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행일 : 2014/12/04
■ 업데이트 : 2014/12/24


오소리와 벼룩

강둑에 사는
오소리가 발견했지.
단숨에 뛰어들어 구해 주었지.
가여웠던 거야.

오소리 한 마리가 나뭇가지를 물고 헤엄을 치고 있네요. 가만 보니 나뭇가지에 까맣거나 분홍색인 벌레들이 오종종 매달려 있어요. 오소리는 벌레들이 걱정이 되는지 나뭇가지가 물에 닿지 않게 조심스럽게 헤엄치고 있어요. 나뭇가지에 매달린 벌레들의 정체는 무엇이고, 오소리는 왜 이들을 구해주었을까요? 그리고 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벼룩들이 아슬아슬하게 나무토막을 타고 떠내려 가고 있는 것을 본 오소리는 단숨에 뛰어들어가 벼룩들을 구해주었어요.(아하!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던 벌레들은 바로 벼룩이었군요.)

오소리는 벼룩들이 떨어지지 않게 조심조심 나무토막을 들고 자신이 사는 굴속으로 돌아와 정성으로 보살피다 벼룩들을 아기처럼 안고 잠이 들었대요. 그런데 한밤중 배가 고파 잠에서 깨어난 벼룩들은 오소리 살 속으로 파고들어 오소리 피를 빨아먹기 시작해요.(아~ 가엾은 오소리…생각만 해도 온몸이 스멀스멀 해지는 걸요.)

그러니 오소리가 어찌 되었겠어요. 가려워 한숨도 못자고, 아파서 뒤척이다 한숨도 못자고…굴 밖으로 뛰쳐나가 온 몸을 박박 긁고, 털을 쥐어뜯고, 바위에 몸을 비비며 언덕을 데굴데굴 구르다 벼룩들이 타고 왔던 나무토막을 입에 물고 강가로 달려갔대요.

강물에 꼬리를 담그자 벼룩들은 오소리 허리께로 올라왔고, 허리를 담그자 벼룩들이 오소리 목덜미로 올라왔고, 온 몸을 담그자 벼룩들은 허겁지겁 오소리 입에 물린 나무토막으로 옮겨 앉았답니다. 그제야 오소리는 나무토막을 뱉어버리고 강둑으로 풀쩍 뛰어 올랐죠.

자,이제 그림책의 맨 처음 오소리가 나무토막에 매달린 채 떠내려 가던 벼룩을 보던 그 장면과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었습니다. 오소리가 내다버린 벼룩들은 아슬아슬 나무토막을 타고 떠내려가고 있었구요. 처음과 달리 오소리는 이제 제 갈길을 찾아 갔답니다.

선택은 아이들의 몫

은혜도 모르는 얄미운 벼룩들, 또 어리숙한 누군가가 구해줄까요? 아, 벼룩은 그게 본성이니 얄미운게 아니라구요? 그렇다면 벼룩은 그저 본성대로 했을 뿐인데 구해주고 품어줄 땐 언제고 몸이 가렵다고 물에 다시 떠내려 보낸 오소리가 너무 냉정한 걸까요? 글쎄요, 살면서 이런 상황 겪어 본 경험 한 번씩은 있지 않을까 싶네요. 오소리가 벼룩들만 건져주고 제 갈길 갔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가끔은 조금은 냉정함이 서로를 위하는 길일때도 있거든요. ‘이렇게까지 되지 말았으면 좋았을 것을…’하는 후회가 밀려들기 전 ‘여기까지!’라고, 딱 선을 긋는것, 물론 쉽지 않은 일 같긴 합니다.^^

여러분은 누구 편인가요? 오소리 편? 아니면 벼룩 편? 아이들과 재미나게 읽고 난 후 함께 이야기 나눠 보세요. 엄마 아빠의 생각을 먼저 단정적으로 아이에게 들려주기보다는 아이의 생각을 먼저 들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과연 누구 편을 들지 말이죠.


오소리와 벼룩
오소리와 벼룩

안도현 | 그림 김세현 | 미세기
(발행 : 2013/04/10)

이 이야기는 조선 후기 실학자였던 이덕무 선생이 쓴  ‘청장관전서‘라는 책에 족제비 몸에 달라붙어 피를 빠는 벼룩을 물리치는 이야기를 안도현 작가님이 살짝 내용을 바꿔 ‘이야기 동시’라는 형식으로 만들어 냈다고 해요. 이야기 동시는 말 그대로 동시에 동화적 요소를 섞은 양식이라고 합니다.(작가의 말에서 안도현 작가는 동시와 동화의 비빔밥이 바로 이야기 동시라고 써놓았습니다.) 기존의 ‘시 그림책’ 이라고 보면 맞을 듯 합니다.

“오소리와 벼룩”은 이야기 동시라는 형식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운율감과 리듬감이 잘 살아있는 한 편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보는 것 같아요.우리 눈에 다 같아 보이는 벼룩들의 모습을 다양하게 묘사한 부분(아둥바둥 매달린 벼룩, 와글와글 떠드는 벼룩, 피둥피둥 살찐 벼룩, 호리호리 마른 벼룩, 오들오들 떠는 벼룩, 열이 펄펄 나는 벼룩)이나 오소리가 조심스레 벼룩 한 마리 한 마리 돌봐주는 장면 묘사 등이 참 재미있게 느껴집니다.

오소리의 털빛이며 표정, 강물이나 동굴, 벼룩이 오소리 살 속에 파고들어 피를 빠는 장면 등 과감하고 단순한 선, 화려한 색상으로 표현된 김세현 작가의 그림은 이야기를 더욱 재미있게 이끌어 갑니다.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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