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도서관 등에서 그림책 놀이 관련 강의를 할때마다 엄마들의 단골 질문 중 하나가 집에서 그림책 놀이를 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엄마 딴엔 열심히 준비했는데 아이 반응이 시큰둥하다거나,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금방 흥미를 잃는다거나 하면 이것 저것 준비한 정성이며 재료비가 아까워 아이에게 짜증을 내게 되는 경우도 있고, 또 어떻게 놀아주어야 할지 놀이 자체가 부담스럽다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엄마들은 아이에게 잘 놀아주어야 한다는 욕심이 앞서다 보니, 그림책 놀이를 너무 거창하게 준비하는 사례가 많이 있습니다. 그림책놀이를 하는 연령의 아이들이 적게는 세 살부터 일곱살, 여덟살 가량의 아이들인데, 너무 커다란 놀이를 계획했다 다 못하고 흐지부지 되는 경우나 그냥 놀이가 아닌 책놀이라는 부분 때문에 아이에게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앞선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엄마 아빠와 함께 하는 신나는 그림책 놀이
재미 없으면 놀이가 아니다
CC BY-NC-ND, Amanda Tipton

그럴 때마다  책놀이에서 학습효과는 조금 뒤에 두시고 놀이 자체에 좀 더 집중해 보시라고 말씀드리곤 했어요. 책놀이는 학습 프로그램이 아닌 ‘엄마 아빠와 함께 하는 신나는 놀이’입니다. 읽은 것을 표현해 보고 그림을 그려보고 엄마 아빠와 신체 활동도 하면서 책을 즐겁게 받아들이게 되는 하나의 과정일 뿐이지, 책의 내용을 더 오래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한 학습프로그램이 아닙니다. 물론, 즐겁게 놀고 아이에게 좋은 기억들이 깊게 각인이 되어 책의 내용을 더 깊고 재미있게 이해하게 된다면 더없이 기쁜 일이 되겠지만 그것이 우선시 된다면 놀이는 학습의 냄새를 풍기게 되고 아이들은 놀이를 재미없게 여기게 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입니다.

‘놀이하자’와 ‘공부하자’가 똑같은 의미로 아이에게 전달된다면 아이들은 당연히 재미없어 하겠죠 ^^ 아이들이 좋아하는 게임도 학교에서 시험 치르고 성적을 매기고, 좋은 점수를 위해서 엄마들은 또 학원에 보내서 게임을 가르치고… 뭐 이러기 시작하면 게임기 화면속으로 들어갈것만 같았던 아이들도 아마 게임을 싫어하게 되지 않을까요? ^^

함께 책 보기 자체가 그림책 놀이

놀이를 구성할 때는 쉽고 단순한 것, 엄마들도 익숙한 것들로 시작하세요. 꼭 미술놀이나 만들기 놀이가 아니어도 됩니다. 책을 자세히 들여다 보는 것도 놀이의 일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림책 놀이 - 우리 동네 한바퀴
우리 동네 한 바퀴, 글/그림 정지윤, 웅진주니어

정지윤 작가의 “우리동네 한 바퀴”라는 그림책은 채소 장사를 하는 준구네 가족 이야기에서 시작해 준구가 살고 있는 동네 이야기와 이웃들의 이야기를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낸 그림책입니다. 이 그림책을 읽고 아이 손 잡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면서 우리 동네에는 어떤 가게가 있고 그 가게에는 어떤 분들이 장사를 하고 있는지 한번 돌아 보는 것도 책놀이의 재미 중 하나입니다.

또 하나 그림책 속 준구 아빠가 채소 장사를 나가시면서 채소를 덮는 달력을 한번 따라가 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아빠의 채소 상자를 덮었던 달력 종이는 식당집으로 가게 되고, 식당집 아주머니는 종이를 모아 폐지를 모아 파시는 할머니에게 드립니다. 고물상으로 폐지를 팔러 가시던 할머니 짐수레에서 슬쩍 떨어진 달력종이는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고 넘어가면서 동네를 한 바퀴 돌게 되죠. 준구네 동네를 한 바퀴 다 도는 달력종이의 여정은 너무나 따스하고 정겹습니다. 단순하게 종이가 어디로 어떻게 누구에게 가는지 책을 따라 살펴 보는 것도 책놀이의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림책 놀이 - 이슬이의 첫 심부름
이슬이의 첫 심부름, 글 쓰쓰이 요리코, 그림 하야시 아키코, 한림출판사
단순히 따라하기도 그림책 놀이

그림책 놀이 - 첫심부름

처음 해보는 심부름 이야기를 통해 “처음 해보는 일”에 대한 아이들의 설레임과 두려움을 잘 담아낸 그림책 “이슬이의 첫 심부름”. 이 책을 읽은 후에는 간단하게 심부름 해보기 놀이로 연결해 보세요. 너무 복잡하고 너무 많은 심부름이 아닌 이슬이처럼 우유 하나 사오기, 거스름돈 받아오는 미션 정도로 말이죠. 혹시나 지금껏 단 한번도 아이에게 심부름을 시켜 본 적이 없다면 아이가 많이 부담스러워할 수도 있어요. 이럴때는 그것도 못하냐, (사내아이인 경우) 남자가 그것도 못하냐는 식으로 너무 몰아세우지 말고 아이 스스로 준비되었을때 하는게 좋습니다.

