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색 아침

눈을 감은 채 쓰러져 있는 흰색 강아지. 강아지를 내려다보며 슬피 울고 있는 아이. ‘갈색 법을 지킵시다’라는 슬로건이 큼직하게 적혀 있는 벽보와 삭막한 담벼락과 철조망. 그리고 나뭇잎은 단 한 장도 남아 있지 않은 헐벗은 나무. 쓰러져 있는 흰색 강아지를 제외하고는 온통 갈색 뿐인 이 도시에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처음엔 고양이만 단속의 대상이었습니다. 고양이가 너무 많이 불어났다는 핑계로 정부는 갈색이 아닌 고양이는 모두 죽여야 한다는 법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엔 갈색 개만 키울 수 있다는 법이 새로 생겨납니다. 멀쩡히 키우던 개나 고양이를 어느 날 갑자기 죽여야 하는 상황에 마음 한 구석이 찜찜하지만 법이 정한 일이니 사람들은 순순히 따랐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침묵하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거리일보’라는 신문이 갈색 고양이와 갈색 개만 키울 수 있다는 법은 잘못된 것이라고 매일같이 정부를 비판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거리일보’는 폐간되었습니다. 조금이라도 정부를 비판하는 언론은 모두 문을 닫게 되었고 결국엔 정부를 지지하는 ‘갈색 신문’만 남게 되었습니다.

갈색 법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살아있는 개나 고양이 뿐만 아니라 책 속에 나오는 개와 고양이에도 ‘갈색’이라는 수식어가 붙지 않은 경우엔 단속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갈색이 아닌 다른 색깔들도 마찬가지구요. 빨간 모자, 파랑새, 검은 고양이…… 등등 우리가 즐겨 읽던 책들을 더 이상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찾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갈색’이란 수식어를 빠트리면 잡혀갈 것만 같은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고양이와 생쥐’라고 말하던 사람은 화들짝 놀라며 주위를 둘러보고는 황급히 고쳐 말합니다. ‘갈색 고양이와 갈색 생쥐’라고……

다시 아까 그림으로 잠깐 돌아가볼까요. 아이 앞에 쓰러져 있는 흰색 강아지는 죽임을 당한 겁니다. 갈색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그 강아지를 아끼고 사랑했던 아이가 지켜보는 앞에서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어른들은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을 뿐 아무것도 해 주지 못합니다. ‘갈색 강아지를 키워보렴……’

갈색 아침

갈색 법이 내 이웃들을 잡아가고 언론사들을 탄압하는 것을 지켜보며 침묵했던 사람들은 어딘가 답답하고 찜찜했지만 그래도 내 집에서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밝은 아침을 맞이할 수 있기에 현실에 순응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갈색 법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젠 현재가 아니라 과거의 일까지 문제를 삼습니다. 지금이 아니어도 예전에 갈색이 아닌 개나 고양이를 키웠다면 죄가 된다는 겁니다. 그동안 침묵해왔던 주인공 역시 이번만큼은 피해갈 방법이 없는 듯 합니다.

아아, 누군가 문을 두드립니다.
이렇게 이른 아침에 누굴까요? 무서워요……
아직 해도 다 뜨지 않았는데……
세상이 온통 갈색이에요.

쾅쾅! 쾅쾅!
알았어요. 그만 두드리세요.
나가요, 나간다니까요…….

내 일이 아닌걸, 나는 상관 없어, 나는 괜찮겠지…… 하는 마음으로 침묵하며 매일매일 아침을 기다렸던 주인공에게 찾아온 것은 갈색 아침이었습니다.

그림책 “갈색 아침”의 추천사를 쓴 “아빠의 봄날”의 박상률 작가는 독일 나치 정권하에 살았던 신학자 마틴 니묄러의 시를 인용했습니다. 남이 박해를 당할 때 외면하고 침묵하면 결국 나도 박해를 당하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내 이웃을 지키지 못하면 내가 핍박 당할 때 나를 지켜줄 이웃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겠죠. 독재자의 횡포에 저항해야 하는 아주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나치가 그들을 덮쳤을 때

나치가 유대인을 잡아갈 때
나는 유대인이 아니어서 모른 체했고
나치가 가톨릭을 박해할 때
나는 가톨릭 신자가 아니어서 모른 체했고
나치가 공산주의자를 가둘 때
나는 당원이 아니어서 모른 체했고
나치가 노동조합원을 잡아갈 때
나는 조합원이 아니어서 모른 체했지
그들이 막상 내 집 문 앞에 들이닥쳤을 때
나를 위해 말해주는 사람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

마틴 니묄러

“갈색 아침”에 나오는 주인공과 친구는 경마를 좋아합니다. 갈색 법이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두 친구는 경마장에 가서 갈색 말에 돈을 겁니다. 그리고 그들이 돈을 걸었던 갈색 말이 우승을 합니다. 기분이 좋아진 두 친구는 갈색이 행운을 가져다 주는 색이라는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독재자가 모든 것을 통제하는 사회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세뇌되는지를 보여주는 아주 섬뜩한 장면입니다.

바로 이 점이 그림책 “갈색 아침”이 가진 힘입니다. 독재나 독재자라는 말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부당한 것을 강요하고 그것에 반응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 그리고 그에 따른 결말들을 보며 우리 아이들은 깨닫게 될 겁니다. 내가 원하지 않는 삶을 강요 당할 때, 부당함에 맞닥뜨렸을 때 어떻게 해야 내 삶을 지킬 수 있는지를 말입니다.


갈색 아침
책표지 : 휴먼어린이
갈색 아침 (원제 : Matin Brun)

프랑크 파블로프 | 그림 레오니트 시멜코프 | 옮김 해바라기프로젝트 | 휴먼어린이

“갈색 아침”은 국가 권력이 개인의 삶을 침해하고 탄압하는 과정과 거기에 침묵으로 대응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한 눈에 보여주는 그림책입니다.

1998년에 처음 발표된 “갈색 아침”2002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 실제로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합니다. 당시 극우파 후보가 결선 투표에까지 진출하는 이변이 벌어지자 한 라디오 프로그램의 진행자가 청취자들에게 이 그림책 “갈색 아침”을 소개했고, 이 책에 담긴 메시지가 일파만파 퍼지면서 상승세에 있던 극우파 후보에게 치명타를 입혔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