씩씩해요

아주 무서운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아빠가 무사히 나오기를 간절히 바라며 엄마와 나는 수술실 앞에서 기다렸습니다. 아주 긴 시간을……

그날 이후 내 삶은 갑자기 너무 많이 변해버렸습니다. 늘 함께 있어주던 엄마는 나와 함께 아침 먹을 시간도 없이 일터로 가야만 했습니다. 혼자 먹는 식탁이 너무나 크게 느껴집니다. 혼자하는 목욕은 힘듭니다. 전엔 아빠가 늘 등을 닦아 주었는데…… 아빠 없이 타는 그네는 흥이 나지 않습니다. 엄마는 깜깜해져야 돌아옵니다. 졸립지만 잠들어버리면 내일 아침까지 엄마 얼굴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곰돌이 인형과 이야기하며 졸린 걸 가까스로 참습니다.

알록달록한 풍선으로 가득한 꿈을 꾸었습니다. 풍선에는 아빠도 엄마도 나도 있습니다. 정말 멋졌습니다.

아이가 감당하기엔 벅찬 일을 겪은 한 아이. 하지만 아이는 자신의 아픔을 담담하게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픕니다. 아빠의 사고 이전과 이후의 삶은 너무 다릅니다. 늘 엄마 아빠의 보살핌 속에서 지내던 아이가 이제는 스스로 모든 걸 해야만 합니다. 게다가 늘 혼자입니다. 엄마가 아직 돌아오지 않은 깜깜한 집에서 인형과 이야기하며 졸음을 꾹 참고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의 모습은 마음을 짠하게 합니다.

겉으로 보기엔 잘 견뎌내는 것만 같아 보이던 아이. 하지만 아이의 조그만 가슴 속에 담긴 마음은 까맣게 타들어가는 듯 했을 겁니다. 아빠를 잃은 슬픔과 그리움, 엄마가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불안함, 그리고 혼자서 하기엔 아직 뭘 해도 서툴기만 해서 자꾸만 엄마 아빠 생각이 나는 아이.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에서 잠들었던 아이는 이부자리에 오줌을 싸고 말았습니다.

이런 아이가 안쓰러운 엄마는 쉬는 날 아이와 함께 산에 오릅니다.

엄마가 쉬는 날 함께 산에 갔어요.
단둘이서는 처음이에요.
엄마가 웃으며 말했어요.
“이제부터 우리 둘이 씩씩하게 사는 거야, 알았지?”

이런 말 역시 아이에게 얼마나 버거울까 싶지만 그래도 씩씩해져야만 하기에 엄마는 아이에게 당부합니다. 엄마와 아이가 다정하게 앉아 바라보는 풍경은 지난 밤 아빠를 만났던 꿈 속의 풍선들과 쏙 닮았습니다. 파랑과 초록, 노랑과 보라, 그리고 빨강…… 형형색색의 산봉우리들은 우리 삶의 질곡과 희로애락을 아이에게 보여주는 듯 합니다. 아이가 얼만큼 이해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큰 시련을 겪은 아이는 어렴풋이나마 그 의미를 알고 있을 겁니다.

사진 속 아빠가 나를 보며 웃어요.
나도 아빠를 보며 웃어요.
나는 씩씩해요.

엄마와 함께 산에 다녀온 이후 아이는 조금 더 씩씩해졌습니다. 사진 속 아빠가 자신을 보며 웃어준다고 생각할만큼, 그래서 자신도 아빠에게 씩씩한 웃음을 되돌려줄만큼 말입니다.

씩씩해진다고 해서 아빠와 함께 했던 날들과 똑같은 행복을 되찾을 수 있는 건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아빠가 없다고 해서 슬픔으로만 가득찬 삶을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씩씩해져야만 새로운 행복을 다시 써 나갈 수 있습니다. 아빠 사진을 바라보며 “나는 씩씩해요.” 하고 말하는 아이의 혼잣말은 엄마와 새로 쓰기 시작한 삶이 행복하길 바라는 아이의 마음, ‘아빠, 지켜 보세요. 우리 잘 살게요.’ 하는 아이의 마음이 담긴 다짐입니다.


씩씩해요
책표지 : Daum 책
씩씩해요

글/그림 전미화 | 사계절

전미화 작가는 배경색의 변화로 아이의 감정선을 보여주려고 한 듯 합니다. 아빠가 교통사고를 당하는 순간에서부터 아이의 씩씩한 웃음으로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이어지는 열여섯 장의 그림들은 모두 배경색이 다릅니다. 아빠의 교통사고는 빨강, 혼자 그네 타는 놀이터는 잿빛, 설거지를 할 줄 알게 된 날은 초록…… 아이가 “나는 씩씩해요.”라고 말하는 순간은 노랑입니다. 전미화 작가에게 씩씩함은 노랑색인가 봅니다.

“씩씩해요”는 가족을 잃은 슬픔을 간접적으로 느껴 볼 수 있는 그림책입니다. 그림책 속 아이가 자신에게 닥친 삶의 무게를 제 나름의 방식으로 견뎌내고 성장해가는 것처럼 이 그림책을 보는 우리 아이들도 저마다의 생각과 느낌으로 슬픔의 무게와 그것을 딛고 일어서는 용기와 희망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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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호

이 인호

열여덟 살 딸내미와 폭풍 수다에 체력 고갈되어가는 아내를 18년째 묵묵히 지켜보고 있는 남편. 한때 아내가 쓴 딸아이 육아일기에 '396개월 남아'로 등장했었던 그 남아. 그림책 좋아하는 542개월 남아로 폭풍 성장 중 ^^ | 2015년 7월 | ino@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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