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

여우는 커다란 눈으로 조용히 우리를 응시합니다. 깊고 노란 눈동자가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지독히 침묵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여우의 눈동자 속에 알 수 없는 고요가 스며있습니다.

까치는 부리를 가만히 움직입니다. 작은 소리로 소곤대는 것 같기도 합니다. 덕지덕지 눌러 붙은 까치의 날개 때문인지 조금은 가여워 보입니다. 그래도 눈빛에는 희망이 담겨 있는 것 같군요. 미소를 띄고 있는 것 같기도 하구요.

철사나 포크와 같은 날카로운 재료로 긁어서 표현한 검고 거친 선 때문에 여우의 붉은 털이 더욱 도드라져 보이고 노란 눈동자는 깊고 강렬해 보입니다. 그림을 보고 있는데, 마치 그림을 만지고 있는 느낌이 드네요. 독특한 질감이 가슴까지 생생하게 전달됩니다.

인상적인 일러스트레이션만큼이나 특이한 텍스트의 구성 역시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글도 마치 그림의 일부인 것처럼 세로로, 혹은 가로로 불규칙적으로 배치한 구성은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불안감과 동요되는 감정을 한층 더 강하게 보여줍니다.

어느새 동굴 속은 여우의 냄새로 가득 차 버렸어.
분노와 질투와 외로움의 냄새였지.

까치는 개에게 말했어.
“여우는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애야. 누구도 사랑하지 않아. 조심해.”
개는 말했어.
“여우는 좋은 아이야. 그렇게 말하지 마.”

그날 밤, 개가 잠들자 여우가 까치에게 속삭였어.
“나는 개 보다 더 빨리 달릴 수 있어. 바람보다 더 빨리. 나랑 함께 가자.”
까치는 단호하게 말했어.
“나는 절대로 개를 떠나지 않을 거야.
나는 개의 눈이고, 개는 나의 날개야.”

우리는 살면서 평생 누군가를 만나고 그 안에서 관계를 형성하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누구나 한번쯤은 친구나 우정, 인간관계에서 대해 고민을 해 보았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누군가의 날개가, 혹은 눈이 되어 본 경험이 있나요? 우리는 무엇 때문에 질투를 느끼고 분노하는 걸까요? 우정은 여러분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이 책은 나이에 관계없이 누구나 자신만의 깊이와 무게로 인간의 욕망과 관계, 희망에 대해 사유해 볼 수 있도록 그린 작품입니다.


여우
책표지 : Daum 책
여우

(원제 : Fox)
마거릿 와일드 | 그림 론 브룩스 | 옮김 강도은 | 파랑새
(발행 : 2012/07/15)

마거릿 와일드의 “여우”는 눈이 보이지 않는 개, 화재로 날개를 다친 까치, 그리고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여우의 이야기입니다. 우정과 공생, 질투와 분노, 유혹과 배신, 희망과 그리움 등 우리 내면의 어두운 욕망을 이 세 명의 주인공을 통해 극명하게 표현한 시대의 걸작입니다.

2000년 처음 출판된 후 큰 화제를 모았고 여러 나라에 번역, 출판되어 10년 이상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국제아동도서협의회(IBBY) 최우수상, 독일 최고 어린이 문학상 등 수 십여 개의 상을 수상했고, 호주에서는 뮤지컬로도 제작된 바 있습니다.

마거릿 와일드는 인터뷰에서 늘 새로운 아이디어가 샘솟아 한 가지 이야기를 끝까지 마무리하는 것이 작가로서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했습니다. 과연 70권이 넘는 그림책과 소설을 쓴 작가답네요. 앞으로도 통찰력 있고 깊이 있는 그녀의 작품을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