킁킁

나뭇가지에 달랑달랑 달려있던 남빛 열매가 사르르 벌어지는가 싶더니 그 속에서 슬쩍 고개를 내민 물고기가 껍질을 벗어던지고 하늘로 훌쩍 튀어 올랐어요. 몽글몽글 밀려드는 단잠에 빠져있던 달님이 그 모습을 보고 화들짝 놀라 깨어났어요. 도대체 물고기는 어쩌다 열매 속에 숨게 된 것일까요? 물고기를 품은 열매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배고픈 갈매기가 킁킁 냄새를 따라 간 곳에 놓여있는 작고 동그란 것에게 묻습니다.

물고기 봤니?
아니.
근데 너는 누구니?
난 씨앗이지.

갈매기는 지금껏 자신이 알고 있던 씨앗의 모습과는 영 달라 보이는 작고 파란 씨앗이 아무래도 수상해 보였어요. 갈매기는 씨앗을 두고 떠나면서도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죠.

비와 바람, 따사로운 햇볕의 보살핌 속에서 무사히 싹을 틔운 씨앗이 자라 작은 나무가 됩니다. 분명 물고기 냄새가 나는 나무, 하지만 물고기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아요.

무럭무럭 자란 나무에 남색 열매가 잔뜩 달렸어요. 킁킁! 물고기 냄새를 맡고 갈매기가 다시 찾아왔지만 여전히 물고기는 오리무중입니다. 참 이상한 일이죠. 물고기는 흔적도 없는데 갈매기는 왜 자꾸 나무에게서 물고기 냄새를 맡는 것일까요?

그 비밀은 나무에 숨어있었어요. 작은 씨앗이 자라 나무가 되고 그 나무에 주렁주렁 열린 탐스러운 열매들, 그 속에서 빼꼼 고개를 내민 물고기들은 한밤중 아무도 모르게 세상을 향해 나아갑니다. 물고기가 열리는 나무! 이 깜찍한 비밀에 달님도 깜짝 놀라 두 눈을 번쩍 뜬 밤입니다.

무엇일지는 모르지만 열매 주머니를 박차고 튀어나올 무언가를 참고 기다리며 느끼는 설렘 덕분에 우리의 인생이 살맛 나는 것 아닐까, 그림책을 읽다 문득 떠오른 생각입니다. 기다릴 무엇이 있다는 것, 찾아야 할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에요.


킁킁
책표지 : Daum 책
킁킁

글/그림 정희정 | 북극곰
(발행 : 2017/02/06)

물고기 나무와 갈매기 사이에 어떤 인과관계가 있을까 가만 생각해 보니 물고기를 먹은 갈매기가 이리저리 눈 똥 덕분에 물고기 나무가 시작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달콤한 열매를 먹은 새들이 눈 똥에서 씨앗이 싹터 다시 생명이 시작되는 것처럼요.^^

손톱보다 작은 씨앗 속에 새콤달콤한 딸기가, 커다란 수박이, 노오란 참외가 들어있다는 사실이 마냥 신기하고 또 신기합니다. 달콤한 열매가 익을 무렵이 되면 우리는 지난 봄 그 작디작은 씨앗을 잊어버리곤 하지만 자연은 알고 있어요. 모든 생명에는 신비한 마법의 힘이 함께하고 있음을요.

물고기를 찾아 헤매는 갈매기와 수상한 씨앗 한 톨의 앙큼한 숨바꼭질 이야기가 담긴 재미난 그림책 “킁킁”, 물, 바람, 햇빛 그리고 인고의 시간 뒤에 찾아오는 놀라운 일들, 과연 씨앗 혼자만의 꿈일까요? 작은 씨앗의 위대한 도전이 마치 꿈을 품고 이제껏 달려온 생명 진화의 역사와 만나는 것 같습니다.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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