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npa - 우리 할아버지

내가 어렸을 땐 말이다. 학교가 끝나면
한길에 나와서 굴렁쇠를 굴리며 놀았단다.

할아버지도 아기였던 때가 있어요?

할아버지는 손녀와 놀다 보니 어린 시절이 생각나신 모양입니다. 학교가 끝나면 굴렁쇠를 굴리며 놀았던 이야기를 하자 손녀가 할아버지도 아기였던 때가 있었냐며 쌩뚱 맞은 질문을 합니다.

어린시절 저도 할머니에게 이런 질문을 했던 기억이 나서 웃었어요. 할머니도 주름이 없던 시절이 있었냐구요. 왠지 할머니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할머니였을 것 같고, 아주 오랜 옛날에도 주름이 가득했을 것 같았던, 옛날에도 지금도 내 할머니로만 존재했었을 것 같았거든요.


우리 할아버지
책표지 : 비룡소
우리 할아버지(원제 : Grandpa)

글/그림 존 버닝햄, 옮긴이 박상희, 비룡소

할아버지와 함께 씨앗을 심으면서 보낸 봄, 바닷가에서 보낸 여름, 커다란 나무 아래 배를 띄워 놓고 물고기를 잡으러 갔던 가을 날의 추억,  눈 내린 빙판길을 할아버지 손을 잡아 드리며 걸었던 겨울날. 계절과 계절 사이 할아버지와 만든 다양하고 아련한 추억들.

할아버지와 영원한 시간을 보낼 것만 같았지만 할아버지의 시간은 영원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할아버지가 늘 앉아계셨던 초록색 쇼파는 덩그러니 비어있고, 소녀는 말 없이 빈 쇼파를 바라보고 있어요. 떠나간 할아버지의 부재를 선명한 초록색 빈 쇼파를 바라 보는 흑백의 소녀 모습으로 먹먹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간결하고 짧은 할아버지와의 대화, 손녀와 시간을 보내면서 할아버지가 어린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이나 상상의 장면을 흑백 그림으로 처리한 그림들이 그림책을 보는 동안 더욱 아련한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존 버닝햄은 자신의 아버지와 딸이 서로 촛점이 맞지 않는 질문과 답을 하는 모습을 보며 이 그림책을 구상했다고 합니다. 이 그림책은 1989년 영국 다이앤 잭슨 감독에 의해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었습니다. 원작인 그림책도 참 좋지만 애니메이션도 원작의 느낌을 잘 살려 만들어 졌습니다.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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