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들의 왕 루이 1세

어느 날 거센 바람이 불어와 평범한 양 루이 앞에 나타난 왕관. 갑자기 눈 앞에 나타난 왕관을 멍하니 바라보던 루이는 그 왕관을 쓰고 ‘양들의 왕 루이 1세’가 됩니다.

왕이 등장하고 양들의 세상은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이전보다 더 살기 좋아졌을까요? 숲 속의 늑대들이 감히 넘보지 못하는 안전한 세상을 맞이하게 되었을까요? 하지만 양들의 왕 루이 1세는 이런 것들과는 전혀 상관 없는 행각을 벌이기 시작합니다.

양들의 왕 루이 1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근사한 지휘봉을 마련한 겁니다. 그 다음엔 대대손손 물려줄 왕좌, 안락한 침대 등등 자신을 한껏 돋보이게 할만한 것들을 하나둘 씩 만들어갑니다. 그리고 나서는 자신의 백성인 모든 양들을 모아 놓고 일장 연설을 하거나, 최고의 정원사가 가꾼 정원을 산책하거나, 양에게는 어울리지 않게 사자 사냥을 한답시고 부산을 떨어댑니다.

왕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 백성이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게 돕는 일에 대한 고민은 전혀 없이 겉모양 꾸미기와 어설픈 권력을 휘두르는데 온 정신이 팔린 루이 1세의 모습에서 권위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왠지 모르게 바보같고 우스꽝스럽기만 합니다. 이런 왕의 엉뚱한 짓거리들에 무관심한 평민 양들의 지루한 듯 담담한 표정들은 루이 1세를 더욱 멍청해 보이게 만듭니다.

양들의 왕 루이 1세

그러던 어느 날, 바람타고 왔던 왕관은 또 다시 바람에 실려 어디론가 사라져 버립니다. 그리고, 양들의 왕 루이 1세는 다시 평범한 양 루이가 되었습니다. 왕관은 어디로 날아갔을까요?

양들의 왕 루이 1세

지금껏 양들의 왕 루이 1세의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던 그림책은 올리비에 탈레크가 독자들에게 건네준 이 한 장의 그림으로 전혀 다른 이야기로 바뀝니다. 그리고 제가 쓰는 ‘오늘의 그림 한 장’ 역시 바로 지금부터입니다.

양들은 어느 날 갑자기 정체불명의 왕관을 뒤집어 쓰고 나타나 자신이 왕이라고 하는 루이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멍청한 왕 루이 1세의 바보짓에 이리저리 끌려다니죠. 누구 하나 나서서 뭐하는 짓이냐, 당장 그만두지 못하냐 묻고 따지는 양은 없었습니다. 그저 바람이 불어와 멍청이 왕에게서 왕관을 빼앗아가길 기다렸던 걸까요?

이 그림 이전까지의 이야기만으로도 그림책은 충분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잘못된 지도자의 모습에서 올바른 지도자란 어떠해야 하는지 생각해 볼 수 있게끔 해주었으니까요. 하지만 이 그림 한 장으로 이 책은 완벽해졌습니다. 자격이 없는 자가 지도자가 되었을 때, 지도자가 잘못을 저지를 때 우리들은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양들은 과연 어떻게 할까요? 바람에 휩쓸려 사라졌던 왕관을 쓰고 잔뜩 거만한 걸음으로 자신들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저 늑대를 왕으로 받아들일까요? 지금껏 누려온 평화와 행복을 지키기 위해서 그들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만 할까요?


양들의 왕 루이 1세
책표지 : Daum 책
양들의 왕 루이 1세

(원제 : Louis 1er, Roi des Moutons)
글/그림 올리비에 탈레크 | 옮김 이순영 | 북극곰

(발행일 : 2016/07/06)

“무릎 딱지”, “누굴까? 왜일까?”, “내가 앞에 설래!” 등으로 가온빛에서도 이미 여러번 소개한 바 있는 올리비에 탈레크. 섬세한 듯 하면서도 어딘가 모를 엉성함으로 편안한 느낌의 그림, 뭐라 한 마디로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그만의 독특함이 주는 새로운 신선함과 우리 삶을 깊숙히 꿰뚫는 통찰력이 올리비에 탈레크의 매력이 아닌가 싶습니다.

“양들의 왕 루이 1세”에서도 올리비에 탈레크는 자신의 역량을 아끼지 않고 발휘합니다. 왕관의 권위와는 어울리지 않게 멍청해 보이는 루이 1세의 캐릭터를 잘 살려낸 익살스러운 그림과 재미난 내용 전개는 이 그림책이 품고 있는 어려운 주제를 아주 쉽게 아이들의 마음 속에 전달합니다. 어리석은 왕, 무능하기만 한 왕, 아무런 꿈도 비전도 없는 왕의 모습을 지켜보며 우리 아이들은 진짜 왕, 참된 리더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게 되고 자기만의 답을 찾게 되겠죠.

지난 4년간 나라가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이유가 속속들이 드러나기 시작하며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혼란스러운 이 때에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는 그림책 “양들의 왕 루이 1세”였습니다.


이 인호

에디터, 가온빛 레터, 가온빛 레터 플러스 담당 | ino@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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