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소녀상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입을 꼭 다문 채 차디찬 의자에 앉아 있는 소녀가 있습니다.

거칠게 잘린 소녀의 머리카락은 거짓말에 속아 생가지 자르듯 싹둑 잘려 강제로 끌려간 걸 상징합니다. 해맑은 눈망울에 동글납작 귀여운 얼굴은 영락없이 열여섯 꽃다운 소녀의 모습이지만 그 눈빛엔 단호하고 굳은 의지가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소녀의 어깨에 앉은 작은 새는 아픈 세월에 몸부림치다 돌아가신 할머니들과 우리를 이어줍니다. 소녀의 꼭 움켜쥔 두 주먹은 자신들의 만행을 반성하고 사죄할 줄 모르는 뻔뻔한 일본 정부에 대한 분노입니다. 발뒤꿈치가 들린 맨발은 고향에 돌아와서도 자신의 상처를 감춘 채 방황할 수 밖에 없었던 처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소녀 옆의 빈 의자는 먼저 세상을 떠난 할머니들의 빈자리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소녀 옆에 앉아 슬픔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죠.

입술을 굳게 다물고 두 주먹을 꼭 움켜쥔 채 건너편 일본 대사관을 바라보고 있는 이 소녀의 이름은 ‘평화의 소녀상’입니다. ‘위안부 소녀상’, ‘강제 성 노예 소녀상’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 위 내용은 그림책 “평화의 소녀상”의 내용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영화 “귀향(鬼鄕, Spirit’s Homecoming)”을 보고 왔습니다. 보통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스크린에 올라오기 무섭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곤 했었는데 “귀향”은 그러질 못했습니다.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나비가 되어 돌아온 고향, 그토록 그립던 어머니의 품에 안기고서야 안도의 웃음을 짓던 소녀의 모습을 보며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귀향”은 아픈 세월을 온몸으로 겪어야 했던 할머니들을 가슴으로 꼬옥 안아드리는 영화입니다.

그리고 그림책 “평화의 소녀상”은 말합니다. 차가운 겨울밤 소녀의 모습이 초라해 보이지 않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녀 옆의 빈자리가 바로 우리 자리임을 잊지 않는 것이라고.


평화의 소녀상

평화의 소녀상

글/그림 윤문영 | 영문 옮김 이윤진 | 내인생의책

나태주 시인의 ‘풀꽃’을 그림책으로 만든 “풀꽃”의 윤문영 작가가 쓰고 그린 “평화의 소녀상”은 소녀상의 담담한 독백을 통해 일본군 성노예 문제와 이에 대한 일본의 그릇된 태도를, 그리고 나아가 ‘평화의 소녀상’에 담긴 평화에 대한 간절한 바램을 세계에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이 인호

에디터, 가온빛 레터, 가온빛 레터 플러스 담당 | ino@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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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산
봄산
2016/02/29 03:01

혹시 있지 않을까 했는데 그림책으로 나와있군요. 소개감사합니다. 귀향을 보고서 많이 울었어요. 제가 할 수 있는게 이것밖에 없나 싶어서 속이 상했거든요. 꼭 구해서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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