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그곳에

추적추적 온종일 비가 내려서, 갑자기 첫눈이 내려서, 휘영청 뜬 달이 너무 밝아서, 몸이 너무 아파서…… 이유는 다양하지만  어린시절 늘상 먹어왔던 음식 냄새가 유독 그리운 날이 있습니다. 따끈하게 부쳐낸 엄마의 배추전 냄새가 그립거나, 할머니가 공들여 띄운 비지찌개 냄새가 그립거나…… 그럴 땐 아무 연락 없이 뿅~ 엄마를 찾아가면 신기하게도 내가 먹고싶어했던 음식을 마술처럼 엄마가 그날 저녁으로 준비하고 계셨던 적도 있네요. 아~ 어쩐지 오늘 집에 무지무지 오고 싶더라니…^^ 사실 음식만 그립다면 돈 주고 사먹어도 그만일거예요. 그 음식과 함께 익숙한 손길과 눈빛, 편안한 장소가 우리에게 주는 마음의 위로는 값으로는 계산할 수 없는 그 무엇 이상인 셈이지요.

한 아가씨가 노란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떠납니다. 복잡한 도심을 벗어나 버스를 타고 그녀가 찾아간 곳은 한적한 시골 마을. 자그마한 시골집 앞에 우뚝 선 그녀를 작은 할머니 한 분이 웃는 얼굴로 맞아주셨어요. 작은 할머니는 아가씨를 위해 맛난 식사를 준비하셨어요.

음식 냄새가 온몸에 퍼지는 순간, 아가씨는 예전의 어린 소녀로 되돌아갑니다. 할머니가 해주신 스프를 먹기 위해 식탁 앞에 스푼을 들고 앉은 작은 소녀, 그 모습을 몹시 귀여운 듯 흐뭇한 표정으로 할머니가 바라보십니다.

그 모습이 너무나 따뜻해 그림 한 장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온몸에 온기가 전해집니다. 엄마의 음식이, 이제는 맛 볼 수 없는 할머니의 음식이 그리워집니다.


다시 그곳에

다시 그곳에

(원제 : O Regresso)
글/그림 나탈리아 체르니셰바 | 재능교육
(2015/09/21)

이 그림책의 작가 나탈리아 체르니셰바는 신예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그녀는 이 작품으로  2014년 KROK 국제 애니메이션 영화제 에서 수상을 했어요. 이 그림책은 영화제에서 수상한 단편 애니메이션을 다시 구성해 책으로 발행한 것이라고 합니다.

“다시 그곳에”는 최소한의 채색에 단순한 선과 여백을 살린 그림만으로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어요. 한 장 한 장 넘기며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기쁜 날이건 힘든 날이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빙그레 미소가 떠올려지는 그런 사람과 가슴 한 곳 묵직하게 남아있는 향수 어린 장소가 떠오르는 그림책입니다.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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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규
최대규
2020/04/14 10:47

참 멋진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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