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였구나

어느 날 처음 보는 공룡이 나를 찾아왔어요. 나는 공룡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데 공룡은 아주 먼 옛날부터 알고 지내왔던 사이처럼 편안하게 나를 대합니다. 같이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영화도 보고 목욕탕도 가고…… 결국 나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공룡에게 물었죠. ‘너 누구야?’ 하고. 내 질문에 토라져 버렸던 공룡이 내게 말했어요.

“잊혀지는 게 힘들까? 잊는 게 힘들까?”

공룡 마을에서는 언제든 여행을 떠날 수 있게 준비해둔다고 합니다. 여행의 시작은 ‘기억’이라고 말하며 깊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공룡, 그제야 나는 오래전 친구 얼굴이 아련하게 떠올랐어요.

기억해 줘서 고맙다는 말을 건네는 친구의 얼굴에 고운 미소가 번집니다. 나는 열다섯 살의 그때 그 모습으로 돌아온 그녀를 만납니다. 눈을 감고 그 시간을 조용히 기억해 봅니다.

나는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잊으며
살아가고 있는 걸까?

내가 잊어버린 것은 열다섯 살 그때 그 모습의 그녀였을까요? 아니면 열다섯 살의 나 자신이었을까요? 공룡이 내게 물었던 말처럼 잊혀지는 게 힘든 일일까요? 잊는 게 힘든 일일까요?

누군가의 시간 속에서 어쩌면 오래전 멸종되어 버렸을지도 모를 나도 ‘기억’으로 소환될 수 있을까요? 그 기억들은 아픈 것일지 따뜻한 것일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너였구나
책표지 : Daum 책
너였구나

글/그림 전미화 | 문학동네
(발행일 : 2017/03/15)

부드러운 선과 흑백의 농담으로 담백하게 풀어낸 그림, 하얀 여백이 이야기의 여운을 채워주는 그림책 “너였구나”,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차분하고 담담한 목소리가 오랜 기억들을 이끌어 냅니다. 잊혀진 얼굴들, 오랜 시간 가슴에 묻고 있던 아스라한 기억들이 꿈결처럼 떠올라 마음이 뭉클해집니다.

풍선처럼 부풀었다 금세 얇아지는 관계 속에서 그 봄을 기억했다.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잊으며 살아가는 걸까?
– 전미화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0 0 votes
Article Rating
알림
알림 설정
guest

0 Comments
Inline Feedbacks
모든 댓글 보기
0
이 글 어땠나요? 댓글로 의견 남겨주세요!x