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라니 텃밭
고라니 텃밭

글/그림 김병하 | 사계절
(발행 : 2014/04/22)


숲 속에 작업실을 마련한 화가 김씨 아저씨는 텃밭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고라니 텃밭

텃밭에 심을 각종 모종들을 사온 아저씨는 딸들이 좋아하는 감자와 옥수수를 심고, 아내가 좋아하는 쑥갓, 상추, 아욱, 치커리 등등 각종 채소를 심었어요. 아저씨는 날마다 물도 주고 잡초도 뽑아주며 정성껏 텃밭을 일구었죠. 풍성해진 텃밭에서 아이들과 맛난 쌈을 먹을 꿈에 부풀어 행복해진 아저씨.

그런데 이게 왠일일까요?

다음 날 텃밭에 나와보니 쑥갓과 상추를 누군가 몽땅 먹어치웠습니다. 아저씨는 속상했지만 다시 모종을 심었는데, 다음날 텃밭에 나가 보니 새로 심은 쑥갓, 상추와 함께 다른 채소도 몽땅 먹어치운 것을 알게 됩니다.

김씨 아저씨는 모종을 또 새로 심고 허수아비도 텃밭에 하나 세워두었지만 모두 허사였어요.

고라니 텃밭

아저씨 보란 듯이 허수아비는 내팽겨쳐 버렸고, 아저씨가 일군 밭은 더 엉망이 되어버렸습니다. 대체 누구의 짓일까요?

화가 머리 끝까지 난 아저씨는 결국 보초를 서기로 했어요.

고라니 텃밭

그날 밤 아저씨는 텃밭을 망친 녀석이 대체 누구일지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어요. 처음엔 아저씨가 세웠던 허수아비처럼 꼿꼿하게 서서 버텼지만 이내 몸에 힘이 빠지면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아저씨 모습, 달님이 기우는 것을 보니 시간이 꽤 지난 모양입니다. 그 때 부스럭- 소리가 났어요.

아저씨가 눈 뜨고 보니 고라니가 밭에서 무언가를 뜯어먹고 있었습니다. 아…그간 밭을 초토화 시켰던 주인공이 바로 고라니였군요. 참, 맹랑한 녀석이죠? 아저씨가 이렇게 지키고 서있었는데도(비록 졸고 있긴 했지만) 밭에서 채소를 뜯어 먹을 생각을 하다니 말이예요.

고라니 텃밭

아저씨는 고라니를 쫓고 고라니는 도망치고, 달밤의 추격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아저씨는 고라니를 잡았을까요? 빙글빙글 돌고 있는 모습으로 봐서는, 못잡았을 것 같은데요.

맞습니다. 아저씨 다리는 후들후들, 숨이 턱까지 차올라 그만 주저앉고 말았어요.

하지만 고라니가 무서워 농사를 포기 할 수는 없었어요. 엉망이 된 텃밭에 다시 모종과 씨앗을 심고 이번에는 울타리까지 세웠습니다. 아저씨 때문에 놀랐을까요? 아님 새로 세운 울타리 덕일까요? 한동안 고라니는 나타나지 않았고, 텃밭 역시 평화로웠습니다. 이대로 채소들이 잘 자라나 싶었는데…

고라니 텃밭

며칠 뒤, 텃밭에 나와보니 보란 듯이 텃밭이 또 엉망이 되었네요. 아마도 고라니가 아저씨가 무서워 못왔던 게 아니라, 모종이 좀 자라기를 기다렸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아저씨는 너무 너무 화가 나서 펄쩍펄쩍 뛰었어요.

이제는 더 이상 고라니를 눈 뜨고 봐 줄수 없다 생각한 아저씨는 새총 하나를 옆에 차고 달밤에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죠. 그리고 한밤 중에 다시 부스럭- 바스락- 바스락 – 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네 이노-옴! 딱 걸렸어.”

고라니를 향해 새총을 겨눈 순간….

아저씨는 드디어 고라니를 잡은 걸까요? 두근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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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라니 텃밭

고라니와 새끼들, 그 동그란 눈망울과 마주치게 됩니다. ‘어, 무슨 일 있나?’ 하는 듯한 고라니 가족의 눈망울.

아저씨는 밤새 한 숨도 못자고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을 했어요. 옥수수랑 감자는 딸들 먹일 거고, 상추랑 쑥갓은 아내 거고, 어찌해야 하나 고민 고민을 하던 아저씨에게 좋은 생각이 떠 올랐습니다.

고라니 텃밭

밤새 고민한 아저씨가 생각해 낸 묘책입니다. ^^

텃밭을 고라니 몫과 아저씨 가족의 몫으로 사이좋게 나눴어요. 꼼꼼하게 씨앗과 모종을 다시 심고 아저씨네 텃밭에는 튼튼한 울타리를 세웠고 고라니 텃밭은 언제든지 와서 먹을 수 있도록 울타리를 세우지 않았습니다.  반은 아저씨 텃밭, 반은 고라니 텃밭. 고라니도 살고, 아저씨도 살고…

고라니네 가족까지 먹여 살려야 하니 아저씨의 손길이 더욱 더 바빠지겠네요.  반반무(양념반 후라이드반 무 많이…^^)는 들어봤어도 반반텃밭은 처음 보는걸요. 내 가족에게 먹이듯 정성껏 무엇이든 반반 심은 텃밭의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그림책 첫 장 작가 소개 아래 김병하 작가가 써놓은 글입니다.

숲 속에 있는 작은 집을 얻어 작업실 삼아 2년반 동안 지낸 적이 있답니다. 울창한 잣나무 숲과 작은 계곡이 흐르는 산골짝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조그마한 텃밭을 일궜는데 텃밭 덕분에 생각지도 못했던 숲 속 동물들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채소 씨앗과 모종을 심고 난 후 수확할 때가 되면 어김없이 동물들이 나타나서 채소들을 몽땅 먹어치우곤 했답니다. 심어 놓으면 뜯어 먹고, 또 심어 놓으면 다시 뜯어 먹고, 그렇게 반복해서 거둘 것 없는 텃밭 농사였답니다.

떄로는 속상하고 화가 날 때도 있었지만 어쩌면 숲의 주인은 동물들이고 그들의 영역에 사람이 들어와 농사를 지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릅니다.

숲 속 작업실에서 지내는 내내 그림을 그리기보다는 텃밭을 가꾸고 숲 속을 산책하고 동물들이 남긴 흔적을 관찰하며 보낸 시간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이 그림책은 텃밭을 사이에 두고 숲 속 동물들과 실랑이를 벌였던 그때의 경험을 재미나게 꾸린 거랍니다.

– 김병하

그래도 고라니가 작가님에게 좋은 이야기 거리 하나는 확실히 남겨주었으니 자연이 준 텃밭 그 이상의 선물이라고 해야 할까요? 텃밭을 망친 고라니의 이야기가 텃밭을 함께 나누며 숲속 생명과 가족이 된 이야기로 바뀐 “고라니 텃밭”, 맑게 그려진 그림과 함께 작가의 경험이 녹아있는 아슬아슬하고도 긴장감 넘치는 글, 그리고 훈훈한 마무리까지 참 따뜻한 그림책입니다.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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