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아이의 왕국

몸에 맞지 않는 커다란 코트를 입은 여자아이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서 있습니다. 코트는 너무 낡아서 끝단이 헤어지기까지 했네요. 소매가 자신의 팔보다 훨씬 긴 낡은 코트를 입고 고개를 떨군 채 서 있는 아이의 모습에서 침울한 마음이 전달됩니다. 아이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일렁이는 물결이 보입니다. 그 물결조차 검붉은 색으로 소용돌이치고 있네요.

아이의 뒤로 커다란 흰 꽃들이 만개해 있습니다. 오른쪽으로는 하얀 달도 떠 있네요. 달 주변이 파스텔톤 붉은 빛으로 물들어 있습니다. 달을 향해 핀 꽃줄기에 그네 하나가 매달려 있습니다. 방금 누군가 그네에서 내린 걸까요, 혹은 바람이 지나고 있는 걸까요. 그네가 흔들리고 있네요. 어쩌면 흔들리는 것은 아이의 마음일까요.

자신의 발보다 몇 인치나 더 큰 구두와 어울리지 않는 줄무늬 스타킹… 맞지않는 옷과 구두를 꺼내 입고 서 있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애잔한 마음이 듭니다. 아이는 어떤 이유로 이토록 혼란스러운 감정에 빠져 있는 걸까요?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가 쓰고 그린 “여자아이의 왕국”의 한 장면입니다.

하지만 여자아이는 그날이 즐겁지 않습니다.
무섭고 아프기만 했습니다.
온 세상이 한 색깔로만 보였습니다.

“여자아이의 왕국”은 여자 아이들의 초경을 다룬 그림책입니다.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는 초경이 시작된 날은 부끄러운 날이 아니라 아이에서 소녀로, 소녀에서 여자로 성장해 나가는 시작을 알리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자아이는 점점 더 길을 잘 알게 됩니다.
그리고 자랑스럽게 그 길을 갑니다.
여자아이는 자신이 왕국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인
여왕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요즘은 여자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성교육을 통해 어느 정도는 사전 정보를 갖고 있겠지만, 막상 초경을 경험하게 되면 아이는 충격과 혼란에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여자아이의 왕국”은 그런 아이들의 혼란을 잔잔하면서도 상징적인 의미가 담긴 그림들을 통해 위로합니다. 그리고 가르쳐줍니다. 그것이 자신의 왕국의 당당한 주인이 되는 과정임을.


여자아이의 왕국
책표지 : Daum 책
여자아이의 왕국

글/그림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 옮김 이지원 | 창비
(발행일 : 2011/08/30)

“여자아이의 왕국”은 오래된 레이스와 실크천, 크라프트지에 연필과 색연필로 그린 그림, 낡은 그림 속 옛 여성들의 모습과 명화 등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가 평소 즐겨 사용하는 기법을 조화롭게 활용하여 초경을 경험한 아이의 감정을 세밀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각 장마다 작가 특유의 예술성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사춘기 여자아이를 둔 부모님 이라면 아이와 함께 읽기 더없이 좋은 책, 이미 그 길을 지나왔다면 자신의 경험과 추억을 돌이켜 보게 해 주는 책이 될 것입니다.


도원

도원

객원 필자 | 아프리카에 있는 산 속 공방에서 도자기를 배웠습니다. 현재는 그림책을 쓰고 만들고 나누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 2016년 4월 | Facebook | dowontr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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