저는 책 속 이슬이처럼 아이가 다섯살이었을 때 요구르트 아줌마에게 요구르트 사오기 심부름을 시켰보았었답니다. 엄마는 몰래 뒤를 따라가 슬쩍 사진 한 장 찍어두었었는데, 고등학생이 된 아이는 지금도 그 기억을 어렴풋이 하고 있더군요. 가슴이 벌렁벌렁 뛰었다는 느낌까지 말이죠. 어른들에겐 별거 아닌 일이지만 아이들에겐 상당한 스트레스를 주는 미션이긴 한가봅니다 ^^

그림책 놀이 - 장수탕 선녀님
장수탕 선녀님, 글/그림 백희나, 책읽는곰

동네 오래된 목욕탕 장수탕에서 선녀님을 만나 재미있는 시간을 보낸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 “장수탕 선녀님”을 읽어 본 후에는 동네 오래된 목욕탕을 한 번 찾아가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그 곳에서 주인공 아이가 놀았던 것처럼 발 딛고 헤엄도 쳐보고 국가대표 금메달 놀이도 해보고, 목욕 바가지로 장난도 쳐보고 목욕 끝내고 나오는 길엔 엄마나 아빠랑 장수탕 선녀님 표정으로 요구르트도 마셔보는 놀이를 해 보세요. ^^

그림책 놀이 일상 속에서 찾으세요

목욕탕을 가건, 집에서 목욕을 하건 아이와 함께 목욕하는 일은 우리 일상에서 자주 있는 일이죠. 아이와 함께 목욕하다 문득 장수탕 선녀님 표정이 어쩌구 저쩌구, 우리도 끝나고 나서 요구르트 먹을까… 뭐 이러면서 그림책에서 봤던 이야기들 떠올리면서 깔깔대고 즐기는 것 자체가 바로 그림책 놀이 아닐까요?

그림책 놀이 - 팥죽 할멈과 호랑이
팥죽 할멈과 호랑이, 글 박윤규, 그림 백희나, 시공주니어

“팥죽 할멈과 호랑이”를 읽은 후에는 아이와 함께 팥죽 만들기에 도전해 보세요. 인터넷을 찾아보면 맛난 팥죽 레시피를 구할 수 있습니다. 재료를 구하러 아이 손 잡고 시장에도 한 번 다녀오시고, 아이와 함께 만들어 먹어보면 아이는 할머니의 팥죽을 얻어 먹은 알밤과 자라와 물찌똥, 송곳이 왜 할머니를 도와주려 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을거예요. 팥죽 만들 자신이 없다면 할머니, 외할머니께 부탁해 보시는 것도 방법입니다.^^ 이 기회에 아이와 팥 사들고 “팥죽 만들어 주세요!”하고 할머니 댁을 찾는것도 아이에겐 재미있는 추억이 되지 않을까요?

아이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는 그림책 놀이

다행히 요즘은 단팥죽 파는 곳이 많아져서 인터넷 찾아 보면 쉽게 맛있는 집 찾아 보실 수 있으니 만들기 어려우면 아이와 함께 단팥죽 외식 겸 나들이 가는 것도 방법이겠네요.^^

그림책 놀이 - 강아지똥
강아지똥, 글 권정생, 그림 정승각, 길벗어린이

“강아지 똥” 그림책을 읽은 후에는 밖에 나가 민들레 찾아보기 놀이, 강아지똥 영상 보기로 활용해 볼 수 있습니다. 산책을 하면서 맑은 바깥 공기도 쐬어보고 가고 오면서 아이 손 잡고 이야기 나눠 보는 것 만큼 부담 없이 행복한 놀이는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즐거운 기억으로 놀이를 하다 보면 아이와 엄마에게 신뢰가 쌓이면서 엄마 아빠와 함께 하는 놀이도 점점 발전하고 진화하게 됩니다. 쉽고 간단한 것, 흥미로운 것, 짧은 시간 안에 해 볼 수 있는 것 위주로 골라보세요…^^ 놀이는 즐거움에서 출발해야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구요!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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