아니라 그림을 그린 요르크 뮐러 역시 프랭크 태실린의 “나는 곰이라구요!”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화풍이 전혀 다르긴 하지만 그림의 구성과 메시지는 그대로 가져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난 곰인 채로 있고 싶은데…

나는 곰이라구요!

난 곰인 채로 있고 싶은데 나는 곰이라구요!
난 곰인 채로 있고 싶은데 나는 곰이라구요!
난 곰인 채로 있고 싶은데 나는 곰이라구요!
난 곰인 채로 있고 싶은데 나는 곰이라구요!
난 곰인 채로 있고 싶은데 나는 곰이라구요!
난 곰인 채로 있고 싶은데 나는 곰이라구요!
난 곰인 채로 있고 싶은데 나는 곰이라구요!
난 곰인 채로 있고 싶은데 나는 곰이라구요!
난 곰인 채로 있고 싶은데 나는 곰이라구요!

두 책이 구분되는 한가지는?

내용을 소개하면서 곰이 공장에서 나오게 되는 원인이 다르다고 말했었습니다. “나는 곰이라구요!”에서는 공장이 문을 닫는 바람에 별 수 없이 곰은 다시 숲으로 돌아 가게 되죠. 반면 “난 곰인 채로 있고 싶은데…”에서는 겨울잠을 자야만 하는 곰이 하루 종일 공장에서 일하려다 보니 사람의 눈엔 늘상 졸기만 하는 게으름뱅이로 보일 수 밖에 없었고, 결국엔 공장에서 쫓겨나게 되죠.

‘폐업으로 인한 실직’이냐, 아니면 ‘해고로 인한 실직’이냐 이 작은 차이가 꼭 닮은 이 두 책을 완전히 서로 다른 책으로 만들어 주는 중요한 부분 아닌가 생각됩니다.

두 책 모두 삶의 정체성과 자기주도적인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곰은 자기 스스로 찾지 못합니다. 내가 아닌 타인이 정의 내려 준 삶을 그저 수동적으로 받아들인 채 살아갑니다. 아마도 곰이냐 사람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원하는 삶은 어떤 것인가?’, ‘내 꿈은 무엇인가?’에 대한 자기 성찰의 과정 없이 사회라는 시스템의 흐름에 휩쓸린 삶을 살아가는 것을 풍자하고 있는 것 아닐까요?

폐업이건 해고건 공장에서 더 이상 지낼 수 없게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곰은 자기 자신이 누구인가를 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나는 곰이라구요!”는 이렇게 결말을 짓습니다.

나는 곰이라구요!

곰은 편안하게 잠이 들었습니다.
곰은 행복한 꿈을 꾸었습니다.
다른 곰들이 겨울잠을 잘 때와 똑같이 말입니다.

“난 곰인 채로 있고 싶은데…” 역시 마찬가지로 정체성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그림책에는 또 하나의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바로 ‘인간에 의한 자연파괴’에 대한 메시지입니다. “나는 곰이라구요!”가 정체성에 촛점을 맞췄다면 “난 곰인 채로 있고 싶은데…”는 인간에 의한 자연파괴에 촛점을 맞췄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인간은 제 멋대로 모든 것을 빼앗아갔습니다. 처음엔 곰의 아늑한 동굴과 삶의 터전인 숲을 빼앗아갔습니다. 그리고는 곰의 삶조차 송두리채 집어 삼킵니다. 곰 스스로 자기 자신이 누구인가를 생각하고 판단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습니다. 얼핏보면 동물원과 서커스단으로 끌고 다니면서 곰이지만 인간에 길들여진 곰의 모습들을 보여주며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 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관용을 베푸는 척하며 ‘곰처럼 사느니 인간으로 살아라!’라는 비아냥거림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더 이상 이용가치가 없어지자 곰을 공장 밖으로 내쫓아 버립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곰이 아닌 인간의 삶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곰은 바로 숲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인간들의 주변을 맴돌지만 아무도 받아 주지 않습니다.

난 곰인 채로 있고 싶은데

미안합니다만,
우리 모텔에서는 공장 일꾼들한테는 방을 내주지 않아요.
더더군다나 곰에게 방을 내주는 일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이제 인간들은 더 이상 곰을 사람으로 보지 않습니다. 더 이상 쓸모 없게 된 곰은 이제 그냥 곰일 뿐입니다.

난 곰인 채로 있고 싶은데

인간들이 놔 주고 나서야 곰은 인간들의 세상에서 벗어나 숲을 향해 발걸음을 옮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애초에 자신이 나고 자란 삶의 터전이었던 숲으로 돌아 가는 곰의 모습이 쓸쓸해 보이는 건 왜일까요? 아직도 곰은 자신이 곰인지 사람인지 혼란스러워 보입니다.

난 곰인 채로 있고 싶은데

“난 곰인 채로 있고 싶은데…”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쓸쓸한 숲 속 한 켠에 있는 동굴 입구엔 누군가의 발자국이 있습니다. 동굴로 들어간 발자국인지, 동굴에서 다시 나온 발자국인지 알 수 없습니다. 만약 곰이 동굴로 들어간거라면 “나는 곰이라구요!”의 곰처럼 편안하게 잠이 들었을까요? 아니면 원래의 곰의 삶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인간 세상을 그리워하며 쓸쓸히 잠이 들었을까요? 요르크 슈타이너와 요르크 뮐러는 이 모든 결말을 우리에게 떠맡긴 듯 합니다.(위에서 봤지만 내용도 그림도 정말 꼭 닮은 그림책입니다. 하지만 “난 곰인 채로 있고 싶은데…”의 열린 결말은 이 책을 아류작이 아닌 새로운 그림책으로 만들어 줬습니다.)

여러분들의 결말은 어떤 건가요?

Mr. 고릴라

앤서니 브라운의 "고릴라" 덕분에 그림책과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제일 좋아하는 작가가 앤서니 브라운은 아닙니다. ^^ 이제 곧 여섯 살이 될 딸아이와 막 한 돌 지난 아들놈을 둔 만으로 30대 아빠입니다 ^^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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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정
김미정
2023/05/09 09:23

 “책 속의 책 속의 책”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요르크 뮐러가 그림을 그렸고, 그와 많은 작품을 함께 함 요르크 슈타이너가 글을 썼습니다.

이 부분에서 ‘함’이 ‘한’의 오타 같아요^^

이 선주
Editor
2023/05/09 22:29
답글 to  김미정

감사합니다. 미정님.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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