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영이

어느 날 누군가 찾아왔다.
엄마라고 했다.
나도 모르게 설거지하던 손을 뒤로 감췄다.

화장실에 간다고 해놓고는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던 엄마. 그래서 결국 남의 집에 맡겨져야 했던 미영이. 감기에 걸려 누워 있어도 누구 하나 와서 따뜻하게 이마에 손 짚어 주지 않는 나날들. 미영이는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 쓴 채 속으로 말합니다.

“엄마 따윈 보고 싶지 않아!”

미영이가 이 집에 처음 올 때 입고 있었던 옷들이 작아져서 더 이상 입을 수 없을만큼의 시간이 흐른 어느 날 누군가 미영이를 찾아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자기만 남겨둔 채 떠나버린 엄마, 그렇게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엄마, 그래서 엄마 따위 보고 싶지 않다고 자기 자신에게 억지를 부릴 수 밖에 없을만큼 그립고 또 그리웠던 엄마……

그 엄마가 바로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앞에 와 서 있습니다. 자기 자신도 모르게 손을 뒤로 감추는 미영이의 모습에 나까지 마음이 울컥해집니다. 뒤로 감춘 손은 자기만 남겨 두고 가버린 엄마에 대한 원망입니다. 그렇게 기다렸건만 이제서야 나타난 엄마에 대한 질책입니다. 그리고, 설거지 하느라 물에 퉁퉁 부은 손을 보여 주고 싶지 않은 아이의 마음입니다. 자신의 꺼칠해진 손을 보면 마음 아파할지도 모를 엄마에 대한 배려입니다. 엄마 없이도 난 잘 지냈어라고 말하고 싶은 아이의 작은 자존심입니다.

미영이

엄마 손은 차갑고 단단했다.
엄마한테 설거지 냄새가 났다.

엄마는 눈물을 꾹 삼키며 다가와서 뒤로 감춘 아이의 손을 끌어다 잡습니다. 엄마 손이 차갑고 거칠게 느껴집니다. 예전에도 그랬었나 미영이는 기억을 더듬어봅니다. 그 때 문득 엄마한테 설거지 냄새가 난다는 걸 깨닫습니다.

“엄마, 어디 갔다 왔어?”

목구멍에 뭔가 걸렸다.
버스를 기다리며 엄마는 울었다.

아직 어린 아이지만 남의 집에 얹혀 살며 눈치가 빤해진 미영이는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엄마는 자기를 버린 게 아니었습니다. 엄마는 자신과 헤어지려고 한 게 아니라 함께 살기 위해서 잠시 떠났던 겁니다. 그동안 엄마가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을지 엄마에게서 나는 설거지 냄새로 미영이는 알 수 있습니다. “엄마, 어디 갔다 왔어?” 목구멍에 뭐가 걸린 것 같아 가까스로 내뱉은 이 한 마디에 미영이와 엄마가 주고 받을 수많은 대화가 모두 담겨 있습니다. 엄마, 왜 이제 왔어? 엄마도 나 보고 싶었어? 엄마,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어? 엄마, 이제 우리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

엄마 손을 꼭 잡고 버스 정거장으로 가는 미영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강아지. 얹혀 살던 집에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아 미영이가 돌봐주던 강아지입니다. 엄마가 떠난 후 혼자 남은 자신의 모습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걸까요? 미영이는 돌아와서 강아지도 함께 데려갑니다. 버스 정거장에 나란히 앉아 있는 엄마와 미영이, 그리고 강아지 한 마리.

새로운 가족의 탄생입니다. 다시는 헤어지지 않을 아주 단단한 미영이네 가족입니다.


미영이

미영이

글/그림 전미화 | 문학과지성사

2015 가온빛 BEST 101 선정작

아빠를 잃은 슬픔을 씩씩하게 딛고 일어서는 아이의 이야기를 알록달록한 색깔로 그려낸 “씩씩해요”를 선보였던 전미화 작가가 이번엔 흑백의 농담만으로 한 아이의 상실감을 그려낸 “미영이”로 돌아왔습니다.

“미영이”는 간결한 선과 흑백의 농담만으로 그려낸 그림, 그리고 페이지를 가득 채운 여백으로 엄마를 잃은 상실감뿐만 아니라 엄마와의 재회의 순간이나 엄마와 함께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의 희망 등 미영이의 감정의 변화를 잘 살려낸 그림책입니다.

이 인호

에디터, 가온빛 레터, 가온빛 레터 플러스 담당 | ino@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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