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행 : 2018/01/17
■ 마지막 업데이트 : 2021/01/06


지난 해 제가 소개하기로 한 그림책들 중에서 해가 바뀌도록 리뷰하지 못한 책들이 적지 않습니다. 쓰다가 다 못 쓴 그림책 이야기들도 여러 권 됩니다. 이 그림책은 이런 시점에서 접근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시작했다가도 막상 쓰려고 하면 이야기가 잘 풀리지 않을 때도 있고, ‘그림책 이야기’에서 ‘오늘의 그림 한 장’으로 카테고리를 바꾸고 새롭게 풀어보려고 했다가 또 다시 좌절을 맛 보기도 합니다.

작가의 이야기가 너무 무거워서 그런 경우도 있고, 시각적인 측면이 강한 그림책을 글로 풀어내는 게 만만치 않아서 그럴 때도 있습니다. 여름 이야기인데 시기를 놓쳐 겨울이 되어 버리면 내년 여름에 소개하는 게 더 낫겠다는 핑계로 미루기도 합니다. 숀 탠의 “여름의 규칙”처럼 이야기가 잘 풀리지 않아 실패를 거듭하다 여름이 지나 버리고 그 뒤로 몇 번의 여름이 찾아왔음에도 결국은 아직까지 소개 못한 그림책들도 있습니다.

2018년 1월 이후 출간된 그림책들이 벌써부터 책상 위에 한 권 두 권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미루면 미룰수록 지난 해 출간된 책들은 점점 더 밑으로 깔려 소개되지 못한 채 지나가게 될까 싶어 스트레스도 함께 쌓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지난 해 저를 힘들게 했던, 그래서 아직까지 리뷰를 못한 채 제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책들 중에서 이렇게라도 꼭 소개하고 싶은 그림책 다섯 권을 골라서 여러분께 뒤늦게나마 권합니다.


※ 순서는 출간일 순이이며 평점이나 순위와 무관합니다.

내 마음이 들리나요

내 마음이 들리나요

글/그림 조아라 | 한솔수북
(2017/01/10)

2017 가온빛 추천 그림책 BEST 101 선정작

슬픔 가득한 그림 속에서 작디 작은 까까머리 소년의 꿈을 잔잔하게 그려낸 “로켓보이”의 조아라 작가가 오랜 공백 끝에 내놓은 두 번째 그림책 “내 마음이 들리나요”. 전작 “로켓보이”“내 마음이 들리나요”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두 작품 모두 연필만으로 그려낸 숨막히도록 담담한 그림이 인상적이라는 점, 그리고 두 번째는 글 없는 그림책이라는 사실.

시각의 의존도가 높은 그림책임에도 불구하고 조아라 작가의 “내 마음이 들리나요”는 우리의 청각을 자극합니다. 상처 받은 한 아이의 시선을 통해 바라본 세상의 소소한 풍경들이 잔잔한 음악이 담긴 악보 속 음표로 살아나 우리의 귀를 자극하는 그림책 “내 마음이 들리나요”, 리뷰를 몇 번이고 쓰다 마무리 짓지 못한 이유는 아마도 그림을 통해 전해지는 작가의 긴장과 그림책 속 아이의 상처의 무게 탓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투명 나무

투명 나무

허정윤 | 그림 정진호 | 주니어RHK
(발행 : 2017/02/20)

2017 가온빛 추천 그림책 BEST 101 선정작

“위를 봐요”의 정진호 작가의 구성이 돋보이는 “투명 나무”는 인간은 자연을 파괴했지만 자연은 인간을 버리지 않았음을, 인간이 자연의 소중함을 깨닫고 다시 자연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음을 시각적으로 명쾌하게 보여주는 그림책입니다.

참신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허정윤 작가와 시각적 구성 속에 함의를 담아내는 재주가 남다른 정진호 작가 덕분에 스무 장도 채 안되는 그림들만으로도 누구나 쉽게 그림책 속에 담긴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뛰어난 점들이 이 그림책을 글로 소개하기 어려웠던 이유기도 하죠.


