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아래 그림책의 몇 장면들 함께 보시죠.

Rising sun flag = Japanese War Criminal flag = Hakenkreuz

Rising sun flag = Japanese War Criminal flag = Hakenkreuz

Rising sun flag = Japanese War Criminal flag = Hakenkreuz

위 그림들은 98년생 우리 딸이 어릴 적에 가장 좋아했던 그림책들 중 하나인 존 버닝햄의 “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에 나오는 장면들입니다. 이 그림책엔 위에서 보다시피 일본 전범기 무늬가 여러 차례 나옵니다. 일본에서 열린 엑스포에 참가하는 일본 철도 회사로부터 의뢰를 받고 만든 것이다보니 일본에 꼭 맞는 뭔가를 담고 싶었던 것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이 책의 초판이 1989년에 발행되었으니 30여년이 지난 지금 존 버닝햄은 저 장면들이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되었을까요? 프랑스 어린이들을 위해 나치의 하켄크로이츠 문양을 큼지막하게 그려 넣은 그림책을 만들어달라고 의뢰한다면 존 버닝햄은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까요? 그것과 똑같은 짓을 우리 아이들에게, 2차대전 당시 일본에게 피해입은 아시아의 여러 나라 어린이들에게 자신이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우리의 영원한 할아버지 존 버닝햄은 얼마나 마음 아파하고 미안해 할까요?

최근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었던 이슈 중 하나가 제주 국제관함식에 전범기를 달고 참석하려는 일본의 시도였습니다. 이 친구들은 이미 전례가 있었기에 아무렇지도 않게 전범기를 달고 또 한 번 우리를 욕보이려 했지만 이번엔 분위기가 전혀 달랐죠. 현 정부 들어서면서 국제 정세 속에서 자신들의 위치도 애매했고, 우리 국민들의 분노 역시 자신들이 감당할만큼의 무게가 아니었기에 결국 꼬랑지를 내렸지만 아마도 포기하기 보다는 뒤돌아서서 이를 갈고 있을 겁니다.

국제관함식은 10년에 한 번씩 열리는 행사라고 하는데 이미 1998년과 2008년엔 버젓이 전범기를 달고 부산 앞바다에 들어왔었다고 합니다. 말로는 ‘여태 아무 말도 않더니 왜 이제 와서 그러냐? 욱일기를 문제 삼는 건 전세계 적으로 한국인들 뿐이다!’ 하고 지껄이지만, 속으로는 두려웠을 겁니다. ‘아, 앞으로는 이 마저도 힘들겠구나!’ 하고 말이죠. 그리고 새로운 짓거리를 꾸며 내기 위해 잔머리를 굴려대기 시작했을 겁니다.

이 번 제주 국제관함식을 앞두고 일본 전범기와 관련해서 달라진 건 다름 아닌 바로 우리들이었습니다. 20년 전이나 10년 전에 우리가 지금처럼 발끈하고 전국민이 한 마음으로 거부했다면 애시당초 우리 바다 위에 그 더러운 전범기가 나부끼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20년 전에, 10년 전에 일본은 우리를 얼마나 비웃었을까요?

바로 그 일본 전범기가, 그 무늬가 우리 아이들이 보는 그림책에 간간이 보입니다. “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가 나온지 벌써 30여 년이 지났고, 가온빛을 시작한 2014년부터 따져보더라도 거의 매년 몇 권씩 일본 전범기 무늬가 들어간 그림책들이 출간되는 것을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지켜보고 있습니다. 우리 작가들이 일본 전범기를 그릴리는 만무하고 모두가 해외 작가들의 그림책입니다. 그런 책들을 들여오는 분들은 그 작가들에게 혹시 일본 전범기에 대해 제대로 알려 주려고 한 적이 있나 궁금합니다.

오늘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 그림책엔 일본 전범기가 들어갔으니 들여오지도 말고 사지도 맙시다!’ 하는 이야기가 절대 아닙니다. 그랬다면 그 책들 목록을 공개했겠죠. 그 중엔 괜찮은 그림책들도 있습니다. “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런 책을 아예 출간하지 말란 말이 결코 아닙니다. 작품이 좋으면 얼마든지 들여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런 그림을 그린 작가들에게 자신들이 그린 그림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피로 얼룩져 있는 것인지는 반드시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님, 이 그림에 어떤 역사가 담겨 있는지 아시나요? 이번 작품이 너무 좋아서 우리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들여오지만 알고 난 다음에도 굳이 이 무늬를 또 그린다면 대한민국에서 당신은 환영받지 못할 겁니다!’라고 할 수 있는 그런 분들이 우리 아이들이 볼 그림책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엄마 아빠들도 이런 그림책을 접하게 될 경우 아이들이 이해하긴 어렵지 않을까 생각하지 말고 찬찬히 알려주세요. ‘일본 전범기가 들어간 그림책이니 우리 아이에게는 보여주지 말아야지’할 수도 있겠지만, 그 책이 좋은 그림책이라면 보여주되 아이가 알아야 할 것을 제대로 알려주면 되지 않을까요? 그래야 우리 아이들이 제대로 역사를 알고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 할 수 있는 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을테니까요.

