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잠

겨울잠

긴 잠 털어 내며 나서는 발걸음을
햇살이 가만가만 어루만져요.
배 속을 톡톡 두드리는 작은 발길질.

겨울이 코앞에 닥친 늦가을 날, 곰은 다가올 계절을 대비해 여름이 남긴 마지막 열매들을 바지런히 거두며 겨울잠에 들 채비를 차근차근 해나갑니다. 하루하루 날은 점점 더 추워지고 낮은 조금씩 조금씩 짧아집니다.

드디어 그날이 찾아왔어요. 나른해진 몸을 이끌고 바위틈 깊숙이 파고든 곰. 하얀 눈 이불을 덮어쓴 세상에도, 곰이 깊이 잠든 컴컴한 굴 속에도 찾아든 겨울, 겨울은 긴긴 잠을 내려 줍니다. 어둡고 긴긴 겨울이 흘러갑니다.

햇살이 바위 틈 깊숙한 곳까지 스며든 어느 아침, 곰은 오랜 잠에서 깨어납니다. 꿈틀 깨어난 햇살처럼 뱃속에서 생명의 움직임을 느낀 곰, 여린 봄 햇살이 들어선 자리에 기적처럼 새 생명이 찾아왔어요. 따뜻한 햇살의 어루만짐에, 새싹처럼 깨어난 아기 곰의 작은 발길질에 엄마 곰이 깨어났어요.

긴 겨울을 이겨내고 이제 막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는 엄마 곰 뒤에 드리운 긴 그림자, 새 생명을 잉태한 엄마 곰의 뱃속에서도 이렇게 움튼 생명이 기지개를 펴고 있겠죠. 햇살이, 바람이 어루만져 줍니다. 조심조심 긴 잠을 털어내고 세상 밖으로 나아가는 엄마 곰, 아직은 혼자이지만 이제 곧 아기 곰이 태어날 거예요. 고요하고 적막했던 세상이 마술처럼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요. 하얀 눈 이불을 걷어내고 포근하고 따사로운 빛을 가져온 기적의 시간처럼요.

그 가을이 있었기에, 그 겨울이 있었기에 지금의 봄이 존재합니다.


겨울잠
책표지 : Daum 책
겨울잠

(원제 : Osa)
호세 라몬 알론소 | 그림 루시아 코보 | 옮김 길상효 | 씨드북
(발행 : 2016/01/06)

겨울잠

양쪽 표지를 벌려 펼쳐 보면 커다란 곰 안에 눈부신 푸른 봄이 가득합니다. 봄을 꿈꾸며 겨울잠을 자러 발걸음을 옮긴 곰의 마음이 이미 다음 해 봄에 닿아있는 것 같아요.

시처럼 잔잔하고 서정적인 글과 한 장 한 장 차분히 전개되는 아름다운 그림 속에 겨울나기를 준비하는 곰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우리 곁에 봄이 다가와 있습니다.

곰의 입김이 하얀 눈보라가 되어 곰을 감싸는 장면, 눈 내린 겨울을 뒤집어쓰고 포근히 잠든 곰과 세상, 봄 햇살에 꿈틀거리는 작은 생명…… 페이지마다 상징적이고 감각적으로 그린 그림들이 눈길을 사로잡는 그림책 “겨울잠”, 단풍잎 지던 지난가을부터 눈 내리던 겨울, 그리고 성큼 다가온 봄이 그림책 한 권에 모두 들어있어요.


이 선주

이 선주

열여덟 살 딸내미와 폭풍수다에 체력 고갈 중 | 2000년부터 육아, 그림책, 엄마와 함께 하는 놀이, 중학교 3년간의 홈에듀케이션 이야기를 담은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 '찾아가는 어린이 책놀이터' 수업 진행 | '그림책과 놀아요'(열린어린이) 출간(2007) | 2016년 4월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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