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과 나비

노오란 새봄이 턱 끝에 걸릴랑 말랑, 저 멀리서 오다 말다를 반복하며 밀당을 즐기고 있는 봄의 초입입니다. 겨우내 뾰족뾰족했던 마음일랑 잠시 접어두고 무른 땅기운을 마구 느끼고 싶은 날, 누구를 만나도 즐거울 것 같은 이 봄날, 샛노랗다 못해 주홍빛으로 가득한 어여쁜 공간 위에서 어쩐 일인지 곰과 나비는 잔뜩 성난 표정으로 서로를 노려보고 있어요.

곰과 나비가 다퉜어요.

예쁜 색감으로 펼쳐진 배경 위에서 축복의 이벤트라도 열린 양 팔랑팔랑 날갯짓 하며 날아오른 수많은 나비들…… 이 달콤한 배경 위에서 오직 곰과 나비만 심각합니다. 새빨갛게 달아오른 작은 얼굴로 커다란 곰을 쏘아보고 있는 나비,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여리디여린 나비를 노려보고 있는 갈색 곰. 대체 이 둘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꽃그늘 아래서 소박한 만찬을 준비하며 나비는 기분이 좋았어요. 조그만 식탁 위에 차린 앙증맞은 크기의 빵과 꿀, 쫑긋 선 나비의 더듬이에서 행복한 음악이 흘러나올 것만 같아요. 나비의 온화한 기분처럼 하늘에는 노오란 구름이 두둥실 떠오른 맑고 화창한 날입니다. 이런 기분 좋은 상황을 망쳐 버린 것은 곰이었어요. 나비 뒤에서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다가온 곰이 나비가 차려놓은 만찬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워 버렸거든요. 곰과 나비의 다툼이 시작된 순간입니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돌아가는 곰을 쫓아간 나비, ‘네까짓 게 감히 나를 어쩌려고?’ 하는 표정이었던 곰을 한무리의 나비떼가 순식간에 하늘 높이높이 들어 올렸어요. 악어가 득실대는 무시무시한 호수를 지나 해가 지고 둥실 달뜨는 밤이 찾아올 때까지 나비는 곰에게 따지고 또 따졌어요.

마침내 곰이 벌렁 누워 발을 쳐들었어요.
나비가 그 위에 사뿐히 내려앉았지요.
오, 달빛이 빛나는 밤엔
부디 나비와 다투지 말아요!

커다란 곰 발 위에 사뿐 내려앉은 나비, 드디어 그 마음이 다 풀린 모양입니다. 하얀 달빛이 호수를 노오랗게 물들인 달그림자 위에서 마주보고 곰과 나비가 웃고 있어요. 우리가 그때는 왜 그랬을까 하고 웃을 수 있는 이유는 해가 지고 달이 뜰 때까지 오래도록 마음속에 담아 둔 모든 것을 풀어냈기 때문일 거예요. 그제야 찾아왔겠죠. 따뜻하고 포근한 진짜 봄날이…

지나고 보면 참 유치하고 사소하기 그지 없는 이유일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곰과 나비처럼 심각했던 기억, 다들 하나씩은 있지 않나요? 저는 예전에 친구와 가방 색 때문에 싸운 적이 있어요. 휴지 거는 방향 때문에 가족과 다툰 적도 있구요. 잼 많이 바른쪽 빵을 베어먹었다고 툭탁거린 적도 있죠. 흠, 그래도 이제껏 그들과 사이좋게 잘 지내는 걸 보면 곰과 나비처럼 감정이 다 풀어져 하나도 남아있지 않을 때까지 가보았기 때문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림책을 들여다 보면서요.^^

화가 날 때, 머뭇거리지 말고 마음 속 나비떼를 날려 보아요. 혼자만 끙끙 앓다 결국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지 않도록……


곰과 나비
책표지 : Daum 책
곰과 나비

(원제 : The Bear and The Butterfly)
마거릿 와이즈 브라운 | 그림 마리예 톨만 | 옮김 이상희 | 보림
(발행 : 2017/01/02)

2017 가온빛 추천 그림책 BEST 101 선정작

곰과 나비가 다퉜어요.
해가 지고, 달이 뜰 때까지요.
마침내 곰이 벌렁 누워 발을 쳐들었어요.
나비가 그 위에 사뿐히 내려앉았지요.
오, 달빛이 빛나는 밤엔
부디 나비와 다투지 말아요!

“곰과 나비”는 마거릿 와이즈 브라운의 시에 마리예 톨만의 그림을 입혀 만든 시그림책입니다.

보림 출판사 측에서 일러스트레이터 마리예 톨만에게 마거릿 와이즈 브라운의 시로 그림을 구상해 줄 것을 부탁하면서 이 그림책이 시작되었다고 해요. 그림책 뒷면에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 아주 즐거웠다고 전해온 마리예 톨만의 편지를 읽다 보면 ‘행복한 마음으로 작업을 진행한 그림책은 이렇게 다르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림을 구상하며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작업하면서 즐거워했을 그녀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그림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지 보면서도 믿기지 않는 멋진 그림들을 선보여온 마리예 톨만, 가온빛에서도 그녀의 그림책 “로켓 펭귄과 끝내주는 친구들”“나무집” , “짝짝이 양말” 을 소개해 왔는데요. 마거릿 와이즈 브라운의 짧고 강렬한 여섯 줄짜리 시도 좋지만 마리예 톨만이 재해석해서 구성한 그림들 덕분에 그림책이 더욱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단, 라임(rhyme)을 살린 글쓰기를 좋아했다는 마거릿 와이즈 브라운의 시 원문이 그림책에 함께 소개되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