우리가 조금 더 강해지고, 세계가 제대로 된 역사를 더 많이 알게 될수록 일본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습니다. 올해 노벨 평화상이 발표되기가 무섭게 말수가 줄어든 일본의 모양새가 그 증거입니다. 2018년 노벨 평화상은 두 명이 공동수상했는데 두 명 모두 전시 성폭력을 없애기 위해 헌신한 사람들입니다. ‘전시 성폭력’이란 말만 들어도 경기 일으키는 일본은 보도도 제대로 안했다고 하더군요. 여지껏 막대한 물량 공세로 로비를 하며 막아왔지만 전세계가 일본군 성노예 문제에 대해서 알게 될 것이고, 희생자였던 우리 할머니들이 노벨 평화상을 받고 그 앞에 일본이 고개 숙여 진심으로 사과하는 날이 머잖아 올 겁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 자기 자리에서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애써야 하겠죠. 그림책 좋아하는 우리들은 그림책 속에서 일본 전범기가 함부로 펄럭이지 않도록 하는 것, 이 게 바로 그 첫 걸음 아닐까요?

이 인호

이 인호

열여덟 살 딸내미와 폭풍 수다에 체력 고갈되어가는 아내를 18년째 묵묵히 지켜보고 있는 남편. 한때 아내가 쓴 딸아이 육아일기에 '396개월 남아'로 등장했었던 그 남아. 그림책 좋아하는 542개월 남아로 폭풍 성장 중 ^^ | 2015년 7월 | ino@gaonbit.kr

6 Replies to “책 만드는 이들의 책임 2. 그림책 속 일본 전범기

  1. 크게 동감합니다.
    좋은 그림책(종이봉지공주, 리디아의 정원 등)이나 패션, 디자인, 영화 등에 욱일기가 등장할때마다 씁쓸한 마음이.. 부모가 알고 아이에게 역사를 알려주고 올바르게 행동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면 참 다행일텐데 전혀 모르고 지나가는 이들이 많을 것 같아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허나 가온빛에서도 이 관련 글을 떡~ 하니 써주시니 참으로 든든합니다.
    앞으로 이곳에 오시는 많은 분들이 보게 될테니까요.

    제가 활동하고 있는 그림책모임에서 작년에 존 버닝햄 작가의 책을 전부 읽었는데, 욱일기 모양이 다른 작가에 비해 많이 나와서 처음엔 화가 나다, 그가 이런 역사적 배경을 모르고 쓰고 있는것 같다 알려주자며 그가 소속(?)된 출판사의 존 버닝햄 작가 담당직원에게 메일을 보낸 적이 있어요. 꼭 답장을 달라 했지만 답변을 받진 못했고요. 다시 보내겠다 해두고선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는데, 어제 저희 모임원이 가온빛에 존버닝햄의 욱일기 관련 글이 올라왔다는 소식을 전해주었어요. 가온빛의 이 글에 힘입어 이번엔 영국문화원에 전달해보자라는 의견을 나누고 있답니다.
    다시 떠올리게 해주어 고맙습니다.

    http://www.anti-risingsunflag.net/
    ㄴ 안티 욱일기 사이트입니다.

  2. 헉, 전혀 몰랐네요. 다시 한 번 살펴봐야겠어요. 이왕이면 명단을 공개해 주시면 좋았을 텐데… 편집자들도 미처 그런 생각을 못하고 계약을 했을지도 모를 것 같아서요. 독자들이 알게 되면 출판사 쪽에서 책임 있게 작가에게 뒤늦게나마 전범기의 의미를 전달하지 않을까요? 저도 앞으로는 더 유심히 살펴보겠습니다.

    1. 일본 전범기 무늬가 들어간 그림책들을 일일이 공개하지 않은 건 본문에서도 언급했지만 이 글을 쓴 이유가 그 책들을 보면 안된다거나, 그런 그림책들 불매운동하자는 게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존 버닝햄의 “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를 사례로 든 이유는 워낙 많이 알려진 책이라 더 안팔리더라도 큰 문제가 없을 듯 하고, 많이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일본 전범기 무늬가 들어가 있다는 걸 눈치 채지 못하는 분이 많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낸 이후로 존 버닝햄의 그림에 일본 전범기 무늬가 꾸준히 등장하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 각성하기에 좋은 케이스라 생각되기도 했구요.

      1. 예 말씀하신 뜻 잘 이해했습니다. 알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3. 저도 이 장면이 자꾸만 불편하게 느껴졌어요.
    애가 좋아하는책이라 종종 읽어주던 기억이 나는데요.
    작가가 의도적으로 표현했을까? 무척 궁금했었거든요. 존버닝햄 할아버지한테 정말 물어보고 싶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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