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서니 브라운의 고릴라

한나와 고릴라는 살금살금 아래층으로 내려갔어. 한나는 자기 코트를 찾아 입었고, 고릴라는 아빠 코트를 입었지.

“꼭 맞는데?”

고릴라가 속삭였어.

고릴라를 좋아해서 한나는 고릴라 책이며 비디오를 보고, 고릴라 그림도 그리지만 진짜 고릴라를 본 적은 없습니다. 아빠가 너무 바빠 동물원에 가서 고릴라를 볼 시간이 없거든요. 아빠는 한나가 학교 가기 전에 출근하고, 퇴근하고도 일만 합니다. 잠시 한나와 이야기 할 시간도 없을 정도로 바쁘죠.

한나가 아빠에게 말을 걸면 아빠는 늘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중에, 지금 아빠는 바빠. 내일 얘기하자.”

하지만 내일도 아빠는 여전히 바쁘기만 합니다. 주말이 되면 아빠는 너무 지쳐 버려 한나와 아무 것도 함께 할 수가 없어요.

한나 생일에 한나는 아빠에게 고릴라를 한 마리 가지고 싶다고 얘기하고 설레여 합니다. 한밤 중에 깨어 보니 고릴라가 한나 곁에 있었어요. 하지만 그것은 한나가 말한 고릴라가 아닌 그냥 고릴라 인형이었습니다. 한나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이 슬퍼 보입니다. 한나는 고릴라 인형을 방 한구석에 치워두고 다시 잠이 들었는데요. 그 날 밤 굉장한 일이 일어납니다.

고릴라 인형이 커지고 커지고 또 커지더니 한나를 깨웠거든요. 고릴라는 따뜻하게 웃으며 한나에게 동물원에 가자고 합니다. 둘은 살금살금 아래층으로 내려가 한나는 자기 코트를 입었고, 고릴라는 아빠 코트를 입었어요. 둘은 나무를 타면서 동물원으로 가서 고릴라도 보고, 오랑우탕도 보고, 침팬지도 봅니다. 영화도 함께 보고 맛난 것도 먹었어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잔디밭에서 한나와 고릴라와 춤도 춥니다. 한나는 너무너무 행복했어요. 고릴라와 함께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일들을 모두 해보았으니 말이예요.

한나에게 내일 또 보자며 작별 인사를 한 고릴라… 아침에 한나가 눈을 떠보니 고릴라 인형이 옆에 놓여져 있었습니다.

고릴라와의 즐거웠던 추억은 모두 한 밤의 꿈이었을까요?

아빠에게 어젯밤 이야기를 하려고 아래층으로 후닥닥 뛰어내려가니 아빠가 한나의 얼굴을 들여다 보며 이렇게 말씀 하시네요.

“생일 축하한다, 우리 귀염둥이. 동물원에 가고 싶었지?”

아빠는 아빠 코트를 입고 한나의 손을 꼭 잡고 함께 걸어가고 있습니다. 한나의 손에는 고릴라 인형이 들려있어요.


고릴라
책표지 : 비룡소
고릴라 (원제 : Gorilla)

글/그림 앤서니 브라운 | 옮긴이 장은수 | 비룡소

※ 1983년 케이트 그린어웨이상 수상작
※ 1986년 보스턴 글로브 혼북 명예상 수상작

서로에게 따뜻한 눈 길, 말 한마디 조차 건네기 힘든 숨막히는 아빠의 바쁜 일상 속에 늘 소외되어있는 한나의 모습이 안쓰럽습니다. 나중에, 나중에를 외치며 바쁜 아빠, 홀로 어두컴컴한 거실에서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는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혹여나 내 아이의 모습은 아닌지, 바쁘다는 이유로 피곤하다는 이유로 나도 모르게 아이를 이렇게 밀어낸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현실 세계에서의 아빠에게 밀려난 한나는 환상 세계를 통해 고릴라를 만나 아빠와 함께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합니다. 고릴라는 한나의 소원이었던 동물원에 함께 가주는 일 뿐만 아니라 영화도 함께 봐주고, 식당에 가서 한나가 좋아하는 것들도 실컷 먹게 해줍니다. 게다가 고릴라 발등에 한나의 발을 얹고 추는 발등 블루스까지…이뿐이 아닙니다.  내일 또 보자는 약속까지 해주는 친절한 고릴라.

환상 세계에서는 외로운 한나를 다양한 방법으로 위로해주며 진짜 한나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아침에 한나가 눈 뜨는 순간 “이건 꿈이었어!”하고 울부짖지 않고 살포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환상 세계에서 겪었던 일로 위로 받아 만족스러운 상태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죠.

행복은 ‘내일, 나중에,  지금은 안 돼!’ 가 아닌 “바로 지금, 이순간!”이 아닐까요? 아차! 하는 사이 아빠와 고릴라 보러 가자 조르던 아이가 자라서 더 이상 아빠가 필요 없어지는 그 날이 성큼 다가올지도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