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는 바람 속에 있단다

난 바람 속에 있단다.

넌 나를 붙잡을 순 없을 거야.
나를 붙들어 둘 수도 없을 거야.
하지만 눈을 감아 보렴.
언제나 날 느낄 수 있을 거란다.

그래, 이제 더는 손잡고 산책하진 못하겠지.
새벽녘의 베개 싸움도 못 할 테고.
네 뽀뽀와 포옹도.

약속해 주렴. 약속해 주렴. 펑펑 울지 않겠다고.
네 눈에 바다가 가득한 건 싫단다.
약속해주렴. 내 웃음을 생각하겠다고.
가끔 내가 즐거울 수 있도록 말이다.

산들바람이 네 머리카락을 간지럽힐 때면
할아버지를 떠올려 주렴.
너무나 재미있던 이 할아버지를,
영원히 너를 사랑할 이 할아버지를.

할아버지는 바람 속에 있단다.

“할아버지는  바람 속에 있단다”는 그림과 글이 묘한 대조를 이루며 깊은 여운을 남겨주는 그림책입니다. 시처럼 흐르는 글은 손자를 남겨두고 떠나는 할아버지의 기도이며 마지막 인사입니다. 바람 속 할아버지의 속삭임 뒤로 펼쳐지는 서정미 가득한 그림들의 주체는 할아버지가 아니라 손자입니다. 할아버지를 잃은 한 소년의 깊은 상실감이 독특한 색감의 그림 위에 가득 번져납니다.

할아버지의 마지막 인사는 애틋합니다. ‘산들바람이 네 머리카락을 간지럽힐 때면 할아버지를 떠올려 주렴. 너무나 재미있던 이 할아버지를, 영원히 너를 사랑할 이 할아버지를. 할아버지는 바람 속에 있단다.’ 바람이 되어 언제 어디서나 손자 곁에 머물며 함께 하겠다는 할아버지의 깊은 사랑.

그림 속 소년은 그런 할아버지의 인사에 화답합니다. 할아버지와의 추억이 가득 배인 곳들을 돌아보며 상심에 젖은 소년은 어느 순간 할아버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뺨을 스쳐가는 바람결 속에서 소년은 문득 할아버지를 느낍니다. 그리고 깨닫습니다. 할아버지는 언제 어디서나 자신과 함께 한다는 것을.

결국 할아버지의 마지막 인사 역시 소년의 마음 속에서 들려 오는 것 아니었을까요? 할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소년이 처음 느꼈을 감정은 자신만 남겨두고 떠나는 할아버지에 대한 서운함, 배신감, 원망 같은 감정들이었을 겁니다. 감정에 북받쳐 무작정 걷다보니 가는 곳마다 할아버지의 흔적들을 만날 수 있었을테고, 소년은 그렇게 할아버지는 떠나버린 것이 아니라 영원히 자신 곁에 남아 있음을 깨닫게 되었겠죠. 바람 속에 들려오는 할아버지의 속삭임은 할아버지가 소년에게 남기는 마지막 인사이자, 할아버지가 늘 곁에 머물기를 바라는 소년의 바램이고, 늘 할아버지를 기억하며 살겠다는 소년의 다짐이기도 합니다.


할아버지는 바람 속에 있단다
책표지 : 씨드북
할아버지는 바람 속에 있단다
(원제 : J’ai laissé mon âme au Vent)

글 록산느 마리 갈리에즈 | 그림 에릭 퓌바레 | 옮김 박정연 | 씨드북

2015 가온빛 BEST 101 선정작

그림을 그린 에릭 퓌바레는 얼마 전 소개했던 “Puff the Magic Dragon”에서 만났었던 일러스트레이터입니다. 그러고보니 색감이나 느낌이 비슷한 것도 같습니다.

“할아버지는 바람 속에 있단다”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슬픔과 상실감을 치유해 가는 한 소년의 모습을 담은 그림책입니다. 소년은 할아버지와의 추억이 배인 장소들에서 할아버지와의 기억들을 떠올리며 조금씩 아픔을 극복해 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모래 언덕 위에 앉아 바람 속 할아버지를 만나는 소년의 모습을 지켜 보며 저마다의 아픔과 상처 자욱을 안고 사는 우리들 역시 치유되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됩니다.

“할아버지는 바람 속에 있단다”와 내용이나 느낌이 아주 비슷한 그림책이 한 권 있습니다. 바로 “유령이 된 할아버지”라는 그림책입니다. 죽음이라는 삶의 경계를 두고 마주선 할아버지와 손자의 애틋한 사랑이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그려진 이야기 속에 담겨 있습니다. 함께 보면 좋을 것 같아 권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