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서 만난 그림책

‘책의 날’이 있는 달이어서 그런지 4월에는 좋은 그림책들이 아주 많았습니다. 1~3월에 비해서 최종 5권의 ‘서점에서 만난 그림책’을 선정하는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심지어 최종 선정 권수를 늘리자는 의견이 나올정도로 말이죠. 그래서 4월 서점에서 만난 그림책 선정을 위한 필자별 추천 그림책을 빼고 마지막 5권을 고르기까지 거론되었던 그림책 목록을 함께 소개하기로 했습니다. 그림책마다 따로 설명을 붙이진 않았지만 그림책별로 소개 페이지를 링크 걸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얼마 전에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가온빛에서 좋은 책을 고르는 기준이 뭐냐고 말입니다. 음, 가온빛 멤버들의 좋은 책 고르기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소개하기로 하고, 오늘은 질문한 분께 답변한 그대로 모리스 센닥의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대신할까 합니다.

옛날 어린 아이였던 나의 모습이 지금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 내게 가장 생동감 있고, 창조적이고, 육체적인 방식으로 말이다. 나는 그 아이에게 엄청난 관심이 있다. 언제나 그 아이와 대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그 아이와의 연락이 끊어지는 일이다.

모리스 센닥은 그림책에 대한 아이디어가 자신 속에 있는 어린 시절의 자신이라고 했습니다. 이게 작가의 입장이라면 독자의 입장에서 뒤집어 생각해보면 그림책을 볼때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을 떠오르게 하는 그림책이 좋은 그림책 아닐까요?

그런데, 이게 단순히 흉내를 내거나 억지로 짜내서는 아이들의 공감을 얻기 힘듭니다. 이에 대한 가이드 역시 모리스 센닥이 제시했습니다.

어린이의 갈등이나 고통을 전혀 드러내지 않는 허식의 세계를 그린 책은 자신의 어릴 때 경험을 생각해 낼 수 없는 사람들이 꾸며내는 것이다. 그렇게 꾸민 이야기는 어린이의 생활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칼데콧상 수상 소감으로 한 말이라고 하는데요. 추억이라는 허명 아래 그저 그럴싸하게 꾸며낸 이야기, 아이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억지로 만들어낸 이야기들로는 아이들이건 어른들이건 보는 이들의 공감을 얻어낼 수 없다는 뜻이라 생각됩니다.

가온빛 멤버들이 그림책을 고를 때 늘 염두에 두고 있는 두 가지 기준은 바로 위에 소개한 모리스 센닥의 말입니다.

2015년 4월 서점에서 만난 그림책

※ 순서는 ‘가나다’ 순이며 평점이나 순위와 무관합니다.


까치가 물고 간 할머니의 기억

까치가 물고 간 할머니의 기억

(원제 : Madame Cerise Et Le Trésor Des Pies Voleuses)
글/그림 상드라 푸아로 셰리프 | 옮김 문지영 | 한겨레아이들

(추천연령 : 7세 이상 | 쪽수 : 40 | 출간일 : 2015/03/30)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할머니의 치매가 소재인 그림책입니다. 하지만 주제는 치매 노인 문제가 아닙니다. 일생을 함께 살아온 사랑하는 아내가 조금씩 기억을 잃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할아버지의 할머니에 대한 그윽한 사랑 이야기입니다. “지난 여름 할아버지 집에서”에 이은 할아버지 할머니의 달달한 사랑 시리즈 두 번째 그림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까치가 물고 갔다는 표현이 참 멋지죠? 재미난 건 까치는 할머니의 소중한 것들만 꼭 물어갑니다. 물건들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남편과 가족, 손주들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들까지도 말이죠. 할머니의 기억을 물어간 까치의 보물창고를 찾을 수만 있다면 그곳엔 아마도 할머니에게 가장 소중한 것들만 소중히 보관되어 있지 않을까요?

아이들은 나오지 않지만 어린아이처럼 구는 할머니와 그런 아내를 자상하게 돌보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우리 아이들은 가족의 사랑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그림책 맨 마지막엔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위해 정성스레 만든 기발하고 멋진 드레스가 나옵니다. 할아버지의 사랑이 가득 담긴 할머니의 드레스, 놓치지 마세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감독이 쓴 추천사가 인상적입니다.

