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가 작아졌어

무라카미 하루키는 지난 봄 ‘도쿄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었습니다.

역사 인식의 문제는 매우 중요한 것으로 제대로 사과를 하는 게 중요하다. 상대가 ‘개운해진 것은 아니지만, 그 정도 사과했으면 알겠습니다. 이제 됐습니다’고 말할 때까지 사과할 수밖에 없다. 사과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구체적인 사실이 어떻든 타국을 침략했다는 큰 틀은 사실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 “일본, 주변국에 제대로 사과해야”(한겨레, 2015/04/17)

사과가 어려운 것은 자신의 잘못과 실수를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겠죠. 일본 정부의 뻔뻔한 입장과 달리 이렇게 생각하는 일본인들도 있다는 사실은 기쁜 일일까요? 아니면 그들에게 사과의 의지가 없음을 보여주는 반증이기에 우리 가슴을 답답하게 하는 일일까요?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자다 갑자기 몸이 작아진 사자가 개울에 빠져 허우적 대고 있는데 지나가던 가젤이 사자를 구해주었어요. 그런데 알고보니 가젤이 구해준 사자는 바로 어제 가젤의 엄마를 잡아먹은 사자! 불구대천의 원수를 살려주다니…… 화가난 가젤이 사자를 다시 물에 빠뜨려버리겠다고 엄포를 놓자 사자는 싹싹 빌며 가젤의 마음을 풀어주려 애써 보지만 가젤의 마음을 달랠길이 없었어요. 가슴이 꾹 막혀서 숨 쉬기 조차 힘들어하는 가젤을 보고 사자는 그럼 자기를 먹으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당한 만큼 똑같이 복수하면 마음이 편해질 수 있을까요? 한참동안 생각에 잠겼던 가젤은 이렇게 말했어요.

“아니야, 이제 됐어. 아무것도 필요 없어.
더구나 나는 풀만 먹는데 너를 어떻게 먹어?
나도 엄마가 다시는 못 돌아온다는 걸 알아.
그래서 슬픈 거야.
나는 죽을 때까지 엄마를 잊을 수 없으니까.”

가젤이 한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본 사자는 가젤의 눈물을 닦아주고는 꼭 안아주면서 이렇게 말했어요.

“널 슬프게 해서 미안해.”

그 순간 사자의 몸이 예전처럼 점점 커지더니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어요. 사자는 느릿느릿 집으로 돌아갔고, 가젤은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어요. 하지만 가젤에게 구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못한 것이 생각난 사자는 가젤을 향해 뛰어가고, 가젤은 질겁을 하고 달아났다네요. 흠… 지금도 아프리카 들판에서는 사자가 가젤을 뒤쫓는 모습을 볼수 있다지요.^^

사자의 몸이 줄어들지 않았다면 사자는 가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요? 역지사지의 상황을 통해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고 어루만지게 된 사자의 이야기는 진정한 의미의 사과란 어떤 것인지 생각하게 합니다. 사과는 단순히 ‘미안하다’는 말을 전달하는 것이 아님을 누구나 잘 알고 있어요. 그 상황만을 모면하기 위해 혀끝으로 가볍게 던지는 미안하다는 말은 오히려 상대방을 더 화나게 하고 더 큰 상처를 줄 수도 있지요. 진정한 사과는 상대방의 화를 풀어주면서 자신의 마음도 가라앉힐 수 있어야 합니다. 눈빛과 몸짓과 마음이 모두 담겨있어야 하는 사과에는 진심을 담은 용기까지 필요로합니다.


사자가 작아졌어
책표지 : 비룡소
사자가 작아졌어

글/그림 정성훈 | 비룡소

가온빛 추천 그림책

※ 이 그림책은 2008년 한솔수북에서 초판을 출간하였고, 2015년 비룡소에서 새로 출간하였습니다. 본 글은 2008년 출간된 그림책을 보고 작성하였습니다.

단청 무늬를 연상 시키는 사슴 뿔 그림, 콜라쥬 기법, 원색의 정글, 다채로운 기법과 화려한 색상으로 그려낸 정성훈 작가의 그림은 용서와 화해의 색깔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엄마를 잡아 먹은 사자를 구해준 가젤의 아름다운 용서와 상대의 슬픔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아픈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지며 진심어린 사과를 한 사자의 이야기를 담은 “사자가 작아졌어”는 마음을 담은 진심어린 사과와 용서의 과정을 보여주면서도 재미까지 놓치지 않은 그림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