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집이 너무 좁아!

포근하고 아늑한 방이 하나 있습니다. 보랏빛 침구에 꽃까지 심어둔 세심한 배려! 무엇보다 매트에 쓰인 ‘환영합니다!’라는 문구가 인상적이네요. 이 방은 누구를 위한 방일까요?

어느 날 꿀벌들은 자신들이 사는 곳이 비좁아 졌다고 생각했어요. 역할을 나누고 협동 하는 것으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만큼 협동심 강한 꿀벌들은 이 문제에 대해 회의를 시작했고 회의 끝에 벌집이 작아진 문제를 조사할 대표 셋을 뽑았답니다. 밤낮으로 벌집을 조사한 결과 조사관 꿀벌들은 벌집에 꿀벌 한 마리가 더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어요.

이 말을 들은 꿀벌들은 자신들의 공간을 빼앗고 있는 정체불명의 벌 한 마리 때문에 엄청나게 화가 났어요.

그 벌이 병을 옮기는 것은 아닐지, 꿀 공장에서 일자리를 빼앗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 벌들은 침입자 벌을 찾아내기 위해 여러가지 방안을 생각해보았어요. 수학자 벌은 벌들에게 각각 번호를 매기자고 제안 했지만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구요. 탐정 벌은 모든 벌들에게 거짓말 탐지기를 사용해 보자고 했지만 지원자가 없었어요. 언어 학자 벌은 윙윙 소리를 듣고 다른 소리를 내는 벌을 찾아내자고 했지만 벌들은 모두 저마다 독특한 소리를 냈기에 실패했죠.

불안감에 휩싸여 소란스러워지자 벌집은 말그대로 벌집을 쑤셔 놓은 것 같은 상황이 되었답니다.

그 때 여왕벌이 나섰어요. 여왕벌은 자신들은 모두 더듬이를 가지고 있고, 모두 배에 노란색과 검은색 줄무늬를 가지고 있고, 모두 벌침을 가지고 있고, 모두 다 함께 힘을 모아 꿀을 만드는 존재라는 사실을 벌들에게 일깨워 주었습니다. 여왕벌은 꿀벌들에게 마지막으로 이런 제안을 했어요.

“그렇다면 사랑하는 벌 국민 여러분!
어쩌면 우리 벌집에 침입자가 하나 있는 게 아니라,
방이 하나 모자란 것은 아닐까요?
침입자를 찾는 대신, 그 시간에 모두 힘을 모아
우리 벌집에 방 하나를 더 만들면 어떨까요?”

국민 모두가 이런 저런 흉흉한 소문으로 불안감에 휩싸여 있을 때 그 불안감을 확실히 잠재우고 모두의 마음에 안정을 되찾아줄 수 있는 탁월한 리더십! 지혜로움과 넉넉한 마음까지 갖춘 벌들의 여왕님이 참 부럽습니다. 물론 이렇게 멋진 지도자를 가진 꿀벌들 역시 그럴만한 자격을 갖추었기 때문이겠죠. ‘모든 국민은 자신들의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가진다’라는 말도 있잖아요.

그렇게 모두 힘을 합쳐 방 하나를 더 만드는 것으로 꿀벌들의 소동은 막을 내렸어요. 미지의 꿀벌 한 마리를 위한 예쁜 방 만들기 프로젝트로 이렇게 포근한 방 하나가 완성이 된 것이죠.


벌집이 너무 좁아!

벌집이 너무 좁아!

(원제 : La Abeja De Mas)
안드레스 피 안드레우 | 그림 킴 아마테 | 옮김 유아가다 | 고래이야기

쿠바 출신의 작가 안드레스 피 안드레우의 글에 스페인 화가 킴 아마테의 일러스트가 합쳐져 탄생한 그림책 “벌집이 너무 좁아!”는 우리 사회를 축소해 놓은 듯한 느낌입니다.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이 많은 그림책이기도 하구요. 침입자가 누구인지 알지도 못하는 상황, 아니, 실제로 칩입자가 있긴 한 건지 조차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무조건 새로운 누군가가 한 명 더 있다는 사실에 쉽게 흥분하고 불안해 하는 모습은 바로 우리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다소 우습기도 하고 또 뜨끔하기도 하네요. 또한 온전한 인격과 지도력을 갖춘 지도자란 어떤 모습인지도 이 그림책을 통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좀 더 나은 사회, 살기 좋은 세상은 우리의 성숙한 시민 의식과 더불어 도덕성을 갖춘 의식있는 정치인들이 제대로 목소리를 낼 수 있을 때 이루어지는 것 아닐까요.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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