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와 거북이

동화책이 귀했던 시절, 책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언제나 할머니와 아버지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옛날 옛날에~’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듣고 들어서 뻔한 결말인데도 언제나 손에 땀을 쥐게 했죠. 때론 할머니 품 안에서, 때론 아버지 팔베개를 베고 듣던 옛날 이야기들. 어른이 된 지금도 여전히 그립네요. 아늑한 불빛, 나지막하면서도 구성진 목소리, 동생과 함께 이불을 턱 밑까지 끌어 당기고 나란히 누워서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이야기를 기다렸던 시간들……

어릴적 추억에 잠긴 채 고른 오늘의 그림 한 장은 제리 핑크니의 그림책 “토끼와 거북이”의 마지막 장면(뒤쪽 면지)입니다.

토끼가 경주 도중 양배추 밭에 들어가 양배추를 실컷 먹고 한숨 푹 자고 있는 동안에도 거북이는 엉금엉금 부지런히 꾸준하게 한결같이 제 갈길을 갔어요. 뒤늦게 토끼가 헐레벌떡 쫓아왔지만 거북이는 간발의 차로 결승선을 먼저 넘었어요. 숨죽여 이 장면을 지켜보던 동물들은 온 마음을 다해 거북이의 우승을 축하해줍니다. 그루터기에 올라가 오늘의 우승의 기쁨을 맘껏 즐기고 있는 거북이, 토끼 역시 자신의 스카프를 거북이에게 내어주며 승자를 향해 진심 어린 축하의 마음을 전합니다.

옛이야기를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과 멋진 그림으로 재해석한 그림책을 꾸준히 선보여 온 작가 제리 핑크니는 “토끼와 거북이”에서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를 치열하고 냉정한 대결의 구도가 아닌 특별하고 흥겨운 파티 분위기로 그려냈어요.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려가면서도 자신의 주변을 둘러볼 줄 아는 거북이, 경주가 끝난 뒤 자신의 패배를 깨끗하게 인정하고 거북이를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토끼, 이들의 경주를 열심히 응원하고 축하해 주는 동물 친구들. 경주가 끝난 뒤 승자와 패자 ,그리고 응원하던 친구들까지 모두 함께 어우러진 즐겁고 행복한 풍경을 그려낸 이 장면은 그래서 더욱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보는 이에게 편안함과 행복감을 안겨주는 제리 핑크니의 “토끼와 거북이”는 ‘끝날 때까지 끝난게 아니다’라는 교훈과 함께 ‘이기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라는 메세지를 전해주는 그림책입니다.


토끼와 거북이

토끼와 거북이

(원제 : The Tortoise And The Hare)
글/그림 제리 핑크니 | 옮김 김예환 | 열린책들
(2015/03/25)

2015 가온빛 BEST 101 선정작

참고로 제리 핑크니는 학창 시절 난독증으로 고생을 했다고 합니다. 난독증으로 인해 친구들보다 공부가 더딜 수 밖에 없었을 제리 핑크니에게 “토끼와 거북이”는 더욱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었을가 생각되네요.

미국 남서부를 배경으로 흙먼지 속에서도 열심히 달리는 두 친구와 그들을 응원하는 동물친구들의 모습을 개성 넘치는 수채화 그림 속에 담아낸 제리 핑크니, 그가 그린 그림책들은 글자가 거의 없지만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줍니다. 수채화로 그린 그의 그림도 좋지만 잘 알려진 이야기에 그림만으로 보여주는 그의 새로운 해석은 늘 독특하고 새롭습니다. 어린시절 제리 핑크니의 그림책들을 만났다면 내 인생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의 그림책을 만날 때마다 해보는 생각입니다.^^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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