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물하고 섞인 눈이
휘감는 차가운 바람 따라
추적추적 내리며 질척이는 진눈깨비

진눈깨비를 담아낸 싯귀와 예쁜 그림을 보고 있자니 ‘하~ 진눈깨비가 요렇게 예쁜 비였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안그래도 추운 겨울날 출근길에 만나기라도 하면 비도 아니고 눈도 아닌 것이 그렇게 밉살맞던 진눈깨비 녀석이 말입니다.

그림책 “비”는 우리말로 비가 내리는 풍경과 빗줄기 모양의 다양함을 그려냈습니다. 읽고 있자면 이렇게나 다양하고 고운 비가 우리의 삶을 촉촉히 적셔주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보일 듯 보이지 않게
겨우 먼지나 잠재우듯
땅바닥을 촉촉이 적시는 먼지잼비

안개비보다 조금 굵고
이슬비보다는 작고 가늘게
느릿느릿 떠다니듯 내리는 는개비

두꺼운 먹장구름이
절벽처럼 딱 멈추고 쏟아져
발 친 듯 앞이 안 보이게 쏟아지는 발비

물 한가득 담은
동이를 갑자기 들이붓듯
와장창 왕창 잠깐 쏟아지는 동이비

파란 하늘 맑은 날
갑자기 먹장구름 몰려와
와르륵 와락 흩뿌리고 가는 와락비

먼지잼비, 는개비, 발비, 동이비, 와락비… 이슬비 말고도 비의 고운 이름들이 참 많기도 하죠? 여름날 갑자기 쏟아진 비에 흠뻑 젖으면 ‘젠장맞을…’ 하고 심퉁이 나곤 했는데 앞으로는 씩씩한 ‘동이비’나 ‘와락비’를 만난 반가움에 신경질 날 일이 없을 것만 같습니다.

가뭄에 농작물이 죽어갈 때
꿀처럼 달게 먹을 수 있도록
수많은 생명 살리러 오시는 꿀비

곡식이 싹 트고 자라야 할
제때제때 맞춰서 내리시는
고맙고 고마운 달콤한 단비

작고 작은 구름 물방울
10만이나 100만이 모이고 모여야 빗방울 하나
그 귀한 빗방울이 헤아릴 수 없이 모여야
비가 되어 내린대요.

그림책 “비”는 비의 고운 이름들과 함께 빗방울이 머금고 있는 깊은 의미를 우리들 가슴에 아로새겨 줍니다. 수많은 생명 살리러 오는 꿀비, 고맙고 고마운 달콤한 단비, 작고 작은 구름 물방울 10만이나 100만이 모이고 모여 만들어진 귀한 빗방울에 담긴 힘찬 생명력과 자연의 위대함을 말입니다.


이주영 | 그림 박소정 | 고인돌

2015 가온빛 BEST 101 선정작

이주영 작가는 ‘우리말 그림책’ 시리즈를 통해 물, 흙, 불, 햇빛, 바람, 구름, 비 등 삶의 뿌리가 되는 순우리말로 자연의 아름다움과 생명의 존귀함을 담아내어 아이들에게 삶의 의미를 들려줄 예정이라고 해요. “비”는 우리말 그림책 시리즈의 첫 번째 책입니다.

그림책 “비”의 뒤표지에는 ‘우리말을 살리는 일이 아이들을 살리는 길’ 이란 이오덕 선생님의 말씀이 새겨져 있습니다.

어린이문학은 우리말로 빚어내는 예술입니다.
우리말을 살리는 일이 아이들을 살리는 길입니다.
배달말을 살리지 않고 배달겨레가 살아날 수 없습니다.
우리말을 살리고 우리글을 지키는 일은
우리 모두 목숨을 걸고 해야 할 독립운동입니다.

– 이오덕

그림책 “비”와 함께 계절과 날씨, 빗줄기의 굵기, 그리고 비를 대하는 우리의 마음 상태에 따라 그때그때 붙여진 비의 수많은 고운 이름들을 찾아 보세요.

이 인호

에디터, 가온빛 레터, 가온빛 레터 플러스 담당 | ino@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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