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사도우미가 될 거야!

그림책 “나는 가사도우미가 될 거야”를 펼치면 가장 먼저 나오는 면지 그림입니다. 지저분한 벽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있는 사람은 롤라네 집에 새로 온 가사도우미 마리아 아줌마예요. 꼬마 아가씨 롤라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직업은 바로 가사도우미임을 알려준 장본인이랍니다.

며칠 전 학교에서 장래 희망을 발표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자신이 꿈꾸는 멋진 직업들을 자랑스레 발표했습니다. 선생님, 우주인, 경찰…… 그런데 롤라가 자신의 꿈은 가사도우미가 되는 거라고 말하자 아이들이 모두 놀리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롤라는 전혀 창피해하지 않고 당당하게 말합니다.

뭐가 어때서?
왜 그게 창피한 일이야?
가사도우미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직업이야!

선생님이 웃으며 왜 가사도우미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직업이라고 생각하는지 묻자 롤라는 똘망똘망한 소리로 대답합니다.

나는 가사도우미가 정말 좋아요!
왜냐하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니까요!

여기까지 읽고 나서 ‘아니 왜 롤라는 가사도우미가 되고 싶어하는 걸까?’ 하고 의아해 하는 분들이 있다면 아마도 직업에 대한 편견이 있는 것 아닐까요? 오늘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주제가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아니지만 혹시나 그렇게 생각했던 분들은 스스로를 한 번 돌아보시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네요. ^^

어쨌든 롤라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볼까요?

사실 얼마 전 롤라는 마음 아픈 일을 겪었습니다. 아빠가 실직 당하자 엄마가 떠나버렸거든요. 상처를 입은 건 아빠도 마찬가지였어요. 실의에 빠진 채 집안 일은 커녕 롤라도 제대로 돌봐주지 못하고 밤마다 술만 마셔댔거든요. 그렇게 하루 하루가 지나며 집안 꼴은 엉망진창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리아 아줌마가 가사도우미로 롤라네 집에 찾아왔습니다. 마리아 아줌마는 그동안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집안 구석구석을 아주 말끔히 청소해냈어요. 집안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난 마리아 아줌마는 아빠까지 청소를 했습니다.(마리아 아줌마가 아빠를 우울하게 만드는 마음 속 바퀴벌레까지 아주 말끔하게 청소하는 모습은 웃음이 절로 난답니다.)

마리아 아줌마의 완벽한 대청소 덕분에 엉망진창이었던 집은 반짝반짝 거릴만큼 깨끗해졌고, 아빠도 다시 예전의 완벽한 아빠로 돌아왔어요. 오랜만에 환해진 집안에서 아빠의 활짝 웃는 얼굴을 보게 된 롤라의 마음엔 당연히 무지개꽃이 활짝 피었겠죠!

이제야 마리아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겠네요. ‘가사도우미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준다’는 말 말입니다.

그림책 속표지에 이런 글이 적혀 있습니다.

아이들의 꿈은 사회적 위치보다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아이들이 부모의 바람과 달리 사회에서 크게 인정받지 못하는 장래희망을 말하더라도 놀라지 말고 아이의 속마음을 들어보세요. 그리고 아이의 따뜻하고 순수한 동기를 격려하며 다양한 직업들에 대해서 알려 주세요.

– 심리학자 세실 왈로

어쩌면 작가가 이 그림책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은 출판사에서 붙인 카피처럼 ‘꿈꾸면 안 되는 직업이 있나요?’ 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롤라가 겪은 아픔에 더 마음이 쓰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엄마가 어느 날 갑자기 말 한마디 없이 사라졌습니다. 이제 남은 거라고는 아빠 뿐인데 넋이 나간 채 실의에 빠져 버린 아빠는 아무런 의지가 되지 못합니다. 집안이 점점 더 지저분해지고 아빠 모습이 점점 더 헝클어질 때마다 어린 롤라의 마음 속 상처는 깊어만 갑니다.

그런 롤라에게 집안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아빠의 웃음도 되찾아준 마리아 아줌마는 얼마나 반가운 사람이었을까요? 한동안 마음의 상처를 혼자서 어루만지며 버텨내야만 했던 어린 롤라에게 가사도우미란 직업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직업이라고 느껴질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조금만 더 애정과 관심으로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여주고, 아이들의 행동을 지켜봐준다면 그 아이들의 말과 행동 속에 담긴 아이들의 마음 속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 중에 상처받은 아이들이 있다면 우리 어른들이 포근하게 감싸줄 수 있겠죠.

어두운 그늘이 잔뜩 드리워졌던 롤라의 마음을 밝고 예쁜 연두색으로 칠해 준 마리아 아줌마처럼 말입니다.


나는 가사도우미가 될 거야!

나는 가사도우미가 될 거야!
(원제 : Plus Tard, Je Serai Femme de Ménage !)

글/그림 모르간 다비드 | 옮김 이재현 | 파랑새

오늘 해 드린 이야기 말고도 그림책 속엔 아빠와 마리아 아줌마의 달콤한 사랑 이야기도 담겨 있습니다. 엉뚱하고 의외이기도 하지만 보고 있자면 기분 좋아지는 그런 이야기랍니다. 어른들 눈엔 현실성 없는 이야기랄 수도 있겠지만 세상 모든 것을 순수하게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보며 펼쳐지는 이야기란 점 잊지 마세요~ ^^

“나는 가사도우미가 될 거야!”는 다섯 권으로 나온 ‘파랑새 인성학교 시리즈’ 중 한 권입니다. 다섯 권 모두 같은 작가의 작품입니다. 엄마 아빠 품에서 벗어나 조금씩 생활 반경을 넓혀가며 나와 가족 이외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 나가는 아이들을 위해 엄마 아빠가 아이와 함께 생각하고 고민해 볼만한 거리를 제시해 주는 시리즈라고 보면 될 듯 합니다.

※ 파랑새 인성학교 시리즈
  1. 안녕 니콜라!
  2. 나는 가사도우미가 될 거야!
  3. 두 바퀴로 걷는 우리 아빠
  4. 쳇, 귀찮아!
  5. 내 동생의 특별한 염색체

Mr. 고릴라

앤서니 브라운의 "고릴라" 덕분에 그림책과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제일 좋아하는 작가가 앤서니 브라운은 아닙니다. ^^ 이제 곧 여섯 살이 될 딸아이와 막 한 돌 지난 아들놈을 둔 만으로 30대 아빠입니다 ^^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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