책장을 넘기기가 아까워서 천천히 보았습니다. 마지막장을 넘기고는 거꾸로 한 장 한 장 다시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인물들의 표정과 소품과 대화까지 어루만지듯 꼼꼼히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잠시 가슴에 품고 있었습니다. 인생의 마침표를 향해 함께 걷는 노부부의 값진 사랑을 어린이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감독 진모영

“까치가 물고 간 할머니의 기억” 리뷰 보기


뚝딱뚝딱 동물 건축가들

뚝딱뚝딱 동물 건축가들

(원제 : Animal Architects)
다니엘 나사르 | 그림 훌리오 안토니오 블라스코 | 옮김 변선희 | 다림

(추천연령 : 7세 이상 | 쪽수 : 44 | 출간일 : 2015/04/21)

다양한 동물들의 집짓기를 소개하고 자연과 동물들의 지혜를 빌려다 우리 생활에 활용하고 있는 예들을 보여줌으로써 아이들의 과학적 사고와 창의력을 길러줄 수 있는 그림책입니다. 동물들이 환경에 적응하고 치열한 생존 경쟁 속에서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펼치는 치열한 노력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좋은 그림책입니다.

그림책을 펼치면 특정 동물의 습성과 먹이, 천적 등의 생태적인 특성들을 보여주고 가려진 접지를 펼치면 그러한 환경에 적응하고 생존하기 위해 그 동물이 어떻게 집을 지었는지 보여줍니다. 건축가인 작가는 자신의 지식을 충분히 활용해서 동물들이 어떤 재료와 방법으로 집을 지었는지, 어떤 의도와 목적을 갖고 그렇게 집을 지었는지는 재미있게 설명해 주고 있는데, 바로 이 점이 이 그림책이 주는 장점 아닌가 싶습니다.

글을 쓴 다니엘 나사르는 진짜로 건축가라고 해요. 실제로 집이나 건축물들을 설계할 때 동물들의 집짓기로부터 많은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합니다.


무슨 생각하니?

무슨 생각하니?

(원제 : À quoi penses-tu?)
글/그림 로랑 모로 | 옮김 박정연 | 로그프레스

(추천연령 : 5세 이상 | 쪽수 : 40 | 출간일 : 2015/04/20)

“근사한 우리 가족”을 통해 처음 소개했던 로랑 모로의 새 그림책입니다. “근사한 우리 가족”이 우리 가족에 대한 이야기라면, “무슨 생각하니?”는 이웃에 대한 기발한 상상력이 담긴 그림책입니다.

그림책을 펼치면 한 장에 한 사람씩 이웃들이 등장합니다. 왼쪽엔 각 인물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짤막한 설명이 나오고, 오른쪽엔 인물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인물의 얼굴 부분을 살짝 들춰보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림으로 보여주는 형식으로 구성된 플랩북입니다.(알라딘 미리보기)

저는 니꼴라의 생각이 가장 인상적이더군요. ‘니꼴라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아요’라는 설명을 읽고 나서 니꼴라의 얼굴을 살짝 들춰 보면 하얀 백지…… 무념무상의 경지…… ^^ 머릿속이 맑고 깨끗한 니꼴라가 부럽네요~

한 장 한 장 넘겨가면서 한 사람 한 사람 생각을 들여다볼 때마다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좋아할만한 그림책입니다. 그리고, 그동안 무관심했던 이웃들에게 조금은 새로운 시선으로 다가설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는 그림책이기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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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의 정원

여우의 정원

(원제 : Une Rencontre)
글/그림 카미유 가로쉬 | 담푸스

(추천연령 : 4세 이상 | 쪽수 : 28 | 출간일 : 2015/04/10)

조금 더 서둘러서 지난 겨울에 나왔더라면 참 좋았을 것 같은 그림책 “여우의 정원”입니다. 등장하는 모든 대상물과 배경들을 종이로 일일이 오려 만들어서 입체감을 주는 콜라주 기법을 독특하게 사용한 그림책입니다. 그리고, 글자 없이 그림만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글 없는 그림책입니다.

세상이 온통 눈으로 뒤덮인 추운 겨울 날 어느 집 정원에 여우 한 마리가 숨어들었습니다. 그것을 지켜보던 그집 꼬마가 뒤따라가 보니 여우는 새끼를 낳기 위한 곳을 찾아 다녔었나봅니다. 막 태어난 새끼 여우들을 보듬고 있는 여우에게 꼬마는 먹을 것이 담긴 바구니를 건네주고 방으로 돌아와 잠이 듭니다. 그리고, 새끼들이 엄마를 따라 걸을 수 있게 되자 여우는 새끼들을 데리고 숲으로 돌아갑니다. 물론 숲으로 돌아가기 전에 자신과 새끼들에게 사랑을 베푼 꼬마에게 예쁜 선물을 전해주는 것도 잊지 않았구요.

