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나비와 달님

찬바람이 살을 에는 초겨울 달 밤, 애벌레가 입으로 실을 늘여 탱자나무 가지에 제 몸을 꽁꽁 동여맵니다. 주변은 온통 뾰족뾰족한 가시 투성이, 오직 달님만이 애벌레 곁에서 따사로운 빛을 보내줍니다. 조금씩 조금씩 허물을 벗어 던진 애벌레는 고치 속에 들어가 꼼짝 않고 시간을 보냅니다. 이제 애벌레 혼자만의 시간입니다. 인고의 시간을 끝까지 버텨낸 애벌레만이 새로운 모습으로 깨어날 것입니다.

달님과 호랑나비의 인연은 탱자나무 울타리에서 시작되었어요. 자신이 낳은 알들이 무사히 나비가 되게 해달라며 달님께 기도한 엄마 호랑나비는 커다란 사마귀에게 잡아먹혔어요. 그날도 이렇게 휘영청 달님이 떠있던 날이었죠.

가시 투성이 탱자나무 울타리에서 알들이 깨어나 무럭무럭 자라나기 시작합니다. 달님은 나비들은 원래 엄마가 없다며 자신의 일에만 집중하려고 했지만 밤에도 낮에도 탱자나무 울타리에 자꾸만 눈길이 갔어요. 하지만 달님이 못 본 사이 호시탐탐 애벌레를 노린 새나 곤충들에게 애벌레들은 잡아먹혀 버렸고 결국 딱 한 마리만 남게되었어요. 하늘에서 그저 묵묵히 바라보며 응원을 하던 달님은 자신도 모르게 애벌레를 우리 아기라고 불렀습니다.

살아남은 단 한 마리의 애벌레는 이제 고치가 되어 겨울을 납니다. 두 눈 꼬옥 감고 애벌레가 무사하기를 기원하고 있는 달님의 그 애절한 마음을 고치 속 호랑나비 애벌레는 알고 있을까요? 엄마 호랑나비의 소원대로 애벌레는 이듬해 봄, 무사히 나비로 깨어날 수 있을까요?

제 몸이 찔리는 것도 모르고 조금이라도 안전한 곳에 알을 낳기 위해 가시덤불 탱자나무에 알을 낳은 엄마 호랑 나비의 모습이, 주어진 환경 속에서 온몸으로 삶을 버텨내며 성장하는 호랑나비 애벌레의 삶이, 먼발치에서 가슴을 졸이며 호랑나비의 알들이 자라는 것을 애달피 지켜보는 달님의 모습이 가슴을 찡하게 합니다. 이들의 모습이 각자 삶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서겠죠.

호랑나비야, 너무 걱정하지마.

달님이 엄마 호랑나비에게 건넸던 따뜻한 인사를 고치 속 호랑나비 애벌레에게도 전해주고싶습니다.


호랑나비와 달님

호랑나비와 달님

장영복 | 그림 이혜리 | 보림
(2015/07/25)

2015 가온빛 BEST 101 선정작

“호랑나비와 달님”은 가을 밤 태어난 호랑나비의 알이 나비로 성장해 가기까지의 과정을 달님의 시선에서 그려낸 아름다운 그림책입니다.

살아가는 존재들은 자신을 지켜보는 따뜻한 눈길에서 전해 오는 사랑을 느낄 수 있다고 나는 믿습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글을 쓴 장영복 작가의 말처럼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살아가는 생명들의 이야기는 이혜리 작가의 그림과 만나 더욱 애절하면서 따뜻하게 살아납니다. 애벌레의 삶의 터전인 탱자나무 울타리를 생생하면서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달님이 머무는 공간은 몽환적으로 그려낸 이혜리 작가는 이 그림책에서 화면 분할 방식을 이용해 애벌레를 지켜보는 달님의 복잡한 심경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애벌레의 성장을 지켜보는 달님의 온화한 표정은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에서 영감을 얻어 그렸다고 합니다. 가늘게 뜬 눈, 입가에 머무는 미묘한 미소가 신비롭기게 느껴지는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묵묵히 애벌레를 지켜보는 달님의 모습에서 엄마의 모습이 떠오르며 마음이 평온해졌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였나 봅니다.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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