나는 봉지

나는 봉지

글/그림 노인경 | 웅진주니어
(발행 : 2017/06/20)

2017 가온빛 추천 그림책 BEST 101 선정작

아이와 함께 장을 보고 물건들을 담아왔던 노란 봉지 하나. 베란다 한 구석에 팽개쳐진 채 신세 한탄에 빠진 다른 봉지들 틈에서 창문을 통해 불어오는 바람을 한껏 머금고 날아오른 노란 봉지. 이제는 이름만으로도 책 주문을 망설이지 않을만큼 늘 좋은 작품을 선사해왔던 노인경 작가의 일곱 번째 그림책 “나는 봉지”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됩니다.

소개글 쓰기 위해 책꽂이에 꽂혀 있던 그림책을 펼쳐 들고 바람에 이리저리 떠다니는 노란 봉지를 따라가다 보면 애써 다잡았던 마음이 또 다시 가닥을 잡지 못한 채 풍랑에 휩쓸린 조각배 마냥 출렁대기 시작하곤 합니다. 이제는 용도를 다한 노란 봉지에게서 희망을 찾는 이야기로 써볼까 싶다가도, 노란 봉지가 만나는 사람들 저마다의 작은 이야기들에 글머리를 놓치곤 합니다.

모처럼 한가로움을 느낄 때, 아니면 힘들고 지칠 때 잠깐 서점에 들러 펼쳐 보시길 권합니다. 그림책 “나는 봉지” 속에서 노란 봉지가 만나는 우리 이웃들의 작은 설레임과 행복의 순간들이 여러분들에게 편안한 휴식과 따스한 위로가 되어줄 겁니다.


칠성이

칠성이

황선미 | 그림 김용철 | 사계절
(발행 : 2017/06/28)

2017 가온빛 추천 그림책 BEST 101 선정작

“마당을 나온 암탉”으로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황선미 작가가 지난 초여름 내놓은 그림책 “칠성이”. 글 자체만으로도 매우 뛰어난 단편 소설로서 전혀 손색이 없고, 우리 전통 소싸움을 그려낸 김용철 작가의 그림만으로 따로 전시회를 열어도 모자랄 것이 전혀 없을만큼 글과 그림 모두 뛰어난 작품입니다.

싸움소 칠성이를 통해 살갗을 찢어내듯 아프고 치열한 현실을 느끼고, 황영감의 깊은 한 숨 속에서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엿볼 수 있는 그림책 “칠성이”. 이제 막 힘을 쓰는 법을 배운 치기 어린 싸움소 마냥 소개글 쓰려고 섣불리 덤벼들기를 수차례, 결국은 작가들과 등장 인물들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반 년이 넘도록 글을 맺지 못하고 있습니다.

2017년 절대로 놓쳐서는 안될 그림책 “칠성이”, 아직 읽지 않았다면 서툰 리뷰어가 진정한 싸움소로 거듭나서 소개할 때까지 기다리기보다는 직접 부딪혀 보길 권합니다.

“칠성이” 리뷰 보기


물싸움

물싸움

글/그림 전미화 | 사계절
(발행 : 2017/09/01)

언제나 개성 넘치는 그림과 이야기를 선보여온 전미화 작가의 “물싸움”. 지독한 가뭄 속에서 자기 논을 지키기 위한 농부들의 치열한 몸부림을 담담하게 그려낸 그림책입니다. ‘물싸움’이란 말 자체가 생경한 우리들이 그들의 생존의 몸짓을 얼만큼이나 이해할 수 있을런지는 모르겠으나, 작가의 솔직하면서도 조금은 과장된 붓놀림 끝에서 수확의 기쁨 그 이면에 담긴 처절함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끼게 해주는 그림책입니다.


이 인호

에디터, 가온빛 레터, 가온빛 레터 플러스 담당 | ino@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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