세상이 꽁꽁 얼어붙어버린 추운 겨울이 배경이지만 그림책의 색감은 따스함입니다. 여우에게 자신의 정원을 내어 준 꼬마의 따뜻한 마음, 새끼들을 향한 엄마 여우의 깊은 사랑, 자신들을 향한 배려의 손길을 잊지 않는 훈훈한 여우 가족의 마음들이 그림 한 장 한 장마다 배어 있어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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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건축가 무무

위대한 건축가 무무

글/그림 김리라 | 토토북

(추천연령 : 4세 이상 | 쪽수 : 32 | 출간일 : 2015/03/30)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TV 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보면 삼둥이들이 자기들 소파와 테이블로 열심히 집짓기를 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됩니다. “위대한 건축가 무무”도 아이들의 집짓기 놀이에 대한 그림책입니다. 집안의 온갖 잡동사니들을 가져다 아이들이 집을 짓는 과정을 아주 예쁘게 담아냈습니다.

작가는 아이들이 지은 집을 ‘작품’이라고 표현합니다. 그 집을 지은 아이들은 ‘위대한 건축가’라고 하구요. 그리고나서 아이들의 집짓기 과정을 설명합니다. ‘설계 – 집터 고르기 – 땅 고르기 – 기둥과 뼈대 세우기 – 지붕 얹기 – 전기 공사 – 바닥 공사 – 실내 장식’ 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보면서 우리 아이들은 자연스레 어떤 과정을 통해 집이 지어지는지 배울 수 있습니다.

아이들 뿐만 아니라 엄마 아빠도 “위대한 건축가 무무”를 통해 배우게 됩니다. 아이들의 재능이나 창의력은 학원이나 방문교사들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 아이들이 재미있어 하는 것이 무엇인지 엄마 아빠가 잘 파악하고 그것들을 더욱 잘 할 수 있도록 곁에서 함께 해주고 격려해 주는 과정 속에서 아이들은 스스로의 잠재력을 찾아내고 키워나갈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굳이 이렇게 거창한 설명들을 빼고라도 “위대한 건축가 무무”는 아이들과 엄마 아빠가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는 아주 멋진 방법을 보여주는 그림책입니다.

“위대한 건축가 무무” 리뷰 보기


※ 그 외에 주목할만한 그림책들

지난 3월까지는 필자별 추천 그림책을 보려드렸었는데, 새로 나온 그림책들을 좀 더 많이 소개하자는 취지에서 ‘서점에서 만난 그림책’ 5권을 고르기 위해 후보에 올랐던 그림책 목록을 모두 보여드리기로 했습니다. 작가, 출판사 등 세부정보는 링크된 페이지를 참고하세요. (※ 순서는 ‘가나다’ 순이며 평점이나 순위와 무관합니다.)


※ 번외

그 외에도 4월에 새로 나온 그림책들 중에서 눈여겨 볼만한 그림책들 번외로 소개합니다.

  • 비클의 모험 : 2015년 칼데콧 수상작 소개를 통해 소개했었던 “비클의 모험”이 얼마 전에 출간되었습니다. 칼데콧 메달 수상한 그림책이니 굳이 긴 설명 필요 없겠죠? ^^
  • 할아버지 안녕 : 학고재 대대손손 시리즈의 마지막 그림책입니다. 대대손손 시리즈는 아이의 출생에서 돌잔치, 성년식, 결혼, 환갑, 장례와 제사에 이르기까지 의례와 잔치를 중심으로 일생에 걸친 삶에 스며들어 있는 우리 고유의 전통 문화를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그림책 시리즈입니다. 출간 순서와 상관 없이 라이프 사이클에 맞춰서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 지렁이 굴로 들어가 볼래? : 길벗어린이의 과학그림책 시리즈 신간입니다. 지렁이에 대한 재미난 볼거리와 유익한 정보들이 담겨 있습니다. 종이를 오려붙이고 그 위에 색을 덧칠하는 형식으로 만들어져 지렁이와 지렁이가 사는 환경 등을 실제와 같은 질감을 느끼며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그림책입니다.
  • 서울 길라잡이 그림책
    • 색깔 찾아 서울 가자 : 서울은 어떤 색깔일까요? 옛것과 새것이 공존하는 서울에 전통 문화, 다양한 볼거리, 풍성한 먹거리들을 각각의 특성에 맞는 색깔로 소개해 주는 그림책입니다. 아이들을 위한 아주 멋진 서울 여행 길라잡이 책이 될 듯 합니다.
    • 한강의 다리 : 한강에 다리가 모두 몇 개인지 아시나요? 한강에 놓여진 30여 개의 다리들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한 그림책입니다. 다리를 만드는 다양한 방법, 각각의 다리마다 품고 있는 이야기와 역사적인 사건 등에 대해서 풍성하게 담아냈습니다.

가온빛지기

가온빛 웹사이트 및 뉴스레터 운영 관리, 가온빛 인스타그램 운영 | editor@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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