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원주민 마을에 간 이유는?

양복을 잘 차려 입은 백인 신사들이 빈민가 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풀기라도 하려는 걸까요? 백인들 좌우로 헐벗은 원주민들의 모습은 처량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백인들의 표정은 결코 선행을 하러 온 사람들의 것이 아닙니다. 그러고보니 원주민들은 뭔가에라도 홀린 듯 넋이 나가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쭈그리고 앉아 있는 아이의 표정은 잔뜩 화가 나 있습니다.

과연 이들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우리가 원주민 마을에 간 이유는?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 원주민들은 숲 속에서 자유롭게 살던 사람들입니다. 숲은 그들에게 아늑한 보금자리와 먹을 것을 제공하는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숲을 지키며 숲과 더불어 살아가며 늘 부족함 없이 행복한 삶을 살아가던 이들이었습니다.

그렇게 행복하게 살아가는 그들에게 낯선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사람들을 잘 살게 하기 위해서, 돈을 많이 벌 게 해 주려고, 좀 더 활기차게 살아갈 방도를 찾아 주기 위해서 왔다는 그들은 정작 원주민들이 그것을 원하는지 원하지 않는지에 대해서는 궁금해 하지 않습니다. 돈이 필요 없을 뿐더러 돈이 뭔지도 모른 채 숲 속에서 자유롭고 활기차게 이미 잘 살고 있는 원주민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자기들 멋대로 숲을 개발합니다. 마구잡이로 나무를 베어내고 자기들 맘대로 건물들을 짓기 시작합니다.

삶의 터전을 잃은 원주민들은 어느새 낯선 백인들의 일꾼으로 전락해 있습니다. 하지만 백인들은 원주민들에게 기술을 가르쳐 준 거라고 합니다. 나무가 그리워 숲으로 가려는 원주민들이 숲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철조망까지 쳐 놓습니다. 하지만 백인들은 자연환경이 망가지는 걸 막기 위해 그러는 거라고 합니다.

이제 숲은 없어지고 백인들 멋대로 개발한 도시만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껏 숲에서 살아온 원주민들에게 도시의 삶의 방식은 낯설기만 합니다. 배고프면 나무에 올라가 싱싱한 열매를 따먹고 숲에 들어가 사냥을 하며 지내던 원주민들에게 돈이 있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도시의 생활은 힘들기만 합니다. 백인들은 그런 원주민들을 스스로 살아갈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라며 그들을 위해 사회 복지 혜택을 제공하겠다고 합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어줍잖은 복지가 아니라 나무와 숲이라는 사실은 뒤로 감춘 채 말입니다.

이 책은 전 세계 소수 민족을 지키는 상징과도 같은 책입니다.

지금 세계의 몇몇 기업이나 정부가 소수 민족과 원주민을 상대로 벌이는 개발은 19세기에 유럽 여러 나라들이 세계 곳곳에서 벌였던 식민지 쟁탈전에 그 뿌리가 닿아 있습니다. 오늘날 그저 ‘개발’이라는 듣기 좋은 말로 포장된 것일 뿐, 실제로는 여전히 소수 민족의 땅과 자원을 몇몇 기업이나 정부가 빼앗아 가는 데 지나지 않습니다.

소수 민족은 미개인이 아닙니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독립적이고 활기찬 사회를 이루고 있으며, 변화하는 세계에 우리처럼 끊임없이 적응해 가고 있습니다. 그들과 우리 사이에 가장 큰 차이가 있다면, 그들과 달리 우리에게는 남의 땅과 자원을 차지하려는 욕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개발을 핑계 삼아 소수 민족의 땅과 자원을 차지하고서는 순전히 그들을 위해 한 일이라고 거짓말까지 합니다. 심지어 소수 민족을 차별하는 말도 서슴없이 합니다. 이런 태도는 개발이 아니라 ‘점령’입니다.

Stephen Corry, Director of Survival International

이 그림책이 어느 나라의 내용인지 궁금하신가요? 100여년 전 우리 역시 저 원주민들과 똑같은 입장이었고 피해자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아프리카, 중남미, 동남아시아 등 저개발지역 뿐만 아니라 심지어 캐나다 같은 곳에서조차 개발자들의 손길이 뻗치고 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도 어쩌면 그들을 만난 경험이 있을지 모릅니다. 동남아시아에는 소수 민족의 삶을 관광 상품화해서 그들의 삶을 여행객들에게 전시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여러분들이 여행 중 목격한 모습이 그들이 희망했던 삶이 결코 아니었음을 잊지 말아 주세요. 조상 대대로 이어져 온 그들 고유의 삶의 방식으로는 더 이상 살아가기가 힘들어서 숲 속에서의 삶을 버리고 관광객들에게 자신들의 삶을 전시하고 기념품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게 된 것이 아닙니다. 탐욕적인 개발자들에게 삶의 터전을 빼앗긴 채 그렇게 살아가게끔 강요받고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들 앞에서 민속 공연을 펼치는 그 순간에도 그들은 숲을 그리워하고 있음을 기억해 주세요.


우리가 원주민 마을에 간 이유는?

우리가 원주민 마을에 간 이유는?
(원제 : There You Go!)

글/그림 오렌 긴즈버그 | 옮김 임영신 | 초록개구리

작가 오렌 긴즈버그는 벌목으로 삶의 터전을 잃어 가는 베트남 북부 지역 소수 민족을 위해 일했었고, 지금은 스위스에서 ‘에이즈, 결핵, 말라리아와 싸우는 세계 기금’에서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책을 발간한 서바이벌 인터내셔널은 유네스코와 함께 문화 다양성 보호 활동을 펴는 국제기구입니다.

“우리가 원주민 마을에 간 이유는?”은 유머와 위트가 담긴 글과 그림으로 간결하면서도 명쾌하게, 그리고 아주 신랄하게 소수 민족의 문제를 다룬 그림책입니다. 철 없는 아이들도 이 그림책을 통해 양복 입은 백인들이 원주민들을 숲에서 내쫓았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숲의 주인이 누구인지도 말이죠.

이 인호

에디터, 가온빛 레터, 가온빛 레터 플러스 담당 | ino@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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